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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의 꽃이 시들기 전에 돌아오세요

(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

by 장보구


딸은 엄마의 기분 전환을 위해 꽃을 보냈다 휴가 떠나기 전날 도착한 꽃을 화병에 꽂으며 아내는 아쉬워했다

우리는 꽃이 시들기 전에 휴가를 다녀오자고 했다

초승달 같은 해변과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숙소를 정하고 해가 뜨면 잠에서 깼다 찬란한 햇빛이 다발처럼 창으로 꽂히자 커튼을 쳤다 어둠 사이로 파고든 빛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해가 바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커튼을 제치고 커피를 마셨다

열어둔 쪽문으로 파도소리가 바다향을 싣고 들어온다 수평선 위로 희뿌연 안개가 피어오르고 유람선이 지나간다 해변 앞에는 녹색 피부의 거인이 부표 위에서 망원경으로 세상을 본다 갈매기가 망원경에 앉아 쉬고 사람들은 밀려오는 파도를 찍었다


스무 살의 나는 이 해변에 앉아 있었다 지금은 너무 변해서 그때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추억이 남아있다면 공룡 발바닥 보다 선명할 것 같았다 나도 이곳도 모두 변해서 낯설다


햇빛을 축이는 파도가 숨을 돌릴 때 집에 두고 온 꽃이 시들까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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