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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Jul 26. 2020

나는 아직도 당신을 잘 모르겠다

주간(週間) 필름 사진첩 서른아홉 번째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못다 이룬 유산 중의 하나, 노들섬
서울시청에서 세종문화회관을 거쳐 세월호 광장까지 걸어갔던 어느날 밤

Nikon FG-20

Nikon Series E 50mm f1.8 lens

Kodak colorplus 200

2020년 2월





오랜만에 후배 K 등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동안 코로나 19 때문에 줄곧 구내식당에서만 밥을 먹었는데 요즘은 점점 회사 바깥의 식당으로 나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갈망은 공포마저도 쉬이 잊게 할 만큼 강렬한 걸까. 실은 그런 거창한 의지에서 나온 행동까지는 아니고, 구내식당 밥은 맛도 형편없는 데다 매번 보는 사람들이 아닌 다른 부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 기꺼이 약속을 잡았더랬다. 지겨운 직장 생활을 견디려면 점심시간에라도 즐거운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 간만의 식사 자리에서 그동안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K는 여전히 잘 생기고 유쾌하면서 별일 없이 잘 살고 있었다. 선배랍시고 챙겨주지 않아도 딱히 걱정되는 게 없는 친구이다. 그런데 같이 밥을 먹던 S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K과장, 이선균 성대모사 잘하는 거 알고 계셨어요?"


금시초문이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그래요? 전혀 몰랐는데. 한 번 들려줘 봐요!"


K는 쑥스러워하면서, 그렇다고 빼지는 않고 헛기침을 몇 번 크흠거린 뒤 성대모사를 시작했다. '봉골레 파스타'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예의 그 유명한 대사를 치는데, 눈을 감고 들으니 정말 똑 닮았다. 동굴 속에 들어온 기분걸 보니 내 옆에 배우 이선균이 앉아있는 게 틀림없다. 여세를 몰아 다른 성대모사도 선보이는 K. 함께 일했던 회사 부장 선배들의 목소리와 말투까지 기가 막히게 따라 한다.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알고 지낸 지 어언 5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처음으로 보는 낯선 모습이 있구나. 나는 이 후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 얼마나 모르고 지냈던 걸까.




며칠 뒤엔 선배 M과 밥을 먹었다. 예전에 같은 부서에서 몇 년 간 동고동락했기에 친하게 지내고 있는 분이다. 역시나 또다시 회사 밖 식당 자리에 앉아 역시나 또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역시나 다시금 생각지도 못한 고백을 듣게 됐다.


"나도 이제 꼰대가 다 됐나 봐. 요즘 '젊은애'들은 왜 그래?"


70년대 후반생인 M은 작금의 '90년대생'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했다. 업무 때문에 이야기할 게 있어서 건너편 자리후배에게 갔더니 반차 쓰고 퇴근해 버려서 없더라. 퇴근할 때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같은 부서 선배들한테 갈 땐 간다 올 땐 왔다 정도 인사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어느 날은 후배들이 죄다 자리에 없길래 무슨 일이 있나 싶었는데, 섭섭하게도 자기네들끼리 회의실에서 쑥덕쑥덕 알 수 없는 작당 모의를 하고 있더라. 요즘애들 중의 한 명은 (실은 그렇지도 않은데) 본인 업무가 과중하다면서 까마득한 선배인 차장님께 가서 "당신이 일을 좀 더 해야지, 나만 이렇게 일하는 건 불합리하다"며 따박따박 따지기도 하더라. 나때는 말이야, 상상도 못할 일이야. 마음 여린 그 차장님께서는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요 며칠 밤에 잠을 못 주무셨다고.


M 선배는 나때는 말이야, 라는 생각에 미치자 본인 스스로 '내 안의 꼰대' 있음에 대해 놀랐다고 다. 러면서 가 꼰대인지 후배들이 되바라진 건지 모르겠다고. 아무래도 요즘애들은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단다. 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근황 이야기에 등장하는 선배에게도, 그동안 귀엽게만 보였던 후배에게도 그동안 몰랐던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적잖이 놀랐다. 사회 생활을 10년 가까이 했는데 아직도 한 길 사람 속 알기가 어렵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얼굴의 선배에게 농을 치며 위로를 건넸다.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걸 보니, 이제 부장으로 올라가실 때가 됐나 본데요?"




얼마 전에는 한때 본부장을 지냈으며 퇴임 후엔 자회사 대표로 부임했다가, 직장 내 괴롭힘 논란으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해임당한 선배 H가 세상을 떠났다. 인트라넷 게시판에 뜬 '본인상'이라는 단어에서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경조사 게시판에서는 대부분 부친이나 모친상, 본인이나 자녀의 결혼 등의 제목들만 익숙했지 본인의 죽음에 대한 공지는 그야말로 갑작스럽기만 했다.


실은 선배라지만 입사연도몇십 년의 차이가 나는 데다 직종이 다른 분이셔서 같이 일해 본 적도 말을 섞어 본 적도 없다. 오며 가며 얼굴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 내게는 딱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다만 연배가 오래 되신 그의 동기들이나 같은 직종의 배들이 무척 따랐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게시판 글 그를 추모하고,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내용의 댓글이 백여 개가 넘어갔으니까. 이례적인 숫자다. 달린 댓글을 하나씩 읽어보니 생전 그의 삶을 어렴풋이나마 그려 볼 수 있었다. 같이 일할 땐 모범이 되는 동료이자 선배였고, 갓 입사한 신입들에게는 을 수 없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잊지 않고 건네주셨으며, 트래킹 동호회에서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우리 같이 자주 산에 다니자"던 세상 좋은 분이셨다.


며칠 뒤 자회사 감사에 참여했던 직원과 밥을 먹으면서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나 또 회사 밖의 어느 식당에서였다. 자회사에서 H가 얼마나 갑질 폭언을 일삼았는에 대한 구구절절한 증언이었다. "모회사 직원들이 A급이라면 너네들은 D급 인생"이라는 말 따위를 도저히 참다못한 어느 직원이 녹취해서 제출한 증거 자료에는 그의 생생한 민낯이 담겨있다 했다. 혹자는 결국 극한의 스트레스를 견디디 못해 자살 시도를 해서 입원하기도 했고. 그의 악행에 대한 워낙 명백한 증거들이 있기에 H해임 처분에 반발해서 냈던 검찰 고소도 기각되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고인의 명예를 한다기에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진실이 무엇인지 따져보기도 전에,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댓글들을 통해 그려  H의 이미지가 세상 나쁜 놈으로 바뀌어 버렸다.




한 사람 실체는 얼마나 다양한 모습들 이뤄져 있는지. 인에게 보여 주는, 그리고 알게 되는 단면들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그리고 그 단면들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 글 한 줄에도 쉽게 들릴 만큼 덧없이 가볍기만 하. 흔들리는 단면들을 모두 붙잡아서 재구성해 본 들 불완전할 수밖에 없을 터. 이렇듯 누군가를 오롯이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한 집에서 같이 살았던 가족들에게서도 '얘가 원래 이랬었나?' 하며 종종 낯섦을 느끼고서 서늘해지는 때가 있는데, 하물며 직장에서 만나는 완전한 타인들은 오죽할까.  장님 코끼리 만지듯 조금씩 알아가서, 내가 만졌던 다리 부분과 당신이 만졌던 코 부분, 또 다른 이가 만졌던 귀 부분서로 다를 수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 '내가 저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게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닐 거야'라생각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직장 동료는 아니지만 또 한 명의 죽음을 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됐다 몇 시간 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망한 죽음이었다. 슬픔 뒤엔 곧바로 놀라움이 찾아왔다. 그의 죽음이 그동안 덮어왔던 성폭력 사건이 밝혀질까 두려워 스스로 선택한 죽음으로 추정된다는 믿을 수 없는 뉴스를 보고 난 뒤였다.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원순이 (아직 사실관계가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성폭력 가해자라니. 아직 많은 이들 '성희롱'이라는 개념 자체도 몰랐던 시절, 서울대 우 조교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여성 인권 보호에 한 발 앞서 나갔던 사람. 이후에도 양성 쓰기 운동과 호주제 폐지 운동에 참여했던, 감히 페미니스트라면 페미니스트라 할 수 있었던 그런 사람이 어떻게. 나는 박원순이라는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었나, 혹은 내가 알고 있던 박원순이라는 사람이 변해버린 걸까.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누군가를 오롯이 알기란 이토록 어렵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망자는 대답할 수 없으니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는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숙제들이 주어졌다.


아직 피해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기에 '피해 호소인'이라는 희한한 명칭이 붙은 그녀에게 '박원순 지지자'라는 이름을 지닌 사람들이 가하는 2차 폭력은 심각할 정도이고, 마찬가지로 가해 사실이 확실치도 않은데 이미 범죄자로 낙인찍힌 고인에 대한 비난과 조롱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 조문에 대해서도 피해자와의 연대 표명하며 거부하는 사람들, 최소한의 인간적인 의를 다하는 것에 왜 정치를 결부시키냐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대립도 이어졌다. 나아가 지자체장들이 자신의 '소왕국' 내에서 누리는 제왕적 권력에 대한 통제 방안은 없는지, 아직까지도 뿌리 깊게 남아있는 '위력에 의한 폭력'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왜 진영 논리에 빠진 사람들은 공과 과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편' 들어주기에만 여념이 없는 건지, 진보 진영의 정치인들은 왜 본인의 흠집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이라는 '손쉬운 회피'를 선택하는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생겼다. 고민거리들이 가득이다.


어찌 됐건 한 사람의 실체적 진실과 다양한 면모들모두 알 수 없으니, 나는 내가 현재까지 알고 있는 그의 모습으로 그를 기억하고 싶다. 회운동가이자 서울시장으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마지막엔 자신의 죄과로 인해 안타까운 결말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과 과는 구분해야지, 오 하나 때문에 그의 공을 싸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비난만 하지는 못하겠다. 그리고 사람이 죽었는데 일단 슬퍼하는 게 인지상정일 테고 나뿐만 아니라 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를 추모하는 와중데, 떤 이들은 개인의 애도 방에까지 '틀렸다 맞다' 하며 이래라저래라 '옳은 길'을 가르치려 겁박하라. 대체 왜들 그러나.


여하튼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당신을 잘 모르겠다. 불러도 대답없을 당신에 대해 앞으로 얼마나 더 알게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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