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타 부서의 후배 K 등과 함께나가서 밥을 먹었다. 그동안 코로나 19 때문에 줄곧 구내식당으로만 갔었는데 요즘은 점점 회사 바깥의 식당으로 나가는 횟수가 늘고 있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갈망은 공포마저도 쉬이 잊게 할 만큼 강렬한 걸까. 실은 그런 거창한 의지에서 나온 행동까지는 아니고, 구내식당 밥은 맛도 형편없는 데다 매번 보는 사람들이 아닌 다른 부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기꺼이 약속을 잡았더랬다. 지겨운 직장 생활을 견디려면 점심시간에라도이런저런 새로운만남이나 사건 등이 있어야한다. 간만의 식사 자리에서 그동안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K는 여전히 잘 생기고 유쾌하면서 별일 없이 잘 살고 있었다. 선배랍시고 챙겨주지 않아도 딱히 걱정되는 게 없는 친구이다. 그런데 같이 밥을 먹던 S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K과장, 이선균 성대모사 잘하는 거 알고 계셨어요?"
금시초문이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그래요? 전혀 몰랐는데. 한 번 들려줘 봐요!"
K는 쑥스러워하면서, 그렇다고 빼지는 않고 헛기침을 몇 번 크흠거린 뒤 성대모사를 시작했다. '봉골레 파스타'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예의 그 유명한 대사를 치는데, 눈을 감고 들으니 정말 똑 닮았다. 마치 동굴 속에 들어온느낌이다.내 옆에 배우 이선균이 앉아있는 게 틀림없다. 여세를 몰아 다른 성대모사도 선보이는 K. 함께 일했던부장이며 선배들의 목소리와 말투까지 기가 막히게 따라 한다. 눈을 감은 채 K가 흉내내는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알고 지낸 지 어언 5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처음 마주하는 낯선 모습이있구나. 나는 이 후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던 걸까.그동안 얼마나 모른 채로 지냈던 걸까.
며칠 뒤엔 선배 M과 밥을 먹었다. 예전에 같은 부서에서 몇 년 간 동고동락했기에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이다. 역시나 또다시 회사 밖의 어느 식당 테이블에 앉아, 역시나 또 근황을 이야기하다가,역시나 다시금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게 됐다.
"나도 이제 꼰대가 다 됐나 봐. 요즘 '젊은애'들은 왜 그래?"
70년대 후반생인 M은 작금의 '90년대생'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했다. 업무 때문에 이야기할 게 있어서 건너편 자리의 후배에게 갔더니 반차 쓰고 퇴근해 버려서 없더라. 퇴근할 때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같은 부서 선배들한테 갈 땐 간다 올 땐 왔다 정도의 인사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어느 날은 후배들이 죄다 자리에 없길래 무슨 일이 있나 싶었는데, 섭섭하게도 자기네들끼리 회의실에서 쑥덕쑥덕 알 수 없는 작당 모의를 하고 있더라. 요즘애들 중의 한 명은, 실은 그렇지도 않은데, 본인 업무가 과중하다면서 까마득한 선배인 J 차장님께 가서 "당신이 일을 좀 더 해야지, 나만 이렇게 일하는 건 불합리하다."며 따박따박 따지기도 하더라.나때는 말이야, 상상도 못할 일이야.마음 여린 그 차장님께서는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요 며칠 밤에 잠을 못 주무셨다는 등의 그동안의 사건 사고들을 한참이나 들었다.
M 선배는 후배에 대한 불편함을 늘어놓던 중 '나때는 말이야', 라는 생각에 미치자 본인 스스로 '내 안의 꼰대' 있음에 대해 놀랐다고 했다.그러면서 내가 꼰대인지 후배들이 되바라진 건지 모르겠다고. 아무래도 요즘애들은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단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근황 이야기에 등장하는 선배에게도, 그동안 귀엽게만 봤던 후배에게도 그동안 몰랐던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적잖이 놀랐다. 사회 생활을 10년 가까이 했는데 아직도 한 길 사람 속 알기가 어렵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얼굴의 선배에게괜한 농을 치며 위로를 건넸다.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걸 보니, 이제 부장으로 올라가실 때가 됐나 본데요?"
얼마 전에는 한때본부장을 지냈으며 퇴임 후엔 자회사 대표로 부임했다가, 직장 내 괴롭힘논란으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해임당한 선배 H가 세상을 떠났다. 인트라넷 게시판에 뜬 '본인상'이라는 단어에서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경조사 게시판에서는 대부분 부친이나 모친상, 본인이나 자녀의 결혼 등의 제목들을 보는 데만 익숙했지 본인의 죽음에 대한 공지는 그야말로 낯설기만 했다.
실은 선배라지만 입사연도에서 몇십 년의 차이가 나는 데다 직종이 다른 분이어서 같이 일해 본 적도말을 섞어 본 적도 없다. 오며 가며 얼굴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 내게는 딱 그 정도의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다만 연배가 오래 된 그의 동기분들이나 같은 직종의 선후배들이 무척 따랐다는 건 알 수 있었다.게시판 글에는 그를 추모하고, 명복을 빌고,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는내용의 댓글이 백여 개가 넘어갔으니까. 이례적인 숫자였다. 달린 댓글들을 하나씩 읽어보니 생전 그의 삶을 어렴풋이나마 그려 볼 수 있었다. 같이 일할 땐 모범이 되는 동료이자 선배였고, 갓 입사한 신입들에게는 직장 생활 내내 잊을 수 없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잊지 않고 건네주셨으며, 사내 트래킹 동호회에서도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우리 같이 자주 산에 다니자."고 어깨를 툭툭 치던 세상 좋은 분이셨다.
며칠 뒤 자회사 감사에 참여했던 직원들과 밥을 먹으면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나 또 회사 밖의 어느 식당에서였다. 자회사에서 H가 얼마나 갑질과 폭언을 일삼았는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증언이었다. "모회사 직원들이 A급이라면 너네들은 D급 인생이야."라는 말들을 해댔다고. 도저히 참다못한 어느 직원이 녹취해서 제출한 증거 자료에는 그의 생생한 민낯이 담겨있다 했다. 어느 직원은극한의 스트레스를 견디디 못해 결국 자살 시도까지 행해서 입원하기도 했다더라. 그의 악행에 대한 워낙 명백한 증거들이 있기에 H가 해임 처분에 반발해서 냈던검찰 고소도 기각되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얘기는 거기까지였다. 고인의 명예를 고려해야 한다기에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따져보기도 전에, 이미내 머릿속에서는그동안 댓글들을 통해 그려 놨던 H의 사람 좋고 선한 이미지가 세상에 다시 없을 나쁜 인간으로바뀌어 버렸다.
한 사람의 실체는 얼마나 다양한 모습들로 이뤄져 있는지. 타인에게 보여 주는, 그리고 알게 되는사람의 단면들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게다가 그 단면들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 글 한 줄에도 쉽게 흔들릴 만큼 덧없이 가볍기만 하다. 흔들리는 단면들을 모두 붙잡아서 재구성해 본들 불완전할 수밖에 없을 터. 이렇듯 누군가를 오롯이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한 집에서 같이 살았던 가족들에게서도 '얘가 원래 이랬었나?' 하며 종종 낯섦을 느끼고서 서늘해지는 때가 있는데, 하물며 직장에서 만나는핏줄 하나 섞이지 않은 완전한 타인들은 오죽할까.그저 장님 코끼리만지듯 귀퉁이들을 조금씩 더듬어가면서, 내가 만졌던 다리 부분과 당신이 만졌던 코 부분, 또 다른 이가 만졌던 귀 부분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겸손하게 이해하고, '내가 저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게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닐 거야'라며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나는 그동안 후배 K도, 선배 M도, 고인이 된 H 대표에 대해서도 온전히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최근에는 직장 동료는 아니지만 또한 명의 죽음을 접했다.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됐다 몇 시간 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생각지도 못한 황망한 죽음이었다. 짧은 슬픔 뒤엔 곧바로 놀라움이 찾아왔다. 그의 죽음이 그동안 덮어왔던 성 추문 사건이 밝혀질까 두려워 스스로 선택한 죽음으로 추정된다는, 믿을 수 없는 뉴스를 보고 난 뒤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원순이 (아직 사실관계가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성폭력 가해자라니. 아직 많은 이들이 '성희롱'이라는 개념 자체도 몰랐던 시절, 서울대 우 조교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여성 인권 보호에 한 발 앞서 나갔던 사람. 이후에도 양성 쓰기 운동과 호주제 폐지 운동에 참여했던, 감히페미니스트라면 페미니스트라 할 수 있었던 그런 사람이 어떻게. 나는 박원순이라는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었나, 혹은 내가 알고 있던 박원순이라는 사람이 변해버린걸까.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누군가를 오롯이 알기란 이토록 어렵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망자는 답할 수 없으니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는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숙제들이 주어졌다.
아직피해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지지않았기에 '피해 호소인'이라는 희한한 명칭이 붙은 피해자에게'박원순 지지자'라는 이름을 지닌 사람들이 가하는 2차 폭력은 심각할 정도이고, 마찬가지로 가해 사실이 확실치도 않은데 이미 파렴치한 범죄자로 낙인찍힌 고인에 대한 비난과 조롱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 조문에 대해서도 피해자와의 연대를 표명하며 거부를 선언하는 사람들,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를 표하는 것에 왜 정치를 결부시키냐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대립도 이어졌다. 나아가 지자체장들이 자신의 '소왕국' 내에서 누리는 제왕적 권력에 대한통제 방안은 없는지, 아직까지도 뿌리 깊게 남아있는 수직적 관계에서 상사의'위력에 의한 폭력'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왜 진영 논리에 빠진 사람들은 공과 과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편' 들어주기에만 여념이 없는 건지, 소위 진보 진영의 정치인들은 왜 본인의 흠집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이라는 '손쉬운 회피'를 선택하는지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생겼다. 고민거리들이 한가득이다.
어찌 됐건 한 사람의 실체적 진실과 다양한 면모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알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내가 현재까지 단편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그의 모습으로 그를 기억하고 싶다.사회운동가이자 서울시장으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마지막엔 자신의 죄과로 인해 안타까운 결말을 선택한 사람이라고.공과 과는 구분해야지, 과오 하나 때문에 그의 공을 싸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비난만 하지는 못하겠다. 그리고 사람이 죽었는데 일단 슬퍼하는 게 인지상정일 테고나뿐만 아니라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를 추모하는 와중인데,어떤 이들은개인의 애도 방법에까지 '틀렸다 맞다' 하며 이래라저래라 '옳은 길'을 가르치려 겁박한다.대체 왜들 그러나모르겠다.
여하튼 고인의 명복을 빈다.그리고 나는 아직도 당신을 잘 모르겠다. 불러도 대답없을 당신에 대해 앞으로 얼마나 더 알게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