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이태 전. (이 글은 2021년에 썼다) 그러니까 홍콩의 국가보안법과 이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도, 코로나 19라는 전염병도 뉴스에 나오지 않던 시절, 홍콩으로 여행을 떠났다.
홍콩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 오래였다. 그런 원을 품은 건, 단 한 번이라도 보고 나면 그 후로는 헤어 나올 수 없게 되는 전성기의 홍콩영화 때문인 듯하다. 영화에 나오는 도시의 풍경들은 나를 사로잡았다. 온갖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과 볼거리들이 한데 모여 북적거리고, 미식가들의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이 도처에 가득하고, 왠지 모르지만 겪어본 적도 없는 삼십여년 전 그때 그 시절에 대한 묘한 향수도 품게 했다. 평생 한번도있어 본 적 없지만 자꾸만 그리워지던 그곳에 언젠가는 꼭 가리라고. 영화에서 나오던 장소들을 직접 거닐면서 꿈같은장면들을 현실로 만져보고 싶었다.
가스등이 켜진 계단에서 장백지와 주성치처럼 연기 연습도 하고, 장만옥을 뒷자리에 태운 채 광장 거리를 달리던 여명처럼 자전거 페달을 밟고, 혹은 주윤발처럼 성냥개비 하나 물고 (아쉽게도 기관총을 손에 들 순 없지만) 바바리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해안가를 멋있게 걷고, 노란 가발을 쓰고 청킹 맨션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임청하처럼 달려보고, 끝없이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쭈그려 앉은 채 바깥에 있는 양조위의 집을 내려다보고, 우리가 헤어질 건 아니지만 오래된 다방에 앉아 양조위와 장만옥 커플처럼 상상 이별 연습도 하고, 영원토록 아름다운 배우 장국영이 마지막으로 뛰어내린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잠시나마 추모도 하고 싶었다. 유덕화처럼 아내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히고 오토바이를 달리는 것까지는, 아무래도 무리겠지.
여행의 시작은 여행지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 아니라 계획을 세우는 때부터라고 했다. 설렘의 시작은 그때부터라고. 아내와 함께 신이 나서 여행 계획을 짰다. 영화에나왔던 이곳저곳을 가 보고 사진도 찍어야지, TV에 등장했던맛나 보이던 음식들을 먹어야지, 그 유명한 에스컬레이터도 타고 페리선도 타고 야경 보러 케이블카도 타야지. 머릿속으로 여행 장면을 상상하니 벌써 여행지에 도착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절대 빼먹으면 안 되는 것 하나.홍콩에서 영화 답사만큼이나 꼭 해야 했던 건 이곳의 '새우 완탕면' 먹기였다. 신혼 초 마포구 상수동에 살 때 둘이서 즐겨가던 '화화'라는 중국집이 있었다. 정통 홍콩식 에그면을 표방하며완탕면을 팔았는데 면발이고 완탕이고 국물이고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맛이 끝내줬다. 그 맛에 반해 시도 때도 없이 무던히도 들렀더랬다. 이사하면서 상수동을 떠났는데 얼마 안 돼서 그 가게가 사라졌길래 무척 안타까웠다. 그 후로 오랫동안 늘 궁금했다. 홍콩에 가면 진짜 정통 에그면, 오리지널 완탕면이라는 걸 먹어볼 수 있을까. 그거 정말 우리가 먹던 것만큼 맛있을까.
홍콩 여행 둘째 날 아침, 마침내 오래된 의문을 풀게 되는 순간과 마주했다. 숙소 근처에 구글맵 평점이 높은 완탕면 집이 하나 있었다. 인터넷에서 홍콩 여행기를 검색해 보면 으레 '침차이키'라는 유명한 가게에 많이들 가던데, 굳이 사람 많은 곳을 줄을 서서 비집고 들어가야 되나 싶어서 부러 호텔 가까운 곳으로 찾아갔다. 광둥어식 발음은 모르지만 한자음으로는 '용기(龍記)'라는 이름의 간판을 매단 완탕면 집. 가게는 허름했다. 그리 크지 않아 테이블도 네댓 개밖에 없었다. 들어서자마자 왠지 '현지인들이나 찾을 법한 곳'의 분위기라서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상하게도 여행을 가면 그곳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별스런 희망을 품곤 한다. 카메라와 여행책자 따위는 가방 속에 숨겨서 현지인의 외양을 갖추려고 애쓰거나,그들이 즐겨먹는 음식을 자연스럽게 입에 넣고, 혹은 그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 수 없는 외진 식당에 찾아가는 따위짓을 한다. 그렇게라도 잠시나마 원래 살던 곳과 완전히 이별하고서, 그동안 닿은 적 없던 새로운 곳에동화되고 싶어서일까. 그래 봤자 그곳 사람들에게는 며칠 스쳐 지나가는 한낱 여행객처럼 보일 게 뻔한 데도.
음식은 금방 나왔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완탕면과 달콤 쌉싸름한 밀크티 한 잔. 마침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탓에 뜨끈하고 시원한 국물이 못내 반가웠다. 새우 완탕 역시 기대했던 만큼 실하고 탱글탱글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빨간 식초인지, 고추기름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양념을 좀 넣어주니 맛이 더 좋아졌다. 숟갈을 뜨면 뜰수록 담백하면서도 은근히 진한 국물 맛이 혀를 감싸고돈다. 내 입맛엔 새우 완탕도 국물도 면발도 모두 훌륭하다 느끼는 중인데.
이게 웬걸, 아내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썩 취향에 맞지 않는단다. 아내는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쁘지는 않은데... 면 식감이 너무 이상하네. 툭툭 끊어지고. 예상했던 맛하고는 너무 다른데."
하긴. 에그면이라는 게 정말 이런 거였나 싶을 만큼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식감이긴 했다. 한국에서는 쉽사리 만나 볼 수 없는 어색한 면발이었다. 고무줄처럼 탱탱하면서도 메밀면처럼 툭툭 끊어진다. 혹시나예전 상수동 완탕면 맛이 기억 속에 너무 강렬하게 새겨져 있어그런 걸까.처음부터 완탕면이라는 음식을 몰랐다면 맛있게 느꼈을지 모른다. 원래 이런 맛이겠거니, 하며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우리, 맛있는 걸 너무 많이 알아버린 거 아닐까? 아는 맛하고는 달라서 이상하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지."
"그럼 아는 것보다 더 맛있는 음식, 더 맛있는 집을 계속해서 찾아다녀야겠네. 어쩔 수 없다."
아내의 얼굴은 실망스러운 표정에서 어느새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동안 맛있는 음식들을 너무 많이 먹어봐서 그렇다. 이미 알아버린 입이 되어버린 탓에 웬만큼 맛있지 않으면 성에 안 차는 건지도 모른다. 더 맛있는 걸 끊임없이 찾아내지 못할 바에야 이제부터는 종종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꾸역꾸역 삼키면서 입맛의역치라는 걸 끌어내려야 하나, 싶었다.앎이라는 건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기쁨에 대한 무감함과 더불어 때로는 쓸데없어 보이는 수고스러움을 수반하기도 한다. 일단 완탕면이라는 걸 먹어 본 이후에는 국물이 해산물을 베이스로 하는지 시원한지 감칠맛은 또 괜찮은지, 새우 완탕은 크기가 작은지 큰지 신선한지 밀가루 피는 또 적당한지, 면발은 색이 어떠하며 식감은 어떠하며 굵기는 또 어떠한지 따위를 따지게 된다. 먹어 본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에 비례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더 느끼고 자세히 구분하고 다른 것들과 비교하고 순위를 매기기까지 한다.무언가에 대해 알게 될수록 남들에게는 일견까다로운 사람이되어 버린다.그럼에도이제는아무것도 모르던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그저 까다로운 사람이 될 뿐 아니라 비난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안다는 건, 고약하게도 혼자만의 즐거움에 그치게 하지 않고 남에게도 가르쳐주고 싶어 안달 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알은체'를 하게끔 한다. 내가 완탕면이라는 세계를 잘 알고 있다, 이를 모르는 당신에게도 이 세계를 공유하고 싶다며, 상대방은 썩 듣고 싶지도 않은 걸 신이 나서 떠든다. 매년 여름, 평양냉면을 앞에 두고 으스대 사람들이 하던 모양과 비슷하다. 모름지기 냉면 육수는 슴슴해야 하고, 따라서 식초와 겨자는 촉수 엄금이며, 면은 끊어 먹으면 안 된다는 둥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그들. 들을 때마다 질색팔색 했지만실은 그들은,우리 앞에 놓인 음식이라는사물을 매개채 삼아 당신과 통하고 싶다, 는 마음으로 그랬던 것 아닐까. 알아버린 자들 간의 동지 의식 같은 게 느껴진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답잖은 잘난 체를 끝없이 이어가는 탓에 다대기와 식초와 겨자를 동지도 뭣도 아닌그네들의 냉면 그릇에다 탈탈 부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그동안 음식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무거나 대충 입에다 욱여넣는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나.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시나브로 나도 취향이라는 게 생겼다. 그만큼 나의 세계가 넓어졌다.비록 알게 된다는 것이 다소 수고스럽고 괜한 욕을 먹게 할지라도, 어제보다 조금이나마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면 손해 보는 일만은 아닐 게다. 비단 홍콩의 완탕면뿐일까. 세상에 얼마나 더 많은 맛있고 새로운 것들이 있을까. 아직 알지 못하는, 그동안 가 닿은 적 없는 세계가 늘 궁금하고 그립다. 새삼 여행이 그리워지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