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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Dec 21. 2021

빈자리를 찾아 헤매는 여행객

상하이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2018년 4월)

1. 빈자리를 찾아 헤매는 여행객

동방명주가 빛나는 상하이의 밤



 하이 여행을 결심한 건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동방명주'를 봤을 때였다. 구슬을 꿰어놓은 막대처럼 생긴 탑, 상하이의 랜드마크. 밤하늘을 배경으로 반짝거리는 것이 사람 마음을 어찌나 사로잡던지. 아내도 나도 화면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내 언가에 홀린 듯 어플 3개를 돌려 비교해가며 괜찮아 보이는 호텔을 예약하고 스카이스캐너에서 가장 싼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여행 계획이야 나중에 대충 세우기로 하고 일단 출발을 목표로 달렸다.


 목적지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2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상하이 푸동 공항. 여기서부터 여행의 시작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Metro' 간판을 찾아서 따라갔다. 전철 타는 곳 입구에 자기부상열차 Maglev 매표소가 있다. 여기서 교통카드를 구매하면 된다. 상하이 택시는 낡고 지저분한 차, 말귀를 못 알아듣는 기사 등으로 악명이 높다. 대신 전철이며 버스 같은 대중교통이 잘 돼 있다기에 이 카드를 열심히 쓰면서 다니기로 했다. 보증금 20위안을 포함해서 넉넉잡아 70위안, 한화로 약 13,000원어치를 충전한 카드를 샀다. 2박 3일 동안 다니기엔 충분했다.


 연. 열차에 올라탔더니 깨끗했다. 여기가 중국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안내문도 잘 돼있고, 전광판도 새 것 모양이고, 동선도 효율적이고. 타고 다니기에 무척 편리했다. 딱 하나 불편했던 건 전철 개찰구에 들어설 때마다 메고 있는 가방을 엑스레이 검색대에 통과시켜야 하는 거로움. 아마도 테러 방지가 목적인 듯했다. 매번 귀찮았지만 대중의 안전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하튼 고속 에 드디어 올라탔다. 열차는 무서운 속도로 달리더니 불과 20여 분도 안 돼서 종점인 시내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숙소가 있는 인민광장으로 가기 위해 2호선 전철로 갈아탔다. 서울이나 상하이나 2호선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낯설기보다는 익숙한 광경. 내가 여행을 온 건지 출근길 도중인지 일순 헛갈렸다. 지만 나는 저들과는 다른 여행객. 낯선 곳에서의 설렘을 숨길 수 없는 표정만 봐도 티가 날 터였다.


 하지만 전철은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커다란 단점이 있었다. 낙인을 찍듯 쾅, 하고 상하이에 대한 기억 속에 아물지 않은 상처의 흔적처럼 남아버린 문제의 장면. 그건 바로 줄을 설 때마다 항상 주쳤던, 새치기하는 중국인들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당했다. 누군가 멀리서부터 천히 걸어오더니 평온할 얼굴로 사람들 앞으로 끼어든다. 저들과 같은 일행인 건가, 싶어 쳐다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서로 대화를 주고받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다. 열차에 올라타서는 각기 제 갈 길을 가며 헤어진다. 물론 작별 인사 따위는 없다. 서로 생면부지의 사이였던 게다. 그제야 새치기를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나저나 무척 자연스러운 모습. 숨을 들이쉬고 내쉬듯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는 새치기였다.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은 이게 일상인 듯 아무렇지 않아 했다.


 이후로 전철을 탈 때면 언제 어디서나 새치기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새치기하는 이들의 관상은 특정할 수 없었다. 남녀노소, 차림새나 생김새도 불문. 법 없이도 살 것 같이 점잖아 보이던 양반도 어느샌가, 마치 맡아 둔 자기 물건이라도 돌려받는 양 끼어들었다. 방법도 다양했다. 일행이라도 되는 양 앞의 일행에 섞여 들기도 하고, 우리 바로 앞에 급히 끼어들기도 하고, 줄의 맨 앞에서 갑자기 나타나 몸을 밀어 넣기도 했. 그때마다 적잖이 당황스러워했다. 몇 번이나 얼굴이 시뻘게지고 을 하고 싶었. 가슴속에 뜨거운 불길이 화르륵 치솟기를 몇 차례. 지만 남의 나라에 와서 괜히 싸움에 휘말릴 수 없는 노릇이니 참기로 했다. 여행지에서의 즐거운 기분을 공연히 망치고 싶지 않았다. 불길을 꾹꾹 눌러 껐다.


 상하이 근교 우전, 주가각, 치바오 세 곳은 수향 마을로 유명하다. 베네치아처럼 물길이 있는 마을이다. 개중 우전이 가장 유명한데 버스로 1시간 반이나 달려야 하는 제법 먼 거리여서, 전철로 오가기에 가까운 주가각에 가 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 주가각행 전철에 올랐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새치기를 당하고, 그날따라 전철은 붐볐다. 다시금 화가 치솟았다. 가슴속에서 끓은 주전자가 삑삑거리며 소리치는 듯했다. 참을 수 없어서 한국말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경제가 발전하면 뭐해, 시민의식이라곤 없는 이런 미개한 사람들 좀 보소. 공맹의 후손들이 어찌 이리도 예를 모르는가. 덥고 습한 날씨, 비좁은 전철. 우리는 점점 더 지쳐갔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결국 이곳의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다가 빈틈을 발견하는 순간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움직였다. 악다구니를 쓰며 빈자리에 달려들었다. 가방이건 다리건 일단 자리에 디밀고서 엉덩이를 재빠르게 의자에 붙였다. 자리가 하나 더 보이기라도 하면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 여기 자리 났어. 빨리빨리 와."


 자리에 앉고 나니 문득 부끄러워졌다. 이래서야 방금 전까지 욕하던 중국인과 내가 다를 게 무어냐. 여기서 한 달 정도 살게 되면 어떻게 변해 있을까. 날이 덥다면서 윗옷을 추켜올려 배를 훌렁 드러내는, 소위 '차이니즈 비키니'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려나. 몸이 너무 힘드니까 나도 모르게 이렇게 된 거라며, 나 자신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그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가르침이 있다. 학교에서도, 혹은 어르신들 말씀에서도 한결같이. 육체보다는 정신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 했다. 그러니까, "정신일도 하사불성"이고 "정신력으로 뭐든 이겨낼 수 있다" 따위 말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나는 말을 잘 들었던 아이 어렵지는 않았다. 체육 시간에는 땀을 흘리기보다는 그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육체 노동은 폄하했고 그런 일을 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공부를 한답시고, 일이 바쁘다며 밥을 잘 챙겨 먹지 않았다. 대신 자주 야식을 먹고, 야식만 먹으면 섭섭할세라 제짝인 양 술도 함께 마셨다. 운동은 시간이 없다며 미루기 일쑤였다. 몸이 이상하다 싶어도 그러려니 했다. 가르침은 분명 그런 게 아니었을 텐데 멋대로 곡해해서 몸을 돌보는 데 무심했다. 공부와 스펙과 경력이 몸보다 우선이었다. 그 결과, 병을 얻었다. 폐병에 걸려 입원하고 수술도 했다. 결핵에 걸려 가슴팍에서 염증으로 가득 찬 물을 호스로 빼다. 대단한 정신께서는 육체가 휘청거리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속절없이 짜증내고 울며 무너졌다. 요즘에는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되뇌이며 산다. 그러니까, 조금 더 건강했으면 조금 더 빠르게 움직여서 조금 더 일찍 전철의 빈자리를 차지했을 텐데.


 고작 빈자리 하나 찾 와중에 별 생각을 다 했다. 내가 이토록 나약한 사람이었나, 하고 반성하게 되는 상하이 여행이었다.






2. 도서관에서 무협지 읽던 노인들

구불구불 구곡교를 내려다보며 찻집 호심정에서



 오전에 주가각을 다녀온 후 '예원'으로 갔다. 예원은 명나라 관료였던 반윤단부친의 안락한 노후를 위해 20여 년에 걸쳐 만든 정원이다. 중국 정원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평가받는 곳. 하지만 격변의 20세기에 들어서자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며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 이후 대대적으로 복구된 예원은 과거의 화려한 모습은 축소되었지만 여전한 멋을 자랑한다 한다. 부푼 기대를 안고 예원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왠지 익숙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낯설지 않은 느낌. 마치 서울의 인사동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게 있다면, 규모가 사동의 10배 정도. 그런데 사람은 100배는 더 많은 듯했다. 이제 여기가 중국이 맞나, 하던 생각은 확실히 맞네,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평생 동안 스쳐 지나갈 사람들을 오늘 하루 이곳에서 다 보는구나, 싶었다.


 번잡한 예원의 상가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먹고 마셨다.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으레 먹고들 하는 남상만두에도 들렀다. 그 유명한 만두에다 빨대를 꽂고 육즙을 들이켜는데. 나도 방송사에 다니는 사람이지만 역시나 방송이라는 건 믿을 게 못 되는군, 하며 실망했다. 한참을 걸어 예원의 상징이라는 구곡교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 있었다. 아홉 번 구부러진 나무다리 하나 건너려고 사람들이 이렇게나 줄을 서 있다. 다리를 왜 이런 모양으로 만들었냐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설이 있는데, 직진만 할 수 있는 강시를 못 들어오게 막으려고 일부러 그랬다는 얘기가 가장 흥미롭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보이는 찻집 호심정. 상하이에서 가장 오래된 160년이나 된 찻집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여유롭게 차 한 잔 마시면서 해가 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예원의 야경은 대단한 장관이니 놓치면 안 된다고 하더라.


 2층 창가 자리에 앉아서 차를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단한 다과상이 차려져 나왔다. 문제는 차를 마셔야 하는데 어떻게 마셔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다도를 배우지 못한 탓이다. 찻잔에 담긴 찻물 위로 찻잎이 둥둥 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스러웠다. 입에 들어오면 찻물은 마시고 찻잎은 퉤퉤 뱉어내야 하나, 숟가락으로 찻잎을 일일이 건져내고 마셔야 하나, 입을 최대한 오므리고 물만 쪽쪽 빨아 마셔야 하나,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빨대만두 먹을 때 쓰던 빨대라도 챙겨서 가져올 걸. 아내도 나도 어찌할 바 몰라 어색한 미소만 흘리고 있으니 직원이 다가왔다. 그가 간단한 바디랭귀지로 설명했다. 찻잔 뚜껑을 조금만 열어서 그 틈 사이로 마시면 된다고. "아하, 쎼쎼." 감사를 표했다. 알려준 대로, 한 손으론 잔을 들고 다른 손으로 뚜껑을 집어서 살짝 연 뒤 조금씩 홀짝거렸다. 고생 끝에 마신 차는 맛도 향도 일품이었다. 덕분에 피로가 싹 가셨다.


 그나저나 소싯적 홍콩 영화를 그렇게나 봤으면서 어째 차 마시는 장면에는 집중하지 않았나 모르겠다. 신경 쓰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아서일까. 그런 무협지나 무협영화를 보면 꼭 2층으로 된 찻집이나 객점 구석진 자리에서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주인공이 고독하게 죽엽청을 마신다. 그러던 중 시비 거는 무리들이 나타나고 싸움이 벌어진다. 이내 가게는 난장판이 된다. 탁자와 의자가 부서지고 온통 선혈이 낭자하고. 점소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손님들과 함께 밖으로 도망간다. 오전에 다녀온 수향마을 주가각에서도 무협영화의 한 장면이 눈앞의 풍경과 겹쳐졌다. 주변엔 강이 흐르고 강 위에 오래된 목조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 거센 강바람에 펄럭이는 천 조각들. 물가에 설치된 나무기둥에 하얗고 파란 천들이 매달려 흔들거린다. 흡사 귀신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경이다. 영화 <천녀유혼>에서 왕조현이 하늘거리며 날아서 등장하는 그런 곳.


 무협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함께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다. 벌써 십수 년 전, 수능을 갓 치르고 곧 있을 논술과 면접 준비를 위해 서울에 올라와 있던 한 달. 서울 외삼촌댁이 있던 사당역 인근에서 하숙을 했다. 한 달짜리 하숙방은 보잘것없었다. 좁은 방 안에는 아무것도, 정말 책상이나 의자나 TV나 장롱마저도 하나 없었다. 유일하게 있는 거라고는 관악산을 향해 밖으로 난 창문 하나. 그나마도 북향이라 볕도 들지 않았다. 텅 빈 방에서 이불을 펴 잠만 자고 아침저녁 식사는 위층 주인집에 가서 해결다. 하릴없이 공부밖에 할 게 없었던 곳. 오전에는 버스를 타고 하숙집에서 가까운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노량진 입시학원으로 가서 수업을 들었다.   


 중앙도서관에서는 논술 면접을 대비해서 시사주간지 과월호, 시사상식 책, 고교생을 위한 인문교양도서 요약집 따위들을 찾아 읽었다. 이런저런 책들을 찾아다니다가 어느 날 낯선 광경을 마주했다. 볕이 잘 드는 어느 열람실 테이블. 머리가 하얗게 센, 혹은 머리를 모두 잃은 영감님들이 마치 해바라기처럼 창을 향해 일렬로 나란히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같이 간 친구 팔을 툭툭 치면서 속닥거렸다.

 "아니, 우리나라에 교양 있는 어르신들이 일케 많았나? 신기하데이."

 "글게. 내도 책 읽는 어르신들은 처음 본다이. 서울은 다르네 역."

 친구 역시 난생처음 보는 광경을 어색해했다. 저 나이대의 노인이라면 으레 탑골 공원에서 한데 모여 바둑이나 장기를 두거나, 막걸리 몇 잔에 얼굴이 불콰해진 채 김대중이, 노무현이가 빨갱이고 어쩌고 하는 욕이나 하는 줄 알았더니만. 이런 분들이 계셔서 나라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르신들이 무슨 책을 읽나, 하고 궁금해졌다. 곁을 지나가 실례되지 않게 흘끗 쳐다봤다. 그들이 손에 쥔 책 대부분의 장정에는 무적이라든지 천하라든지, 소림 화산 개방, 혹은 권왕 검왕 도왕 따위 글자들이 써져 있었다. 모두 무협지였다. 고개를 돌려 보니 노년의 해바라기들이 앉아 계시던 쪽의 책장에는 이른바 양산형 3류 무협지이 가득 꽂혀 있었다. 신필 김용의 작품 같은 것도 아닌 싸구려 책들. 어휴, 그럼 그렇지. 어르신은 무슨 어르신. 나도 이런 책을 좀 안다. 대개 3권으로 이뤄져 있다. 1권에서는 비범 혹은 비천한 주인공의 서사가 시작되고, 2권에서는 통과의례처럼 기연을 만나 성장하고, 3권에서는 위기를 겪지만 이겨내고 끝내 무림지존이 된다. 아침드라마처럼 뻔한 이야기 구조. 눈요기처럼 매 권마다 서너 번씩 정사씬도 나온다. 좋아해서, 강제로, 정략적으로, 혹은 미약에 취해 혼몽 간에 등등 사연도 제각기다. 야한 장면은 보통 2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다. 집 앞 비디오 가게에서 무협지를 백 권도 넘게 빌려 봤고, 나중에는 시간 낭비를 줄이고자 앞뒤 다 자르고 2권만 빌려보던 사람으로서 장담한다. 이게 뭐 자랑이라고 떠벌이고 있다.


 그때 그 무협지 읽던 노인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설마 지난 정권을 그리워하며 덕수궁 앞에서 태극기와 성조기 따위를 휘두르거나, 대선 정국을 맞아 카카오톡으로 가짜 뉴스나 퍼 나르고 있진 않겠지. 그래도 나름 도서관에서 독서를 즐기던 교양있는 어르신들 아니던가. 해가 갈수록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빠지곤 한다. 러려면 나도 스마트폰 따위는 줄이고 나이에 걸맞은 책다운 책을 좀 읽어야 할 텐데. 내년에는 논어 맹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를 즐기는 교양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연말연시의 덧없는 다짐을 해 본다.



상하이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끝.





(2018년 4월, 상하이에서)

예원의 구곡교가 내려다보이는 찻집에서 차 한 잔. 뚜껑을 살짝 연 후 그 틈으로 찻물을 마시세요.


예원의 화려한 밤


수상도시 주가각 전철역에서
얼추 베네치아와 비슷했던 주가각의 노 젓는 사공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한데 뒤섞여 익숙하고도 낯선 느낌의 상하이


주택가 한복판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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