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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Jan 18. 2022

나랑 점 보러 가지 않을래

타이베이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2017년 3월)

용산사에서 나무 부적으로 점괘를
지우펀에서 소원을 써 붙인 풍등을 날렸다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고 얍. 힘껏 던진 반달 모양 나무 부적 한 쌍이 바닥에 떨어졌다. 둘 다 똑같이 납작한 면이 나왔다. 어째 소원이 쉬이 이뤄지긴 글렀나 보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얍. 역시나 같은 면이라서 실패.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오기가 일어나며 한 번 더 얍. 이번에는 하나는 둥근 면 다른 하나는 납작한 면. 바닥에 떨어진 나무패는 서로 다른 면이 나왔다. 마침내 신께서 응답해 주기로 마음먹으셨나 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됐다. 나무 막대기가 꽂혀있는 통에서 하나를 집어 들고 쓰여있는 번호를 확인했다. 점괘가 들어있는 서랍장으로 뛰듯이 걸어갔다. 막대기와 같은 번호의 서랍을 열어 점괘가 적힌 종이를 꺼냈다. 해석을 해 보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문구였다. 몇 번을 읽어봐도 대체 소원이 이뤄진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알쏭달쏭했다.


 나무 부적으로 점을 치던 그곳은 대만 타이베이 여행 때 들렀던 용산사였다. 수 차례의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다 현재 건물은 1957년에 다시 지은 곳.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사원이다. 유명세에 부응이라도 하듯 사원의 모습은 화려했다. 기둥과 지붕에는 수많은 용과 춤추는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고, 이곳저곳에는 색색의 등이 밤을 밝히고, 사방에는 매캐한 향 냄새와 연기가 자욱했다. 여행객들과 현지인들은 한데 섞여 북적거렸다. 저마다 다른 얼굴, 다른 옷차림,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 사람들뿐 아니라 사원의 풍경도 비슷했다. 불교, 도교, 유교, 거기다 알 수 없는 토속신들까지 서로 다른 종교들이 한데 모여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각양각색임에도 이곳에 들른 목적은 모두 같아 보였다. 정성스레 소원을 빌고 기도하는 일. 저마다 자신이 믿는 신에게 향을 피우거나 눈을 감고 중얼거리거나 절을 했다. 우리처럼 부적을 던져 신께 앞날을 묻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다음 날엔 지우펀으로 갔다. 대만 여행은 소위 '예스진지'라고 해서 예류 지질공원, 스펀, 진과스, 지우펀을 들르는 게 정석 코스란다. 처음에는 지우펀이 뭐하는 곳인가, 싶었다. 사진을 찾아보고야 알게 됐다. 낯선 곳이 아니었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마을의 배경이 이곳을 본뜬 것이었다. 1989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영화 <비정성시>의 촬영지도 이곳이었다. 지우펀의 풍경은 영화와 다를 바 없이 아름다웠다. 세월의 무게를 안고 구불구불하게 꺾어진 골목길, 한낮부터 고운 자태로 빛나는 홍등, 아기자기한 소품과 먹거리들을 파는 점포들. 딱 하나, 마을 초입에서 코를 찌르는 고약한 취두부 냄새는 그리 아름답진 않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금세 익숙해지긴 했지만.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풍등을 날리는 스펀 기찻길로 내려왔다. 여행객들이 으레 하는 것처럼 우리도 소원을 적은 풍등을 날려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용산사에서 빌었던 것과 같은 소원을 적었다. '이직 성공'이라는 단 네 글자의 문구.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일필휘지로 갈겨썼다. 풍등의 다른 쪽 면에는 아내가 소원을 적었다.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가족들의 이름과 건강을 기원하는 내용을 써 내려갔다. "건강 같은 건 우리 어머님들 연배에나 쓰는 소원 아냐?" 하며 아내를 놀렸다. "너야말로 아직도 이직 타령이야?" 아내가 응수했다. 쓸데없는 생각일랑 그만두고 정년까지 회사를 부지런히 다니란다. 여하튼 우리의 바람을 고이 적은 빨간 풍등을 날릴 준비를 마쳤다. 등 아래쪽에 불을 붙였다. 더운 공기를 머금어서 부풀어 오르던 풍등은 일순 둥실 떠올랐다. 하늘 위로 점점 더 올라가더니 결국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점이 돼서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에게 가 닿았으려나. 그 존재는 우리의 소원을 통 크게 모두 들어주려나. 고개를 치켜든 채 한참이나 풍등이 하늘 너머로 묻혀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때만 하더라도 버릇처럼 '퇴사'와 '이직'을 말하곤 했다. 입사할 무렵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신입사원 연수를 받던 때. 기시감 느껴지는 집체식 교육, 흔해빠진 레크리에이션 시간, 선배들의 지겨운 훈화 말씀 따위들이 지겨웠다. 매 시간 제일 뒷자리에서 웅크린 채 하품을 해 댔다. 별수 없이 나이 들었음이 우울하기도 했다. 직장인이 되기 전의 나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될 수 있는 수한 우의 수를 지닌 존재였는데 이제부턴 선택지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삶이 기다리는 듯했다. 부서에 배치된 후 버릇은 더 심해졌다. 오전 9시에 출근했는데 왜 오후 6시에 퇴근하지 못하나, 선배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릴 왜 자꾸 해대나, 이렇게나 쓸데없는 일을 다들 왜 군말 없이 꾸역꾸역 하고 있나 등의 답 없는 의문들에 사로잡혔다. 여느 새내기 직장인들이 겪는 병증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퇴사를 꿈꿨다. 내 꿈은 '회사원'이 아닌 '퇴사원'이라고. 그럼에도 먹고사는 건 중요한 문제니까 대책 없는 퇴사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신 이직이라는 차선책에 매진했다.


 이직이라는 열매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연차를 써 가면서 시험을 봤고 몇 차례의 필기 합격과 최종 면접 등을 거쳤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다니고 있는 직장이라는 비빌 언덕이 있으니 절실하지 않았던 걸까. 신입이라는 이름표를 달기에 나이를 너무 많이 먹은 걸까. 그렇다고 꼬박꼬박 들어오는 달콤한 월급을 포기하고 사표를 던질 용기도 없었다. 언젠가는 거울 속의 내 눈을 한참이나 바라본 적 있다. 반짝거리는 총기는커녕, 이건 뭐 생선 눈깔도 아니고 흐리멍덩한 회색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 꼴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 같아도 나 같은 사람 안 뽑겠다. 그러다가 어느덧 차를 굴리고, 결혼을 하고, 빚을 내 집을 사고, 대출금을 갚는 삼십 대 중반 직장인이 되어 버렸다. 결국 퇴사도 이직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남아있는 거라곤 몸에 밴 버릇뿐. 무언가 소원을 빌 일이 생기면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하고 버릇처럼 기도했다.


 "그나저나 요즘엔 예전처럼 점 보러 안 다니네. 이제 그런 거 재미없어?"

 풍등을 날리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아내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아내와 함께 점을 보러 많이도 다녔다. 이제는 가뭄 날의 비처럼 점집행이 뜸해졌다.

 "이제 딱히 궁금한 일이 없네. 점집 가서 물어볼 만한 게 없어."

 아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음인지 울음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직장도 정해졌지, 결혼도 했지, 집도 샀지. 가족 중에 누군가 아프지만 않으면 되는데, 그걸 미리 알고 싶지는 않아."

 

 아내가 아직 여자 친구이던 무렵. 이십 대의 그녀는 점을 보는 걸 무척 좋아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나와의 인연이 계속될지도,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홍대에서 데이트 할 땐 종종 사주카페에 들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면서 커피보단 쌍화차가 어울리게 생긴 점쟁이의 말을 들었다. 어느 곳에서는 남자는 나무, 여자는 쇠도끼라는 말을 들었다. "도끼가 나무를 베어 죽인다는 뜻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당황함이 섞인 답을 들었다. "아니, 잔가지를 쳐서 잘 자라게 해 준다는 뜻이지요." 어떤 날엔 강남까지 찾아간 적도 있다. 토정비결이나 주역 따위가 아니라 별자리를 분석해서 운명을 점치는 곳이란다. 하도 용서 유명해졌고 덕분에 강남의 비싼 오피스텔에 자리를 잡았다나. 수학을 전공했던 여자 친구는 이상한 칭찬을 했다. "점성술은 아주 과학적인 학문이야." 매사 합리와 이성을 뽐내던 사람이 하는 말이 맞나,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귀를 후볐다. 강남은 약과였다.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경기도 수원까지 먼 길을 가기도 했다. 여기는 쌀알을 던져서 흩어진 모습을 보고 앞날을 점치는 쌀점 전문이란다. 별의별 희한한 점쟁이들이 다 있었다. 쌀점집을 나오면서 여자 친구에게 물었다. "저 쌀은 나중에 밥을 해 먹을까, 아니면 그냥 버릴까?"


 점집에 갈 때마다 나는 여자 친구 옆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점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 어릴 적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보고 난 후부터 그랬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마이클 J. 폭스는 타임머신을 타고 부모님이 젊었을 적인 과거로 간다. 과거의 사건을 바꿔 현재를 근사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라면 시리즈가 3편까지 나올 수는 없었을 터. 다음 번엔 미래로 가서 자신과 아이의 운명을 바꾸려다 일이 꼬이는 바람에 과거가 다시 바뀌고 현재도 엉망진창으로 변한다. 심기일전해서 한 번 더 과거로 떠나지만 이번에는 서부시대 사막으로 불시착한다. 설상가상 타고 온 타임머신마저 고장난다. 모든 걸 바로잡기 위해 고생을 거듭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내일 시험에서 100점을 받을 걸 알게 되면 공부를 안 하겠지, 그렇다면 미래는 바뀌어서 50점밖에 못 받을 거, 바뀐 미래를 알게 되면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해서 100점을 받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미래는 내가 하기 나름이구나, 고. 오점수 과정도 없이 일순간 얻은, 뚱한 깨달음이었다.


 연애를 한 지 8년. 여자 친구의 이름이 아내로 바뀌었을 때 즈음. 어느 새부터 아내도 점 점집으로 가는 날이 줄다. 동안 들었던 점괘가 딱히 들어맞지 않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가 있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한 채 점쟁이에게 물어볼 말이 남아있지 않았던 때문. 점집에 들른 사람들이 으레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이미 갖고 있었다. 이제는 둘 다 직장이 정해졌으니 취업운이 궁금하지도 않고, 결혼을 했으니 돌연히 이혼을 마음먹지 않는 이상 궁합도 볼 필요 없고, 서울에 집도 사고 그럭저럭 먹고살 만하니 재물운 역시 특별할 것 없었다. 간 궁금해했던 러 가능성들이 결론을 맺었다. 중년 이후에 거창한 사업이라도 벌이지 않는다면 더 이상 궁금할 도 없을 게다. 점이라는 건 삶에 가능성이 존재할 때 보는 것. 안하지만 미래를 기대하고 그에 대해 설렐 수 있는 이들이나 즐거이 보는 것이었다. 래서 한편으론 을 보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아쉬웠다. 나이가 든다는 , 우리가 꾸는 꿈의 가짓수가 점점 줄어듦을 뜻하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점을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을 때 즈음 아내는 책을 한 권 주문했다. 택배로 책이 도착하자 왠지 민망해했다. 대체 무슨 책이길래 그러나 싶어 박스를 열어 봤다. 겉표지에 '명리'라는 한자가 커다랗게 쓰여있는 책이 담겨 있었다.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라는 사주에다 음양오행의 원리를 적용해서 운명을 해석한다는 명리학.  책을 왜 샀어. 의아한 표정으로 아내를 쳐다봤다. 얼굴이 붉어진 아내는 새로운 궁금증이 생겨서라고 변명했다. 나이 든 우리와는 달리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어린 존재의 미래에 대해. 정말 앞날이 정해져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기왕이면 건강하고 행복하고 괜찮은 직장에 좋은 인연도 만났으면 한다고. 그 말을 듣자 점에 별 관심 없던 나도 덩달아 궁금해졌다. 우리 아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같이 용한 점집에라도 한번 가 볼까.


 혹여나 아이와 함께 타이베이 여행을 가게 된다면 용산사에도 다시 들러보고 싶다. 함께 소원을 빌고 전 그때처럼 나무 부적을 던져봐야겠다.



타이베이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끝.





(20173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화시지에 야시장의 노점상들, 그리고 사람들


지우펀의 신스틸러 오카리나 아저씨. 오달수를 닮았다


용산사의 밤


웅장했던 타이루거 협곡


그 유명한 '배추 조각'


충렬사에서 근위병 교대식 구경하기


야류해양공원의 기암괴석들


중정기념당 장제스의 동상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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