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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하 Jul 28. 2022

사랑받는 기업에서 논란의 중심으로! 페이스북의 미래는?

페이스북(메타)의 역사와 시사점 (3)

페이스북(메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익숙하실 것입니다. 인상적인 성공 스토리부터 인스타그램 합병, 개인정보 유출 및 독과점 논란까지, 페이스북에 대해서 꾸준히 많은 소식이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마크 저커버그가 어떤 사람이며 페이스북이 어떤 과정을 겪어왔는지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페이스북에 대한 기업 분석 콘텐츠를 작성했던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독서모임을 통해 페이스북의 역사에 대해 다룬 책 [메타 페이스북]을 읽게 되었습니다. 800쪽에 달하는 책에는 페이스북과 저커버그의 여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고, 저는 페이스북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내용이 긴 만큼 시리즈 콘텐츠를 통해 이를 정리하고 공유하고 있는데요. 과연 저커버그의 여정이 여러분에게는 어떤 색다른 시사점을 제공할지 기대가 됩니다!


[페이스북의 역사와 시사점] 시리즈 목차

1. 말썽꾼 프로그래머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의 시작

2. 뉴스피드의 원조! SNS의 역사를 써 내려간 페이스북

3. 사랑받는 기업에서 논란의 중심으로! 페이스북의 미래는?


전 세계가 사랑하는 서비스로 성장한 페이스북

2007년 처음 개최한 콘퍼런스(F8)에서 2000만 명이라고 밝힌 페이스북의 유저는 2008년에 1억 명을 넘고 2012년에는 10억 명을 넘었습니다. 이처럼 페이스북은 빠르게 성장을 거듭했는데요. 그 과정에는 많은 인재와 새로 도입된 기능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인재의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셰릴 샌드버그입니다. 그녀는 하버드 출신으로 2008년부터 2022년까지 메타의 최고 운영 책임자(COO)로 일해왔는데요. 페이스북에 합류하기 전 그녀는 세계은행에서 일하다가 하버드 MBA를 이수하고 매킨지에 잠깐 몸담았습니다. 이후 재무부 보좌관을 맡고, 구글에 합류하여 일을 하다가 페이스북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저커버그는 자신의 관심사가 아닌 분야인 영업, 정책, 홍보, 로비, 법률을 비롯해 컴퓨터광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모든 것을 샌드버그가 맡기를 바랐습니다. 실제로 2008년 3월 샌드버그가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긴 휴가를 갔습니다. 한 달 넘게 세계를 도는 여행이었는데, 저커버그는 이에 대해 "셰릴이 합류한 뒤로 그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녀가 실력을 발휘할 시간을 주고 싶기도 했고요."라고 말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페이스북의 성장을 이끈 대표적인 기능에는 '좋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좋아요'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온 것은 2007년 말입니다. 게시물에 '축하해요'와 같은 천편일률적인 댓글을 달지 않고 한 번의 클릭으로 게시물에 대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나온 아이디어였습니다. 당시 소규모 팀은 간단하게 버튼을 코딩하고 디자인했는데, '굉장해요'라는 이름의 별 모양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커버그의 반응은 미적지근했고, 프로젝트는 계속해서 미뤄졌습니다. 그러던 2018년 12월 말 제품 관리자가 북유럽에 먼저 출시해서 반응을 확인하자 저커버그로부터 프로젝트를 추진하라는 지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커버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좋아요'로 하죠. 이대로 제작해 출시해요. 이젠 지겨워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2009년 2월에 좋아요 버튼이 도입되었습니다. 단순한 좋아요 버튼은 이용자들에게 스스로를 표현할 손쉬운 방법을 선사했고, 페이스북은 사람들의 '의도'라는 귀중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커버그는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기능은 뭐가 되었든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성장이야말로 저커버그의 유일한 관심사였습니다. 그런 페이스북의 최대 걸작은 바로 '알 수도 있는 사람' 기능이었습니다. 2008년 8월 공식 출시된 '알 수도 있는 사람'은 개인별로 엄선된 친구 추천 목록을 보여주는 기능입니다. 당시 많은 이용자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추천되는 것에 거부감을 표시했으나, 저커버그는 성장에 큰 공헌을 한 해당 기능을 일종의 '주민세'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커뮤니티에서 연결을 누리고 있으니, 더 큰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후 다양한 기능을 추가로 장착한 페이스북은 세계 시장에 빠르게 진출했고, 금세 전 세계의 많은 유저들에게 선택받는 글로벌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셰릴 샌드버그


빨리 움직여서 파괴하라

2009년 저커버그는 회사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정의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즈음 넷플릭스가 자사의 가치를 소개하는 슬라이드를 제작했는데, 이 슬라이드가 널리 회자되어 실리콘밸리의 많은 회사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가치 경쟁에서 뒤질 수 없다고 생각한 페이스북의 임직원은 회사의 가치를 정의하기 시작했습니다. 해당 팀은 회의실에 모여서 '입사 지원자나 친구에게, 부모님에게, 형제에게 페이스북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최근 3명의 입사 지원자에게는 뭐라고 말했고 어떤 표현을 사용했는지' 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자 단어 하나가 거듭 등장했는데, 바로 해커(hacker)였습니다. 해커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스타트업과 페이스북에서는 '자신의 노력이 망가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꾼다고 믿는 뛰어난 실력의 정의로운 코더'라는 본래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페이스북이 어떤 의미에서 해커 기업인지 이해하게 되자 팀은 네 가지 가치를 정할 수 있었으며 이는 최종적으로 저커버그에게 보고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커버그의 요청으로 마지막 가치가 추가되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성과에 집중하라 (Focus on Impact)

2. 대담하라 (Be Bold)

3. 빨리 움직여서 파괴하라 (Move Fast and Break Things)

4. 열려 있으라 (Be Open)

5. 사회적 가치를 구축하라 (Build Social Value)

 

페이스북의 가치는 많은 스타트업의 모범이 되었으나, 반대로 너무 성장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반발도 있었습니다. '파괴하라'는 단어는 오해를 사기 쉬웠고, 특히 페이스북이 여러 문제점을 만든 이후 사람들은 페이스북이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문명 자체를 파괴한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몇 년 뒤인 2014년 저커버그는 F8 콘퍼런스에서 사훈을 '안정된 인프라를 갖추고 빨리 움직여라 (Fast Move With Stable Infrastructure)'로 바꾸었습니다.



싹틔우는 위기의 씨앗

페이스북은 빠르게 성장하면서 알게 모르게 조금씩 위기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우선 이용자의 데이터를 API로 제공하던 '플랫폼' 기능을 통해 유저의 정보를 확보하는 데이터 브로커가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페이스북은 논란이 되자 관련 데이터 브로커 업체를 퇴출했지만, 이는 나중에 발생하는 거대한 유출 사건의 전조 증상에 불과했습니다. 오히려 2009년에는 보다 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본 프라이버시 정책을 '친구만'에서 '전체 공개'로 변경하기도 했죠.


빠르게 추진했던 해외 진출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페이스북은 해외 지사를 세우지 않고 크라우드 소싱 방식으로 초벌 번역을 진행해 서비스를 공개했는데, 이 때문에 적절한 고객지원을 제공하거나 사람들이 올리는 게시물을 감독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현지 이용자들이 기준에 어긋나는 게시물을 신고해도 해당 언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없었기에 페이스북은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미래를 위한 페이스북의 도전

페이스북은 서비스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신사업 진출과 인수합병 등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입수합병 사례는 바로 인스타그램입니다. 2010년 10월에 출시된 인스타그램은 출시 첫날부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렇게 반년도 지나지 않은 2011년 2월에 2000만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시리즈 A 투자를 받았고, 2012년 초에는 세쿼이아로부터 5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2012년 4월 페이스북이 10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당시 인스타그램의 매출은 전혀 없던 상태였는데, 저커버그는 인스타그램의 잠재력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2014년 페이스북은 메시징 서비스 왓츠앱과 가상현실 하드웨어 기업 오큘러스를 연달아 인수했습니다. 특히 오큘러스를 인수할 때 저커버그는 가상현실을 놓치는 것은 모바일을 놓쳤을 때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커버그는 인수 이후 발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첫걸음마를 내디뎠을 때 부모님은 이 장면을 육아일기에 글로 기록했습니다. 누나의 첫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누나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둘째 아이가 걸었을 때는 동영상을 촬영했죠. 그리고 몇 달 전 제 딸 맥스가 첫걸음마를 했을 때 저는 부모님에게 보내고 세상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모든 장면을 가상현실로 기록했습니다."


페이스북의 모든 인수 시도가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커버그는 2012년에 스냅챗 인수를 시도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 저커버그는 당근과 채찍을 제안했습니다. 높은 인수 금액을 제시하는 동시에 스냅챗과 비슷한 '포크'라는 이름의 기능을 개발 중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스냅챗의 창업자 에번 스피걸은 저커버그의 제안을 거절했고, 저커버그는 스피걸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포크를 즐기시길"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은 자체적인 서비스 출시에도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페이스북은 2011년 8월에 페이스북 메신저를 출시했고, (페이스북과 연동하여 강제적으로 사용하게 만들었지만) 현재 많은 유저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실패했지만 페이스북폰을 출시하고 암호화폐 개발을 시도하는 등 페이스북은 지속적으로 미래를 위한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출처. CloudCodes


사랑받던 기업에서 논란의 중심으로

페이스북이 직면한 거대한 논란 중 하나는 대통령 선거로 시작되었습니다. 정확히는 트럼프의 당선이 발단이 되었는데요. 이전까지는 페이스북의 임직원도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자 영향력에 대해 깨달은 것입니다. 당시 페이스북은 힐러리와 트럼프 진영 모두에게 페이스북을 통한 마케팅 컨설팅을 무료로 제안했습니다. 그때 힐러리 팀은 페이스북에 대해 잘 몰랐고 페이스북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진영의 담당자는 컨설팅을 받고 조언을 수용하며 적극적으로 페이스북을 이용했습니다. 이를테면 광고 관리자 기능을 통해 유저를 잘 구분하여 지지층에게는 정책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반대층에게는 투표율이라도 떨어지도록 상대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입니다. 


선거 결과나 선거 기간의 가짜 뉴스보다 더 심각한 사안은 바로 외국의 선거 개입이었습니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러시아 정보국 산하 공작 부대들의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하고 이를 FBI에게 알렸습니다. 그러나 처리 결과를 페이스북이 공유받지는 않았다고 하는데요. 사실 페이스북이 페이지 폐쇄 결정을 내리는 것은 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거가 치러지던 2016년 페이스북은 내부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지, 규칙을 어떻게 변경해야 하는지 쉽게 판단하지 못하고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에 러시아 문제가 크게 대두되며 페이스북은 큰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뒤 페이스북은 사상 최악의 정보 유출 사건을 겪게 되었습니다. 정치 데이터 판매 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정치 광고를 목적으로 수 천만 명의 이용자 정보를 무단으로 활용하고 판매한 사건인데요. 가장 큰 문제는 페이스북이 이러한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방조했다는 것입니다. 해당 사건 이후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는 페이스북의 총체적 신뢰 문제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논란을 겪으며 페이스북을 사랑하던 대중들의 인식은 점차 악화되었습니다.


한국어판 제목은 '메타 페이스북'


페이스북의 성공과 논란이 주는 시사점

“많은 사람이 보수적이죠.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그래. 이렇게 되어야 마땅하다고 믿지만 뭔가를 파괴할까봐 두려워서 도전하지 못하겠어.’ 내가 두려운 건 지금 가진 걸 파괴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거예요. 나는 더 많은 기회를 잡는 것만 생각해요. 그건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는 뜻이죠. …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자신의 잠재력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 건지 몰라요. 안그래요?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라고요.”


이는 책의 저자와 저커버그가 2019년에 인터뷰하며 나눈 내용 중 일부입니다. 저는 해당 문구를 통해 저커버그가 비판받는 부분과 존경받는 부분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선 비판받을 수 있다고 생각된 부분은 서비스가 커져감에 따라 역할과 책임이 증가하는데, 저커버그는 여전히 실수에 대해 가볍게 여긴다고 느껴졌습니다. 반대로 실수나 어려움에 크게 기죽지 않고 회사의 규모에 상관없이 항상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존경받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단순히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 외에 정치적으로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2010년 즈음에 중동과 북아프리카 사람들은 독재와 정부의 부패에 맞서서 페이스북을 활용했습니다. 그렇게 페이스북은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 운동 및 혁명(일명 아랍의 봄)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반대로 필리핀과 미얀마에서는 군부가 가짜 뉴스를 통해 여론을 조장하는 데에 페이스북을 활용했습니다. 이처럼 페이스북(메타)은 이제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기업이 되었는데요, 여러분은 메타와 저커버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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