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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Dec 17. 2021

금문교가 절반도 안 보이는데 출근은 무슨

샌프란시스코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2018년 11월)

뿌연 먼지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던 금문교
We will be closed today because of poor air quality




 샌프란시스코의 하늘이 회색빛 먼지 때문에 뿌옇다. 우리가 처음 온 날부터 이랬다. 이곳을 떠날 때까지 단 하루도 푸른색 하늘은 볼 수 없었다. 이곳의 본래 하늘빛이 어땠는지는 를 일이었다. 어쩐지 공항에서 입국 심사하면서 어설픈 영어로 여기 온 목적이 Travel이라 말했 때 심사관이 묘한 미소를 지었더랬다. 돌이켜 보니 "흐음, 미스터. 그게 정말 가능할 모르겠군요." 라는 의미였던 듯하다.


 몇 해 전 미국 여행 겸 연수를 갔을 무렵. 는 날이 장날이라고, 때가 하필이면 샌프란시스코 사상 최악의 산불이 났던 였다. 하루 온종일 대기 중엔 뿌연 먼지인지 짙은 안개인지가 자욱했다. 일생을 대형 산불이라는 걸 겪어본 바 없는 우리만 용감하게, 아니, 무식하게 맨 얼굴 차림이었다. 거리 대부분의 사람들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왠지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게임에서 봤던 모습이었다. 핵폭탄이 터진 후 재와 먼지가 햇볕을 가려 사위가 어둡고 온도는 내려가고 모든 것이 시들어버린 곳.


 눈으로 마주하게 되니 그간 몰랐던 걸 감각하게 됐다. 을 내쉴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 알갱이들이 코와 목구멍을 간질이는 것 같았다. 모르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런 공기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눈에 띄는 편의점과 약국마다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큰 소리로 외쳤다.

 "Mask?!"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No No, Sold out!"

 죄다 품절이란다. 어느 가게들어가든 남아있는 마스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 낭만의 도시 역사에 이런 일이 한 번이라도 발생한 적 있었을까. 전대미문의 재난이었다.


 그래도 여행객으로서 할 일은 해야 했다. 이역만리까지 와서 비좁은 모텔방 안에만 처박혀 있는 건 죄스러운 이었다.  소용 겠냐만은 입을 앙다물고 최대한 숨을 덜 들이쉬면서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다. 샌프란시스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빨간색 '금문교'는 당연히 러 가야지. 1순위로 들르기로 한 곳. 우리는 당초 피셔맨스 워프에서 해산물로 배를 채우고 난 뒤 자전거를 렌트해서 출발, 금문교를 달려서 지나, 소살리토 착해서 한가로이 동네 산책을 하자는 계획을 세웠었.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전거를 탔다간 낭만이고 나발이고 시커먼 먼지만 한가득 들이 삼키면서 콜록거릴 듯하여 포기다. 여기에선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돼지 기름으로 목의 를 벗겨내는 일은 할 수가 없을 테니.


 대신 렌터카를 운전해서 다리 위를 건너가 보기로만 다. 가는 길에 금문교 웰컴 센터에 들러서 기념품들도 좀 사. 나여행 가는 도시마다 그곳의 이름이나 랜드마크 따위가 그려진 티셔츠를 버릇처럼 사 모은다. 매년 오르는 서울 아파트값처럼 매년 살이 불고 있으니 사이즈는 항상 XL로 넉넉하게. 이번에는 금문교가 그려진 티셔츠 상상하며 설렜다. 이른 아침부터 달뜬 얼굴로 차에 올라탔다. 우리가 렌트한 차는 아직 한국에서는 볼 수 없던 쉐보레 타호. 7인승짜리 거대한 SUV였다. 커다란 차, 그런 차들을 한가득 풀어놓은 넓은 도로, 옆 차에 문콕이라도 하면 어쩌나 따위 걱정을 할 필요 없는 널찍한 주차 공간. 역시 넓디 넓은 미국이었다. 얼마 달리지 않아 시야에 빨간색 금문교가 들어왔다. 그 순간, 조수석에 앉아있던 L형은 애플 카플레이를 연결해서 그 유명한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라는 구절이 나오는 스콧 매켄지의 노래를 틀었다. 런 센스쟁이 같으니라고.


 먼지 때문에 전체의 절반밖에 보이지 않는 금문교. 그럼에도 장관이라며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서둘러 주차를 마치고 컴 센터 걸어다. 그런데 세상에 이럴 수가.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그날은 주말도 아니, 나치게 이르거나 늦은 시각도 아니었으며, 아직 코로나 19 바이러스세상에 출현하지 않았을 때인데. 웬일인가 싶어 자세히 살펴봤다. 문에는  인사 대신 A4 용지로 써 붙인 안내문 한 장만이 덩그러니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We will be closed today because of poor air quality."

 공기 질이 나쁘기 때문에 휴무라. 고작 그것 때문에? 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유명 관광지의 안내소가 쉬는 게 말이 되나. 저거 봐, 안내문 폰트마저도 되게 불친절해. 한글로 치면 뭐랄까 휴먼명조, 15포인트 같은 느낌인데.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공무원들인가. 하여튼 이 동네 뭐 이래. 씩씩거리면서 뒤돌아다.


 사람 마음이란 게 계속 바뀐다. 차로 돌아오던 중, 솟았던 화는 거짓말처럼 금방 사그라들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다. 노동자도 사람인데, 자기 몸에 해가 된다면 쉬는 게 맞지. 당연히 휴가를 써야지. 이런 상황에서 꾸역꾸역 출근해서 일한다고 해서 그게 정상은 아니잖나. 마더 테레사를 롤모델로 삼는 자원봉사자도 아닌데 제 한 몸 해쳐가면서까지 뭐하러 일을 하나. 혹여나 피치 못하게 출근해야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추가 급여나 대체휴일 같은 반대급부가 있어야 할 터그것이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이다. 종종 잊곤 하지만 나 역시 한 명의 노동자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불현듯 동지애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어쩐지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출근하지 않은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함께 연대하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들이여, 단결하라! 같은 마음이 갑자기 샘솟았다고나 할까. 갑자기.


 휴가, 라는 단어를 왠지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던 신입사원 때도 생각났다. 주어진 연차가 며칠 안 됐는데, 얼마 되지 않은 날 중에서 하루라도 쓸라 치면 고민에 빠다. 부장한테 무슨 이유로 휴가를 쓴다고 말해야 하지? 이른 아침에 전화해서 콜록거리며 몸살감기라고 할까, 친척이나 친구들의 부모 형제가 돌아가셨다고 할까, 우리 집은 유서 깊은 집안이라 대대로 이어 온 제사에 빠질 수 없다고 할까. 별의별 핑곗거리를 만들어 내느라 애꿎은 창의력을 소진했다. 돌이켜 보면 우스운 일이다. 내 휴가를 내가 쓰겠다는데 왜 그리 애걸복걸했던 걸까. 이제는 그럴 일이 없다. 몇 해 전 노사 협의를 통해 전산 시스템에서 연차 사유를 쓰는 난을 없앴다. 쓰고 싶으면 그냥 쓰라는 것. 물론, 호기심 많은 어느 부장이 부원에게 넌지시 사유를 물어보는 것까지 막을 순 없겠지만, 공식적으로는 더 이상 휴가를 쓸 때 구구절절 사정할 필요가 없다. 것 아닌 변화일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렷다.


 하지만 그건 공채 정규직에 한한 내용일 뿐. 우리 회사에서 많은 수를 차지하는 계약직이나 파견직이나 프리랜서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같은 일을 하지만, 월급도 창립기념일 선물도 휴가일수도 앞으로의 미래도 모든 게 다른 그들. 종종 젊은 비정규직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요즘 어때요, 하나마나한 물음을 건넨다. 돌아오는 대답은 변함이 없다. 예전하고 똑같아요. 정규직 아저씨들이 쉴 때 저희는 일하고, 휴가는 무슨 휴가예요 일해야지, 대신 지방 출장도 가고, 그런데 해외 출장은 저희는 안 보내주던데, 밤새도록 혹은 주말에도 일하고, 계약 연장 때문에 비위 맞추느라 새벽까지 술도 마셔줘야 하고, 그래도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쥐꼬리만 하고. 대답을 끝마치고는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빨고 내쉰다. 결국 2년 정도 지나면 그들은 회사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정규직이 되지 못해서다. 1년에 한 번 있는 공채 합격자 명단에서도 그들의 이름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이뿐 아니다. 여전히 뉴스에서는 노동자들의 비극에 대한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일하다 병에 걸려도 책임을 회피하거나, 따지고 들면 푼돈을 쥐어주며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약속을 강요하거나, 사고가 일어나면 어떻게든 은폐하려 들고, 심지어는 사람이 죽어가는데 구급차를 부르지 않기도 한다. 위험한 일은 원청에서 하청으로, 하청 업체는 노동자에게 그대로 전가한다. 몇해 전 한국서부발전의 하도급 업체에서 일했던 계약직 김용균 씨. 홀로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하다가 벨트에 끼어 숨졌다. 이후 그의 이름을 따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도급 금지 범위를 협소하게 정한 탓에 현실적으로 원청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 올해 1월에는 중대한 인명 피해를 일으킨 산재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도 통과됐다. 하지만 2인 1조 작업 의무화 등의 필수적 안전조치 사항이 반영되지 않았고, 5인 이상 50인 미만의 많은 사업장들은 적용이 유예됐다. 노동 현실은 그다지 바뀐 게 없는 모양새. 사는 나아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멈춰있기도 한다.


 미국이라면 어땠을까. 노동자의 안전이나 계약 사항 이행에 소홀했던 기업은 소송에 걸려 천문학적인 비용의 배상금을 물지 않았을까. 여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소송의 천국이라 불리는 곳이니까. 희뿌연 연기에 반쯤 가려진 금문교를 바라보며 상상했다. 기침을 콜록거리며 출근했던 웰컴센터 직원이 샌프란시스코 시를 상대로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장면을. 금문교가 절반도 채 보이지 않는데, 이런 대기 상황에서 제게 출근을 강요했단 말입니다. 이 때문에 몹시 상해버린 나의 몸과 마음을 배상해 주십시오. 돈으로 치료해 달란 말입니다. 법정 방청석에 앉아있는 는 노동자의 한 명으로서 그에게 응원을 보냈다. 그의 이름을 내 마음대로 붙여서, 이봐 제임스, 파이팅이야. 아 참, 파이팅은 콩글리쉬니까 못 알아듣겠구나. 고 줴임스 치얼 업 줴임스! 문이 닫힌 금문교 웰컴 센터를 떠나면서 한참 동안 상념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노동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따금씩 그때가 떠오른다.


 그나저나 요즘 뉴스에서는 유력 대선 후보라는 사람의 말 논란인 모양이다. 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쉬는 게 좋다, 손발 노동은 못 사는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거다, 현실에 맞지 않는 주 52시간제 폐지하겠다, 최저시급을 받지 못하더라도 일하고 싶은 사람이 많다. 심지어는 산재 현장을 찾아가서는 노동자가 기본 수칙을 위반해서 생긴 일이라는 말도 했다. 논란이 일 때마다 금간 벽을 서둘러 메꾸듯 매번 오해라며 변명을 덧칠한다. 말에 담있는 진심을 알아달란다. 그 모습을 보며 이런 시대에도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저렇게나 저급 수 있구나, 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럼에도 높은 지지율이 나온다니 역시나 놀라울 따름이다. 내년 봄에는 어쩌면 역사 시계가 거꾸로 갈 수도 있겠구나, 싶어 두려워진다.



 샌프란시스코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끝.





(2018년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낭만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웰컴


역시 미국에서는 큰 차를 몰아봐야지


금문교 앞 웰컴 센터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피어39 부둣가의 갈매기


롬바르드 스트리트에서 줄지어 내려오는 차들을 바라보며


필모어 스트리트의 쌍둥이 건물 6개


페리빌딩에서. 아직 한국에는 없던 블루보틀 카페


베이브릿지 가던 길, 밤의 도시 풍경


피셔맨스 워프에서는 클램차우더 수프를 먹어봐야 한다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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