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아이를 위한다면 '내일은 늦으리'
1992년 10월, 환경보호를 주제로 한 콘서트가 하나 열렸다. 공연 이름은 '내일은 늦으리'. 무대에 오른 곡들을 모아 동명의 <내일은 늦으리>라는 컴필레이션 앨범도 발매됐다. 이 행사에는 당대의 내로라하는 음악인들이 총출동했다.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서, 푸른하늘, 신승훈, 이승환, 015B, 넥스트, 윤상, 서태지와 아이들, 신성우, 이덕진까지. 가히 한국 대중가요계의 올스타급 참여진들이었다. 굳이 팝 음악계에서 찾아보자면 라이브 에이드 공연으로 이어진 'Do They Know It's Christmas?'나, 미국 음악인들의 'We Are the World' 자선 앨범 등과 비견될 수 있으려나.
바야흐로 1988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부터 불과 4년이 지났을 때. 이제 곧 민주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있었고, 국민소득 몇 만 불이 어쩌니 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도 논의되었으며, 중국과의 수교 정상화 및 교역 시작 등 모두가 장밋빛 꿈에 젖어있는, 그야말로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둔 때였다. 그런데 찬물을 끼얹는 것도 아니고 당시로서는 이름도 낯선 환경보호라니.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간 듯했다. 괜히 사람들 불안하게 말이다.
다음은 행사를 주도하고 앨범 프로듀싱까지 맡았던 신해철이 작곡한 타이틀곡 '더 늦게 전에'의 가사 일부다.
"어린 시절엔 뛰놀던 정든 냇물은
회색 거품을 가득 싣고서 흘러가고
공장 굴뚝에 자욱한 연기 속에서
내일의 꿈이 흐린 하늘로 흩어지네
하늘 끝까지 뻗은 회색 빌딩 숲
이것이 우리가 원한 전부인가
그 누구가 미래를 약속하는가
이젠 느껴야 하네 더 늦기 전에
그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밤하늘을 바라볼 때에
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들을
두 눈 속에 담게 해 주오"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서 밤하늘을 볼 때 별이 반짝이는 게 보였으면 하는, 그나마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는 환경을 보전하자는 내용. 그땐 미세먼지도, 이상기후나 지구 온난화도, 코로나 19라는 역병도 없었을 시절인데 벌써부터 이런 걸 걱정했다니. 새삼 그들의 선견지명에 감탄하게 된다. 때론 예술이 현실보다 더욱더 현실적일 때가 있다.
하지만 <내일은 늦으리> 이후 20여 년 간 환경오염은 더욱 심각해졌다. 주제곡 가사 내용에서처럼 공장 굴뚝에 자욱한 연기, 아니, 그런 연기라도 눈으로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 미세먼지가 갈수록 심해진다. 하늘이 희뿌연 탓에 굴뚝이 보이지도 않는데 굴뚝 연기가 보일 리가 없다. 서울에서 밤하늘의 별을 본다는 건, 그런 시도조차도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지금은 별이 보이기는 하려나. 코로나 19 때문에 되도록 외출을 삼가는 탓에 밤하늘에 별이 뜨는지 달이 뜨는지 못 본 지 오래다.
비단 환경뿐만 아니라 참여했던 아티스트들도 그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전태관, 넥스트의 신해철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015B의 새 앨범을 더 이상은 기다릴 필요가 없는 듯하며, 서태지와 아이들은 해체됐고 멤버 양현석은 뉴스 사회면에서 더 자주 보이고, 장발의 미남 록커 이덕진은 소식을 들어본 지 오래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 흘렀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 시절 좋아했던 아티스트들의 간곡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동안 환경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치기 어린 반발심 비슷한 생각도 있었다. 앞 세대들이 망쳐놨는데 왜 우리 세대가 고생해야 하나. 나도 그냥 하던 대로 별생각 없이 살련다. 다음 세대는 알아서들 문제를 잘 해결하겠지. 그때가 되면 새로운 기술이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모든 걸 해결해 줄 수도 있으리라. 내가 100살, 200살까지 살 것도 아닌데 알 게 뭐냐 싶었다. 그랬더니 정말 다음 세대의 어린 친구가 등장해서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의'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바로 스웨덴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다.
그녀는 8살 무렵 기후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뒤 ‘기후변화 전도사’가 되었다고 한다. 2018년에 스웨덴 의회 앞에서 '프라이데이 포 퓨처(Fridays for Future)'라는 1인 시위를 벌이면서 청소년 환경운동가로 세상에 알려졌다. 프라이데이 포 퓨처는 현재의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에겐 미래도 없으므로, 매주 금요일 등교를 거부한다는 취지의 시위다. 유명세를 탄 툰베리는 2019년 UN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해 “당신들은 우리를 실망시켰다. 여러분이 우리를 저버린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느냐(How dare you)?"라는 발언으로 성장에만 치중하고 환경 문제에 대응하지 않는 사회며 기업들에 일침을 가했다. 이후 툰베리가 혼자 시작했던 프라이데이 포 퓨처 시위는 현재 전 세계 135개국에서 200만 명이 넘는 청소년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발전했다. 그녀의 삶을 다룬 영화도 만들어졌는데 올해 한국에서도 개봉될 예정이라 들었다.
아이가 태어난 작년. 내가 어렸을 땐 2020년이 되면 TV 만화에서처럼 원더키디와 우주여행을 할 줄 알았건만 현재로 닥쳐온 미래는 썩 달갑지 않은 모습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일주일에 두세 번씩 재택근무를 하며 '집에만' 갇혀있었고, 외출을 하고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타인에 대한 불신과 증오만 커져갔으며, 앞으로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더욱 나빠질는지' 불안감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툰베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환경 보호를 위한 행동은 딱히 하질 않았다. 변명을 하자면,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쓰레기들이 많이 생겨나서였다. 아니, 아이를 낳기 이전부터 그랬다.
아내가 만삭이던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베이비 엑스포 행사에 들렀던 적 있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육아 용품들과 수많은 업체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처음 접하는 육아라는 신세계의 문물들에 정신을 못 차리고 한참 동안을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서울에 갓 올라온 시골영감의 놀란 표정이 우리 얼굴에도 똑같이 떠올라 있었을까. 선진 육아 용품 지식을 흠뻑 충전해 온 아내는 미친 듯이 인터넷 쇼핑을 시작했다. 매일같이 벨소리와 함께 현관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주문했던 택배, 택배, 또다시 택배가 밀려드는 나날들이었다. 새로 산 물건들뿐만 아니라 물려받은 동화책, 아기 의자, 모빌 등의 물건들, 선물 받은 기프티콘으로 주문한 물건들도 방 한쪽 구석에 산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물건들에 딸려 온 골판지 박스며 포장지며 종이봉투며 비닐이며 쓰레기들 역시 산처럼 생겨났다.
아이를 키우게 되니 쓰레기를 더 많이 만들어낸다. 우리집이 쓰레기 제조 공장이라도 된 양.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환경 파괴를 행했는지 따져봤다.
오늘을 맞이하기 전부터 아이 방에는 미니 조명이, 거실에는 스탠드가 밤새 불을 밝혔다. 전기를 많이도 썼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 분명 화석 연료가 소모되고 탄소가 배출됐을 게다. 아침에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기저귀를 새 걸로 갈면서 첫 쓰레기를 만들어냈다. 면기저귀를 빨아서 쓰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우리는 아직 엄두를 못 내겠다. 하루에만 너댓번 기저귀를 갈아준다. 아침밥으로는 이유식을 먹이는데 아직 수저가 익숙지 않은 13개월 아이는 바닥이며 옷에 많이도 흘린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들을 닦으면서 휴지 몇 장을 뽑아 썼다. 오전에는 새벽 배송으로 도착한 택배를 정리하면서 박스며 종이봉투며 비닐 여러 장을 버렸다. 그뿐이랴. 새로 온 물건들을 닦는답시고 사용했던 소독 물티슈가 또 여러 장이다. 아이가 점심, 저녁을 먹으면서 옷에 흘려대는 통에 빨래를 매일 돌려야 한다. 깨끗하게 씻겨내려고 세탁기에 세제도 탈탈 쏟아붓는다. 친환경 세제라지만 이렇게나 자주, 많이 써도 될까 싶어 걱정된다. 아이와 바깥나들이를 다녀와서 목욕을 하는데 역시나 친환경 바디 용품을 쓴다. 역시나 이렇게나 자주, 많이 써도 될까 또 걱정이다. 저녁에는 깨끗한 집을 유지하려고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를 털고 바닥을 닦는다. 일회용 먼지포며 물걸레 따위 쓰레기가 생겨났다.
결국, 우리집에서는 매일같이 종량제 쓰레기봉투 하나가 꽉 찰 만큼의 쓰레기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이 없이 둘이서 살 땐 봉투 하나가 가득차기까지 며칠은 걸렸던 것 같은데. 쓰레기뿐이랴. 전기며, 물이며, 가스는 또 얼마나 쓰는 건지. 아이를 키운다는 핑계로 환경 따위 뒷전이다.
이러다가는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무렵 많은 걸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어도어 C. 듀머스는 책 <내일은 못 먹을지도 몰라>에서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가 계속되다 보면 지금의 먹거리들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몇 해 전부터 전염병으로 인해 바나나가 멸종된다거나 기후 변화로 인해 사과를 먹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마침 아이에게 사과를 먹이던 중이었는데, 책을 소개하는 라디오 팟캐스트에서 사과 멸종에 대한 우려가 흘러나왔다. 들으면서 가슴이 철렁했다. 아이가 이렇게나 좋아하는 사과인데 훗날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니. 아빠 걱정은 아랑곳없이 아이는 그새 사과 한 조각을 사각사각 다 갉아 먹고서 더 달라며 조그마한 손을 내민다.
결은 다르지만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의 한 장면도 떠오른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가 멸망하고 난 후 근근이 하루를 살아가는 생존자들. 어느 영감님은 예전의 문명사회에서 즐겨 먹었던 소고기 스테이크를 죽기 전에 다시 한번 맛봤으면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소가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매개체로 의심되는 세상이라 소고기라는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다시 만날 수 없는 그때 그 맛을 그리워하며 입맛을 다신다. 전세계적 역병이 퍼진 요즈음, 이게 만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하루, 휴지를 뽑아 쓰기보단 행주나 걸레를 빨아 쓰고, 빨랫감에 세제는 어제보다 덜 붓고, 밤에 전등 하나 정도는 꺼 두고, 성급하게 에어컨을 켜는 대신 선풍기 바람으로 버티면서, 꼭 새 물건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당근마켓을 찾아보는 등 환경 보전을 위한 행동을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가 이제 슬슬 부모의 행동을 따라하는데, 걷기와 동시에 쓰레기 줍기를 함께하는 운동인 플로깅(plooging)을 보여주는 건 어떨까. 별것 아니지만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내일로 미룰 순 없는 일이다. 별것 아닌 것들이 모여 나중에는 별것이 될 수도 있으니까. 예전에는 환경 따위 나 몰라라 하더니만 제 새끼를 키우게 되니 태도가 바뀌었군, 거 참 이기적인 양반일세, 고작 아이에게 사과 하나 먹이려고 사람이 변했어, 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다. 애덤 스미스도 개인의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면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더 나은 사회로 인도할 거라고 하지 않았나.
여하튼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내일은 늦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