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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a May 10. 2023

영어와 담쌓고 지내던 삶, 이젠 무엇보다 친해져야 한다

캐나다 가기로 결정, 영어 스터디

캐나다에 가기로 확실하게 결정을 내린 후, 나에게 가장 시급 한 건 '영어'였다.

언제 출국할지, 어느 도시로 갈지, 가서 무슨 일을 할지 알아봐야 할 부분들은 많았지만 다른 부분들은 다 제쳐두고 '영어'가 제일 시급했다. 

내가 친구와 통화하다가 캐나다행을 알아보게 되었다고 적어서 내가 영어 기반이 됐었다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 확신하긴 부끄럽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의 대다수분들 보다 더 영어를 못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내 글을 읽다 보면 정말 이런 애가 캐나다를 간다고 결정을 했다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전까지 나와 '영어'의 관계에 대해 풀어가 보려 한다.

우선, 대학교 입시시험인 '수능'에서 나는 5등급을 맞았다. 참고로 나는 영어를 완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영어를 못 했기에 '영어'를 공부한 게 아니라 '시험' 공부를 했다. 내가 수능 칠 때 '수능특강'이라는 EBS 책 지문에서 참고하여 수능에서 문제가 출제된다고 했었다. 그래서 나는 '수능특강'을 비롯한 EBS 책 지문 답지를 달달 외우고 시험을 치러 갔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영어 듣기였다.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듣기 시험은 찍은 적이 없다. 하지만 한 번호로 찍는 것보다 더 못한 점수를 받은 적이 많다. 다들 점수를 받아가는 영어 듣기 부분, 나는 항상 틀리고 들어갔다. 하다 보면 향상된다고 했다. 눈 딱 감고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매일 아침마다 영어 듣기를 했었다. 17문제 중 3문제를 맞히던 내가 최대 14문제까지 맞춘 기억이 있다. 영어 듣기가 얼마나 악몽이었으면 아직까지도 맞추던 개수를 기억한다. 하지만 영어에 대해 흥미가 없던 나는 다시 내려가 8문제에서 9문제 사이 맞추곤 했다. 

학창 시절 영어공부가 아닌, 그저 '시험공부'를 해왔다.


그렇게 대학교 입학을 했다. 대학교 입학을 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 들어가서는 더 했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다니던 대학교 커리큘럼이 굉장히 잘 짜여 있었다. 일주일 중 2시간은 원어민과 함께, 2시간은 한국인과 함께 영어수업을 하였는데, 원어민교수님과 하는 시간에는 그저 잠자기 바빴고 시험칠 때는 역시나 답만 외어가기 바빴다. 나는 '물리치료사'였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분들이라면 알 테지만 다른 직종에 비해 토익, 토플 등 영어점수가 없어도 취직하기가 수월한 편이다. 물론, 대학병원이나 공기업에 들어가려면 영어점수가 필요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취직자리가 많기에 나의 경우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다. 

토익을 단 한 번도 쳐보지 않았다. 대학시절 학교에서 진행하는 모의토익 쳐본 적 있는데, 다 찍고 잠들었던 거 같다. 

그렇다면 내가 취직을 하고 영어공부를 했을까? 전혀 단 한순간도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담을 쌓고 살았다. 나는 참고로 팝송을 즐겨듣지도 않고, 영어로 된 드라마나 영화를 즐겨 보지도 않는다.

그저 '영어'와 담을 쌓고 살았던 삶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영어에 대한 인풋이 전혀 없는 삶이었다.


이런 나였기에 '캐나다'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 가족들, 친구들, 직장동료들까지 다들 정말 놀랬다. 특히, 나를 오래 알고 지냈던 친구들은 세상모를 일이라며 이야기하곤 했다. 


'캐나다'행을 결정한 후, 나는 영어 회화에 대해 알아보았다.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막막했다. 워킹홀리데이 인비테이션이 왔지만, 당장 떠나긴 어렵고 사정이 있어 2023년 초 출국 예정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영어실력을 끌어올린 후 갔어야 했다.

쉐도잉도 해보고, 영어시험공부도 해보고, 영어유튜브도 보았다. 뭔가 붕 뜨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캐나다 물리치료사에 대해서 알아보고 이 붕 뜨는 느낌을 잡기 위해 IELTS 공부를 시작했었다. 내가 해야 할 목표와 해야만 하는 것이 생기면 지금보다 늘지 않을까 싶어 무작정 인터넷강의를 결제해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내 영어실력에 IELTS는 너무 수준이 높았고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내 수준에 맞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거라도 하다 보면 어떻게 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고 사실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공부하기 싫은 날은 디즈니 영화를 보았다. 이때, 프리랜서로 활동도 막 시작하느라 조금은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이렇게 보내다가 캐나다로 가면 이도저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영어말하기 연습을 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가자 라는 생각을 했고, 알아보았다.

영어카페도 있었고, 영어스터디도 있었고, 영어스피킹학원도 있었다. 프리랜서 활동을 함께 병행했기에 매일 갈 수는 없었다. 주말이나 평일 아침시간 정도가 적당했다. 몇 곳으로 추린 후 전화해서 알아보고 상담을 갔다. 그렇게 8월부터 영어스터디를 다니기 시작했다. 


29년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영어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그곳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한 마디 한 마디 뱉으며, 나도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구나 를 느꼈다. 정말 기초부터 시작했다. 

" I  am ~ I can ~"

하지만 이 조차 내가 모르고 있던 문장이었다. 보고 아는 건 모르는 것이었다. 이 문장들이 말로 나오기까지 수많은 연습이 필요했고 한국어를 번역해서 생각하는 게 아닌, 그 상황에 적절한 말들을 '영어'로 알아내는 과정이었다. 이전까지는 이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저 항상 번역해서 생각했고, 항상 번역어플을 이용했다.

그리고 번역 후 나온 문장을 보고는 '아! 아는 건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번역어플 사용을 줄이는 중이다. 한국어를 그대로 번역하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해 더 집중하려 한다. 이런 변화조차 나에겐 큰 변화였고 엄청 난 깨우침이었다.


이곳에서의 배움은 캐나다에 도착해서 초반에도 지금도 영어를 못 하는 상황에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기존에 맺고 알고 지내던 나의 인연들과는 전혀 다른 수많은 인연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캐나다에 떠나기 전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29년 간 담쌓고 지내오던 '영어'와의 관계, 한 순간에 늘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전 나를 생각해 본다면 이렇게 영어로 한마디, 두 마디 뱉는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영어가 조금씩 들리는 순간 정말 신기하다. 그렇다고 드라마틱하게 영어 듣기가 늘진 않는다. 그저 꾸준함과 반복을 통해 한 문장씩 들리는 문장이 늘어나고 한 문장이 두 문장이 되고, 두 문장이 열 문장이 되었다.


그렇게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마음으로 나는 캐나다에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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