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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Jul 26. 2020

나는 아직도 당신을 잘 모르겠다

회사원 K의 직장생활 중간정산 (8)

 오랜만에 타 부서 후배 K 등과 함께 나가서 밥을 먹었다. 구내식당 밥은 맛도 형편없는 데다 매번 보는 사람들이 아닌 다른 부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외부 약속을 잡았더랬다. 지겨운 직장 생활을 견디려면 점심시간에라도 이런저런 새로운 만남이나 사건 등이 있어야 한다. 간만의 식사 자리에서 그동안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K는 여전히 잘 생기고 유쾌하면서 별일 없이 잘 살고 있었다. 선배랍시고 챙겨주지 않아도 딱히 걱정되는 게 없는 친구이다. 그런데 같이 밥을 먹던 S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K과장, 이선균 성대모사 잘하는 거 알고 계셨어요?" 

 (※ 이때만 하더라도 故 이선균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금시초문이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그래요? 전혀 몰랐는데. 한 번 들려줘 봐요!"


 K는 쑥스러워하면서, 그렇다고 빼지는 않고 헛기침을 몇 번 크흠거린 뒤 성대모사를 시작했다. '봉골레 파스타'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예의 그 유명한 대사를 치는데, 눈을 감고 들으니 정말 똑 닮았다. 마치 동굴 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내 옆에 배우 이선균이 앉아있는 게 틀림없다. 여세를 몰아 다른 성대모사도 선보이는 K. 함께 일했던 부장이며 선배들의 목소리와 말투까지 기가 막히게 따라 한다. 눈을 감은 채 K가 흉내내는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알고 지낸 지 어언 5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처음 마주하는 낯선 모습이 있구나. 나는 이 후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던 걸까. 그동안 얼마나 모른 채로 지냈던 걸까.


 며칠 뒤엔 선배 M과 밥을 먹었다. 예전에 같은 부서에서 몇 년 간 동고동락했기에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이다. 역시나 또다시 회사 밖의 어느 식당 테이블에 앉아, 역시나 또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역시나 다시금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게 됐다.


 "나도 이제 꼰대가 다 됐나 봐. 요즘 '젊은 애'들은 왜 그래?"


 70년대 후반생인 M은 작금의 '90년대생'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했다. 업무 때문에 이야기할 게 있어서 건너편 자리의 후배에게 갔더니 말도 없이 반차 쓰고 퇴근해 버려서 없더라. 퇴근할 때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같은 부서 선배들한테 갈 땐 간다 올 땐 왔다 정도의 인사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어느 날은 후배들이 죄다 자리에 없길래 무슨 일이 있나 싶었는데, 섭섭하게도 자기네들끼리 회의실에서 쑥덕쑥덕 알 수 없는 작당 모의를 하고 있더라. 요즘애들 중의 한 명은, 실은 그렇지도 않은데, 본인 업무가 과중하다면서 까마득한 선배인 J 차장님께 가서 "당신이 일을 좀 더 해야지, 나만 이렇게 일하는 건 불합리하다."며 따박따박 따지기도 하더라. 나때는 말이야, 상상도 못할 일이야. 마음 여린 그 차장님께서는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요 며칠 밤에 잠을 못 주무셨다는 등의 그동안의 사건 사고들을 한참이나 들었다.


 M 선배는 후배에 대한 불편함을 늘어놓던 중 '나때는 말이야', 라는 생각에 미치자 본인 스스로 '내 안의 꼰대' 있음에 대해 놀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꼰대인지 후배들이 되바라진 건지 모르겠다고. 아무래도 요즘애들은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단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근황 이야기에 등장하는 선배에게도, 그동안 귀엽게만 봤던 후배에게도 그동안 몰랐던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적잖이 놀랐다. 사회 생활을 10년 가까이 했는데 아직도 한 길 사람 속 알기가 어렵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얼굴의 선배에게 괜한 농을 치며 위로를 건넸다.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걸 보니, 이제 부장으로 올라가실 때가 됐나 본데요?"

 (※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K 선배는 부장으로 승진했다)


 얼마 전에는 한때 본부장을 지냈으며 퇴임 후엔 자회사 대표로 부임했다가, 직장 내 괴롭힘 논란으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해임당한 선배 H가 세상을 떠났다. 인트라넷 게시판에 뜬 '본인상'이라는 단어에서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경조사 게시판에서는 대부분 부친이나 모친상, 본인이나 자녀의 결혼 등의 제목들을 보는 데만 익숙했지 본인의 죽음에 대한 공지는 그야말로 낯설기만 했다.


 실은 선배라지만 입사연도에서 몇십 년의 차이가 나는 데다 직종이 다른 분이어서 같이 일해 본 적도 말을 섞어 본 적도 없다. 오며 가며 얼굴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 내게는 딱 그 정도의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연배가 오래 된 그의 동기분들이나 같은 직종의 선후배들이 무척 따랐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게시판 글에는 그를 추모하고, 명복을 빌고,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의 댓글이 백여 개가 넘어갔으니까. 이례적인 숫자였다. 달린 댓글들을 하나씩 읽어보니 생전 그의 삶을 어렴풋이나마 그려 볼 수 있었다. 같이 일할 땐 모범이 되는 동료이자 선배였고, 갓 입사한 신입들에게는 직장 생활 내내 잊을 수 없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잊지 않고 건네주셨으며, 사내 트래킹 동호회에서도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우리 같이 자주 산에 다니자."고 어깨를 툭툭 치던 세상 좋은 분이셨다.


 며칠 뒤 자회사 감사에 참여했던 직원들과 밥을 먹으면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나 또 회사 밖의 어느 식당에서였다. 자회사에서 H가 얼마나 갑질과 폭언을 일삼았는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증언이었다. 이를테면 "모회사 직원들이 A급이라면 너네들은 D급 인생이야."라는 말 따위를 해댔다고. 도저히 참다못한 어느 직원이 녹취해서 제출한 증거 자료에는 그의 생생한 민낯이 담겨있다 했다. 어느 직원은 극한의 스트레스를 견디디 못해 결국 자살 시도까지 행해서 입원하기도 했단다. 그의 악행에 대한 워낙 명백한 증거들이 있기에 H가 해임 처분에 반발해서 냈던 검찰 고소도 기각되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얘기는 거기까지였다. 고인의 명예를 고려해야 한다기에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따져보기도 전에,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댓글들을 통해 그려 놨던 H의 사람 좋고 선한 이미지가 세상에 다시 없을 나쁜 인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한 사람의 실체는 얼마나 다양한 모습들로 이뤄져 있는지. 타인에게 보여 주는, 그리고 알게 되는 사람의 단면들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게다가 그 단면들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 글 한 줄에도 쉽게 흔들릴 만큼 덧없이 가볍기만 하다. 흔들리는 단면들을 모두 붙잡아서 재구성해 본들 불완전할 수밖에 없을 터. 이렇듯 누군가를 오롯이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한 집에서 같이 살았던 가족들에게서도 '얘가 원래 이랬었나?' 하며 종종 낯섦을 느끼고서 서늘해지는 때가 있는데, 하물며 직장에서 만나는 핏줄 하나 섞이지 않은 완전한 타인들은 오죽할까. 그저 장님 코끼리 만지듯 귀퉁이들을 조금씩 더듬어가면서, 내가 만졌던 다리 부분과 당신이 만졌던 코 부분, 또 다른 이가 만졌던 귀 부분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겸손하게 이해하고, '내가 저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게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닐 거야'라며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나는 그동안 후배 K도, 선배 M도, 고인이 된 H 대표에 대해서도 온전히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직도 당신들을 잘 모르겠다. 앞으로 얼마나 더 알게 될 수 있을까.



여의도 빌딩에서 일하고 있을 모르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노들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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