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을 받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by 김돌

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한 적 있다.


물론 매일같이 죽음과 함께하긴 했다. 뉴스에서는 누군가가 사고로, 질병으로, 범죄로 죽었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소식을 전한다. 때로는 가족이나 지인이나 지인의 가족의 문상을 하기 위해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챙겨 입고 나간다. 몸이 지칠 땐, 내가 뱉는 말의 의미에 대해 별생각 없이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며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입에 담는다. 그러고 보면 게임을 할 때도, 생판 알지도 못하는 상대방에게 “죽어, 죽어, 죽으라고. 이 새끼야!”라고 소리 지르며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져댔다.


그러니까 그런 평범한, 아니, 평범하다고 표현하니 이상하니까 다시 말하자면 나의 세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은, 죽음 말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 생각했던 건 초등학생 4학년 때였다. 故 신해철이 이끌던 밴드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라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오던 무렵이다. 노랫말에서는 육교 위의 네모난 상자 속에서 처음 만난 병아리 얄리가 다시 조그만 상자 속으로 들어가 우리 집 앞뜰에 묻혔단다. 내가 다니던 학교 앞에도 가끔 병아리를 파는 행상이 들렀다. 아이들은 노랗고 작고 뺙뺙거리는 생명체를 귀여워했다. 도저히 집에 데려가지 않고는 못 버틸 만큼. 그래서 꼬깃꼬깃한 지폐 한 장을 내밀고 병아리를 데려간 친구가 있었다. 녀석이 잘 크고 있는지 궁금했다.


“야야, 뼝아리 잘 크고 있나? 니 그거 엄청 커갖꼬 닭 되믄 우짤라고 그라노.”


“닭은 무슨 닭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라.”


“와? 그런 아들은 금방 자란다든데.”


“자라기는 개뿔이 자라노. 벌써 어제 다 죽어삤다.”


병아리들은 며칠을 채 버티지 못하고 싸늘하게 식었다고 했다. 놀랐다. 두려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주체할 수 없는 생명의 활력에 펄떡이던 것들이 오늘 거짓말처럼 아무런 미동도 없이 죽음으로 잠들 수도 있다는 사실에. 삶이란 이토록 연약한 것이구나. 금방 깨져버릴 수도 있구나. 그날 이후 어린 마음이 한 뼘은 더 자란 것 같았다.


두 번째는 머리가 어느 정도 굵어지고 난 고2 때의 겨울이었다. 그날은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왠지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가 답답했다. 점점 더 숨이 가빠지더니 나중에는 숨을 한 모금 들이 삼키기도 힘들었다. 숨을 쉴라치면 왼쪽 옆구리가 칼로 찌르는 듯이 아팠다. 이대로는 죽겠다 싶어 가족들을 깨우고 119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병원에서는 엑스레이 사진을 몇 장 찍고 가슴에다 청진기를 대 보더니만 ‘기흉’이라고 진단했다. 폐에 구멍이 나서 공기가 새어 나와 흉강에 가득 차면, 그 압력으로 인해 폐가 짜부라들고 심해지면 숨을 쉬지 못해 죽을 수도 있는 병. 인턴인지 레지던트인지 뭔지 모를, 머리는 며칠을 감지 않아 떡이 지고 면도는 며칠을 걸렀는지 수염이 거뭇거뭇한 남자 의사가 와서 내 옆구리를 찢고 고무호스를 집어넣었다. 이걸로 가슴에 차 있는 공기를 빼내야 한다 했다. 어느 의학서에 이렇게 대처하라고 나오는 것인지, 그는 환자인 내게 시답잖은 대화를 걸기 시작했다.


“나이가 어떻게 돼? 고등학생? 여자 친구는 있어?”


“그런 거 없는데예.”


“아니, 왜. 잘생겼는데.”


“맘에도 없는 농이 지나치시네예.”


“그건 그렇고. 쪼금 아플 수 있어. 자, 이제 들어간다.”


부분 마취를 하긴 했지만 생살을 찢고 이물질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자 아악, 하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숨이 모자란지라 허억, 하고 헛바람만 집어삼켰다. 대신, 내가 지르고 싶었던 비명은 옆 침대에 누워있던 아저씨가 신나게 질러줬다. 내가 다 후련해질만큼.


“아악! 이 새끼들아. 나 아프다고. 나 죽는다. 아이고!”


저 아저씨는 무슨 일을 당했길래 저렇게 아프대요. 남자 의사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그는 비밀 얘기라도 하는 양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 아저씨, 총 맞아서 왔어. 경찰한테 칼 휘두르다가 옆구리에 총 맞았대. 다음날 뉴스를 보니 정말 사실이었다. 열흘이 지났다. 가슴에 가득 찬 공기를 빼내고 구멍 난 폐를 땜질해서 멀쩡해진 나는 퇴원했다. 옆 침대에서 소리 지르던 아저씨는 같은 날에 죽었다. 상태가 점점 악화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단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비명소리가 그렇게나 힘찼는데. 역시 삶이란, 죽음이란 알 수 없구나. 이제 곧 수험생이 되는데 한참이나 수능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이후로는 딱히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다. 서울대 정치학과 김영민 교수의 어느 칼럼 제목처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게 좋다’지만, 아침 점심 저녁 시간 모두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바쁘기도 했거니와 겁이 많아서이기도 했다. 죽음, 사고, 범죄 등의 불행이라는 건 감각이 예민한 짐승 같아서 나를 발견하면 금세 덮치러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한다. 그러니 가만히 숨죽이고 엎드려서 나를 발견하지 말아 다오, 하며 두려움에 떤다. 그런 예기치 못한 재앙은 일절 쳐다보지도 근처에 있지도 않으려 애쓴다. 그래서일까. 나는 평소에 TV에서 <인간극장> 같은 프로그램이 나올 때면 한 장면도 보지 않기 위해 얼른 리모컨을 들어서 채널을 돌렸다. 거기에 자주 등장하는 불행한 사람들의 얼굴을 아예 마주치지도 않으려고. 사나운 불행이 나의 얼굴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도록.


그리고 세 번째는 바로 지금. 요즈음의 날들처럼 죽음에 대해 자주, 깊게, 자세하게 생각해 본 적이 또 없다.


육아 휴직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이를 돌보면서 자주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지. 아내는 어떡하고, 아이는 어떻게 자라나게 될까. 슬퍼하겠지. 힘들겠지. 그래도 방법은 있겠지. 아니, 있을까 정말. 이제 세상에 발을 내디딘 지 고작 17개월째인 생명을 눈앞에 두고서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떠올리고 있다. 걱정이 많은 것도 탈이라지만 사람 앞일이야 알 수 없으니 이런 걱정은 한 번쯤은 해 볼 법하다.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돌려본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값이 제법 올랐으니 이걸 팔아야지. 아내는 아이와 함께 처갓댁에 들어가면 된다. 아니, 2년을 거주해야 양도세를 안 낼 수 있으니까 올해 겨울까지는 살다가 팔아야 한다. 팔고 나서 대출금을 갚고 나면 수중에 7, 8억 원 정도 남는다. 어이쿠, 우리도 제법 자산가가 되었구나. 한 달에 생활비는, 교육비니 뭐니 다 포함해서 4백만 원이면 되겠지. 그럼 1년에 5천만 원 남짓. 총 15년 정도는 버틸 수 있겠다. 그래 봤자 아이는 겨우 고등학생이다. 아무래도 아내가 다시 일을 해야 할 텐데 적지 않은 나이에 구직이 가능할까. 내가 그동안 쏟아부은 국민연금은 배우자한테 나오나 어떻게 되나. 연금보험 들어둔 게 있으니까 그것도 헐어서 쓰라고 해야겠다. 아 참, 실비 보험 들어둔 게 하나 있다. 계약서 내용을 톺아보니 사망 보험금은 법정상속인에게 고작 6천만 원이 나온다.


문득 십여 년 전에 TV에서 봤던 어느 보험사 광고가 기억났다.


“10억을 받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는 거라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도와주었습니다. 이것 또한 약속이라고 했습니다. 남편의 라이프플래너였던 이 사람, 이젠 우리 가족의 라이프플래너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죽고 나서 보험금으로 10억 원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땐 그 광고를 보고서 그렇게나 욕을 했다. 무슨 사람 목숨 값으로 광고를 하냐. 남편이 죽었는데 아내도 아이도 엄청 환하게 웃네. 보험설계사도 환하게 웃고. 저거 혹시 둘이 짜고 남편 죽인 거 아냐. 그러고 보니 보험금은 당연히 보험사에서 내줘야 하는 건데, 왜 당연한 사실을 대단하다는 듯 광고를 하고 있지.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그래, 바로 그거다. 걱정의 무저갱에서 나를 구원해 줄 금빛 동아줄이다. 남은 아내와 아이를 위해 생명 보험을 하나 들어야겠다. 10억 원을 보험금으로 받는다면 아파트를 판 돈과 합쳐서 10년은 훨씬 더 버틸 수 있고, 그때가 되면 아이는 스무 살을 훌쩍 넘겨 성인이 됐을 게다. 자라면서 아빠의 사랑은 받지 못했지만 돈이라도 받을 수 있게 해 줘야지. 하지만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더니 10억 원은 특이 케이스고 사망 보험금은 평균 1~2억 원 정도라고 한다. 겨우 2, 3년 정도 버틸 만한 돈인데. 이것 참 곤란하다.


생명보험을 하나 들겠다는 생각을 아내에게도 말했다. 그리고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내가 혹시라도 아플 때, 도저히 낫지 않겠다 싶으면 병원비 쓰느라고 낭비하지 말고 그냥 보내줘.”


“그게 무슨 소리야 대체.”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 반문했다.


“잠들어 있을 때 베개로 덮어버리는 그런 거 있잖아. 쓸데없이 오래 살려두지 말라고.”


“아아, 막장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그런 거.”


“그렇지, 그런 거.”


“알았어. 걱정 마. 나는 계산이 빠르니까 금방 판단할게.”


아내는 이해했다는 듯 웃었다. 왠지 아내의 눈빛에서 서늘함이 느껴졌다.


“아... 아니, 충분히 살릴 수 있는데 섣불리 실행에 옮기지는 말고.”


“걱정 말라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편하게 보내준다니까.”


아내의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삶의 의욕이 불타오른다. 보험금은 까마득한 훗날에 받아야겠다.


이번에 새로 나오는 007 영화 제목이 <노 타임 투 다이>였던가. 나 역시 아직은 죽기에 이르다. 동화 속 주인공들이 으레 맞이하는 결말처럼, 아내와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한다. 아이뿐만 아니라 나도 건강해야 한다. 그래서 밤에는 집 앞 홍제천으로 운동을 나가고, 그렇게나 좋아하던 술은 일주일에 한두 번만, 고기반찬은 줄이고 채소를 많이 먹으려고 한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데, 지금은 휴직 중이니 회사의 꼴 뵈기 싫은 인간들은 마주할 일도 없고 아이가 커 갈수록 육아의 힘듦은 점점 줄어들면서 기쁨은 점점 커져가니, 큰 병에 걸릴 만한 위험요인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싯적에 앓은 폐병은 매년 정기검진을 통해 관리하는 중이다. 운전할 때도 예전보다 훨씬 조심스레 핸들을 돌리고 페달을 밟는다.


그나저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나. 걱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부담이니 책임이니 의무감이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그런 것들은 나를 옭아매는 속박 같다며 아주 끔찍하게 여겼었다. 내 삶의 좌우명은 ‘공수래공수거’라 중얼거리며 언제든지 훌훌 떠날 준비가 돼 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혼자 혹은 둘만 살던 시절에는 그럴 수 있었다. 그랬던 사람이, 이제는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대단히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게 되었다. 무겁고도 무겁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게에 짓눌려 퍼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건강히 살아야 한다. 싫어도 어쩌랴. 아이 낳은 건 무를 수도 없는 일인 것을. 이런 생각은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했을 터. 나만 하는 게 아닐 거다.




이런 아이를 두고 먼저 떠날 수는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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