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하 창업기
안녕하세요,
B2B SaaS 스타트업 '프릭스'를 운영하는 래티스 주식회사의 공동창업자/CPO이자, 호박너구리 레터를 운영하는 이재하입니다!
오늘도 지난 글에 이어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창업을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전 글
산업기능요원 대체복무가 끝나고 어느새 3년 차 개발자가 된 2021년 말, 저는 누구보다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이 재미있었고, 다양한 노력을 통해 역량도 향상되고 있었으며, 20살 때부터 만난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일말의 허전함이 존재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좋은 경험을 하며 역량을 쌓고 있기는 하지만, 제가 줄곧 목표로 하던 창업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단순히 역량 향상이나 경험으로 끝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본격적인 서비스를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서비스를 운영하며 확인되는 유저의 반응을 통해 해당 서비스로 창업을 할지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부캐 관리 SNS, 하이드(HYDE)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캐란, 자신의 직업(본캐, A면)이 아닌 부업이나 취미와 같은 것들을 의미하는 말인데요. 본업에 관한 대표적인 서비스로는 링크드인(LinkedIn)이 있으며, 국내에서도 블라인드(Blind), 리멤버(Remember) 등 다양한 서비스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캐에 대해서는 마땅히 떠오르는 대표적인 서비스가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취미나 관심사도 본업 못지않게 자신을 표현하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하였고, 사람들이 자신의 다양한 취미나 관심사를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본캐가 지킬(Jekyll)이라면 부캐는 하이드(Hyde)라는 의미에서 서비스의 이름을 '하이드'라고 지었습니다.
서비스를 결정한 이후, 저는 팀을 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한다면 빠르게 개발할 수는 있겠지만, 개인의 생각으로만 기획한 서비스는 실제 이용자의 니즈에서 벗어나기 쉽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배우면서 프로덕트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주변에는 서비스의 비전에 공감하는 좋은 인재들이 많았고, 그렇게 저를 포함한 4인 팀이 구성되었습니다. PM으로 일하는 팀원 A는 백엔드 개발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서버 개발을 맡게 하였고, 콘텐츠 프로듀서가 본업인 팀원 B는 프런트엔드 개발에 관심이 있다고 하여 앱 개발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주로 웹 디자인을 하던 팀원 C는 앱 디자인을 하게 되었으며, 마지막으로 개발자로 일하던 저는 PM/기획 일을 주로 하고, 개발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팀원 A와 B는 개발을 곧잘 배웠습니다. 제가 직접 개발을 알려줬는데, 조금만 알려줘도 어느새 더 공부해 와서 기능을 뚝딱 만들고는 했습니다. 팀원 C는 원래 디자인을 잘하는 것을 알았지만, 예상 이상으로 앱 디자인도 정말 빠르고 깔끔하게 완성했습니다. 저희는 일주일에 한 번씩 30분 동안 회의를 하고, 퇴근 후에 틈틈이 일했습니다. 그리고 첫 회의를 시작한 지 약 3개월이 지난 2022년 3월, 드디어 서비스를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상당수의 사이드 프로젝트는 완성 후에 꾸준히 운영되지 못합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팀이 서비스 완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완성할 때에는 큰 성취감을 느끼는데, 지인들로 인해 초기에 몰렸던 이용자가 빠져나가면 서비스에 대한 애정과 의욕이 식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경계하기 위해 저희 팀은 앱을 출시한 이후, 소소하게 축하하는 시간을 갖고 바로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기존까지의 과정에 대해 회고하고 다음 마일스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비스 출시가 완성이 아닌 시작임을 상기하였습니다.
모두의 노력 덕분에 출시 이후에도 서비스는 꾸준히 발전하였습니다. 부캐를 관리할 수 있는 템플릿이 늘어났고, 다른 사람의 포스트를 볼 수 있는 피드가 추가되었으며, 다른 사람의 글에 리액션을 남길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획/개발을 하는 동시에, 유저를 확보하기 위해 열심히 발로 뛰었습니다. 대학생 때 활동했던 학회의 세션에 참여하여 서비스를 소개하기도 하고,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일상을 기록하는 챌린지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서비스를 출시한 지 약 3개월이 지난 2022년 6월, 하이드는 예비창업자를 위한 정부지원 프로그램 '예비창업패키지'에 선정되었습니다. 예비창업패키지에 선정되면 종종 발표하러 가거나 많은 서류 작업을 해야 하지만, 저희에게는 서비스 성장을 위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정말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발로 뛰며 홍보하고, 지원금으로 마케팅을 집행하며 하이드는 빠르게 성장하였습니다. 2022년 말이 되자 가입자는 7,000명을 넘었으며, 재방문율도 50~60%를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사이 결혼식을 잘 마쳐서 행복한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독서모임과 뉴스레터 운영과 같은 자기 계발도 놓치지 않고 꾸준히 지속해 왔습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한 만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창업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분명 서비스를 만들기 전에는 서비스가 잘 되는지 보고 창업에 도전하는 시점을 결정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서비스를 운영해 보니 생각보다 판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서비스의 지표는 좋은 편이었는데, 얼마나 좋아야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창업을 할만한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업무와 하이드 양쪽 모두에 충분히 몰입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옛날에는 업무 외 시간에도 개발을 하거나 회사의 방향에 대해 고민했는데, 지금은 업무 시간이 끝나면 바로 하이드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전에 비해 회사에 몰입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스스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또한, 퇴근 후에 생긴 약간의 시간은 하이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해야 할 기능 개발을 하다 보면 서비스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몰입해도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이 창업인데, 스스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서 창업의 효과를 기대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퇴사를 결정할 시간이 된 것 같았고, 정말 많은 고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