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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Dec 17. 2020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안치환의 `11월`을 들었다. 느리지만 묵직한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란 첫 소절이 등장한다. 피아노를 바닥에 깔고 특유의 음성에서 배어 나오는 노래는 구슬프다. 눈 덮인 산야에서 무리를 떠난 늑대처럼 처량한 절규가 느껴지고, 계절의 틈새에서 느끼는 허전함과 그리움을 애절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인디언들은 매 월에 자연의 과정이나 현상을 담았는데 가을과 겨울이 만나는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로 표현했다. 인디언들은 친구를 `나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 표현한다. 자연에 맞서 살아야 했던 인디언들에게 나와 내 가족을 제외한 모든 것은 경계의 대상이고 위협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친구`를 상징하는 단어에서 심오함을 느끼게 된다. 영어로 friend, 우리말로 `친구`라는 단어에는 다양한 함의가 있는데 개인에 따라 느끼는 넓이와 깊이는 다를 것이다. `나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좀 막막했다. 솔직히 내게는 그런 친구가 없다. 내가 들고 있는 슬픔의 짐으로 상대를 부담스럽게 하고 싶지 않고, 친구의 슬픔을 내가 떠안고 갈 자신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쩌면 내가 타산적인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구는 같은 또래의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다. 영어 문화권의 경우는 우리보다 조금 폭이 넓어지는데 영화에서 할아버지와 손자뻘의 어린이가 나누는 대화에서 friend라고 말하는 걸 보면 그 쓰임을 이해할 것 같다.




 인디언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친구`는 사람뿐 아니라 자연의 모든 것들이 그 대상이었으리라. 곰, 사슴, 나무나 꽃 그리고 나비도 그들의 친구였을 테고 흘러가는 구름과 밤하늘의 별도 친구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친구`는 우리가 한정한 친구에 비해 훨씬 포괄적이고 넓은 의미로 쓰였을 것 같다.

삶은 때로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가슴에 얹어놓기도 한다. 모든 슬픔은 아픔의 무게가 있고 그것은 남은 자의 몫이다. 그런 슬픔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면 운명은 너무 가혹하고 처절할 것 같다. 그럴 때 인디언들은 슬픔을 `친구`에게 나누어주었을 것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던 슬픔을 사슴에게 나무에게 하늘의 별에게 말하며 해소하고 견디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런 자연의 대상인 친구에게 미안함을 가졌고 그 친구의 이름은 `나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가 되지 않았을까.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 지나가고 이제 12월이 왔다.

12월은 `다른 세상의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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