2023년 2월부터 시작된 나의 캐나다 밴쿠버 생활. 돌아보면 정말 행복했고 여기 올 수 있었음에 너무나 감사한다. 내 글을 이전부터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영어를 1도 못 하던 사람이었고 해외에서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내 인생에서의 정말 큰 챌린지를 달성하며 얻은 성취감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너무 행복했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알 것이다. 입사하고 1년, 2년, 3년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된 생활에 익숙해지고 익숙해질수록 다른 삶을 꿈꾸지만 행하기는 더 어렵다는 것을. 나 또한 그랬다.
2022년, 2023년 조금씩 바뀌어져 갔다. 2023년 캐나다에 와서는 정말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고 안 좋을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을 하며 거울을 보며 행복해서 웃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샤워 후에도 여기가 캐나다라는 사실에 또 행복해서 웃고, 그렇게 5개월을 넘게 살았다.
6개월이 넘어서며 조금씩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나 캐나다에 왔구나 라는 사실이 이제야 스스로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밴쿠버의 Sky train 소리, 푸른 공원풍경, 탁 트인 도로까지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사실 6개월이라는 시간이 1년이라는 비자를 받은 나에겐 정말 긴 시간이지만, 내 인생에서 보면 긴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밴쿠버에서 적응하는 6개월 동안 돌아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금까지 와의 나의 삶과 180도 달라진 일들이 말이다. 이곳에서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과 통화를 할 때면 친구들이 물어본다.
"캐나다는 어때? 좋아? 얼굴 보니 좋아 보인다!"
"내 친구도 외국에 워홀이나 어학연수 생각하고 있다는데, 해줄 말 있어?"
"요즘 캐나다 가려고 생각하는 사람 많더라! 먼저 갔으니까 이야기 좀 해줘!"
만으로 28살. 한국나이로 30살. 결혼을 하는 친구도 있고 커리어를 쌓아 이직을 하려는 친구도 있고 대학원을 들어가는 친구도 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해외로의 길을 생각해 보는 친구도 있다.
워킹홀리데이 생활 비자기간이 약 6개월 정도가 더 남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정말 행복하고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극복해야만 했던 힘들었던 점을 적어보려 한다. 과거의 나에게 알려주는 글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첫 번째, '돈'에 대한 문제.
워킹홀리데이비자로 왔지만 나는 돈을 벌어 한국에 귀국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20대 초, 중반 워홀러들과는 조금 방향성이 달랐다. 나는 이곳에서 더 많은 경험을 원했고, 영어를 배우길 원했다. 1년간 내가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을 다양하게 해보고 싶었고 이 시간들을 의미 있게 잘 보내고 싶었다.
직장생활을 약 6년 동안이나 한 나로서는 통장에 차곡차곡 쌓인 돈이 있었고 그들에 비해서는 정착비용이라던지, 생활비가 넉넉한 편임은 분명했다. 통장에 쌓여있던 돈은 그렇게 큰돈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열심히 살아왔다는 반증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나를 위해 그만큼 큰돈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전혀 문제 될 건 없었지만 문제는 떨어져 가고 있는 잔고를 지켜보는 그 순간이었다. 많은 직장인들이 입사를 한 후부터 조금씩이라도 돈을 모으며 살아간다. 그 모은 돈을 집을 산다던지, 차를 산다던지, 결혼자금으로 쓴다던지 등으로 사용된다. 나의 경우 그 통장잔고가 조금씩 조금씩 줄어드는 걸 볼 수 있었고 그만큼 불안감이 따라오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돈을 모으는 것이 중단되는 그 순간에도 상당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더 이상 돈에 얽매이지 않을 거야.'
'나한테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원래 이 정도는 쓰려고 왔잖아'
수시로 이 생각을 하며 불안감을 해소하려 노력했다. 사실 '돈'이 당장 없어서 생기는 문제라기보다는 이전과 달라진 돈이 매달 들어오지 않아 느끼는 불안감에 대한 문제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내 통장에는 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달에도 다음 달에도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불안해하며 '나 빨리 일을 구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그래서 내가 원하지 않았던 직종에도 이력서를 돌리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물론, 안 갔지만 말이다.) 당장 돈이 없어서가 아닌 통장에 돈이 들어와야 마음이 편안했기 때문이다. 이건 6년간, 아니 아르바이트 생활까지 해서 10년간 월급을 받는데 익숙해진 나의 삶에서 갑자기 생긴 변화에 생긴 저항감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이 불안감이 찾아올 때면 노트를 펴고 현재 나의 상태에 대해서 써 내려간다. 그렇게 '글쓰기 명상'을 하다 보면 조금은 편안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 '사회적 지위' 그리고 '자존감'
사회적 지위라고 구글에 의하면 주로 위신에 의거한 체계 내의 위치 혹은 계층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실 마땅한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사회적 지위'라는 단어를 썼다. 워킹홀리데이를 가면 말이 좋아 워킹홀리데이 비자지 결국 '외국인노동자' 신분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내가 생활해 본바 캐나다는 생각보다 보수적이며 자국의 스펙을 중요시한다. 그런데 바꿔서 생각해 보면 당연한 부분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생활한다고 했을 때 어떤 외국인 분이 본인이 모국에서 경력이 있다고 한들 우리가 인정을 안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 부분을 간과하고 갔다.
한국에서 물리치료사, 아로마테라피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했고 그랬기에 더 발달되어 있는 캐나다에 가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 분명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정말 환상만 부풀어서 갔지만, 현실은 그냥 '외국인'이었다.
이 사실을 처음 알아차린 건 3주가 채 되지 않았지만 완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처음엔 PTA(물리치료사보조사)로 일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서 WES 인증을 받아갔다. 내 영어실력도 생각하지 않은 채 부딪혀봐야지 하고 무작정 밴쿠버에 있는 수많은 physio clinic에 메일을 보내고 직접 찾아가 명함도 받아내고 Observation 해도 괜찮냐고도 물어봤지만 그 아무것도 될 리 없었다.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보자라고 생각해 낸 것이 'Volunteer'와 'Nanny'로 일을 구하는 것이었다. 잘 풀려서 Nanny로 일을 하며 재활환경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었지만 그때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나는 물리치료사가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분명, 저 OT, PT, ST 등 그들이 하는 부분들을 더 깊게 이해하고 함께 더 퀄리티 높은 치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분명 '나'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여기선 '물리치료사'가 아닌 게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는 같은 지위였을, 같이 치료에 대해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었을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말했을 때 듣는 둥 마는 둥 한다던지, 그냥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볼 때면 '자존감'도 조금씩 떨어지기도 했다.
'나 결국 여기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인 건가?'
'내 영어가 문제인 걸까?'
'내가 의견전달을 제대로 못하는 게 문제인가?'
위와 같은 생각들을 해봤는데 영어는 부수적인 문제였다. 나는 한국에서는 '물리치료사'였지만 캐나다에서는 'work permit'을 가진 외국인에 불과했다. 이 부분은 사회생활을 하던 워홀러들, 특히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외국으로 넘어온 워홀러들이 극복해야 할 부분인듯하다. 생각해 보면 워홀러뿐만 아니라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도, 해외취업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해당하는 부분이다. 한국에서의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던 그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고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정말 힘든 부분이었다.
또, 나는 단기 파트타임 일을 하면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내가 일을 하러 갈 때마다 한국인은 나 밖에 없었고 정말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캐나다 사람도 있었지만 캐나다는 다민족 국가이니만큼 나처럼 워크퍼밋을 가진 외국인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모국에서는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보면 정말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개인 사업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선생님, 무역관련업, 은행원, 변호사 등
한국과 캐나다에서의 사회적 지위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시작해야 하는데 그곳에서 찾아오는 '괴리감' 초반의 나처럼 느낄 수 있는 '자존감 하람'에 대한 부분은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야 할 부분인 듯하다.
그리고 그 부분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지 스스로가 알아차리고 이겨나가야 할 부분이다.
지금의 나는 브런치 및 블로그를 통해 글을 쓰고 또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그 부분을 극복해나가고 있다.
여기까지가 6개월 넘게 생활하며 힘들었던 부분들이다. 영어를 정말 못 하던 나에게 '영어가 힘들지 않았니?'라고 물어본다면, 사실 영어보다는 위에 언급한 부분들이 더 힘들었다. 그리고 영어를 배워가는 과정은 오히려 즐겁고 행복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너무 느린 것 같고 매일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나를 보면 답답할 때도 있지만 이상하게 제일 걱정됐던 영어는 큰 벽이 아니었다.
돌아보면 '영어'는 내가 한정 지어 놓았던, 스스로가 만들어 놓았던 한계의 벽 같은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돌이켜보면 워킹홀리데이에 와서 영어를 배우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두려움과 내가 정해놓았던 그 한계를 깨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