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첫 번째 여행의 첫째 날
지난 4월 말, 아이와 함께 2박 3일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날짜를 세어 보니 벌써 3개월이 지났다. 기록이 늦은 데 대해 가장 지분이 큰 건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인 나의 게으름이고, 다음으로는 일의 바쁨과 육아의 고됨 때문이라 변명해 본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그걸 신기하게 바라보던 아이의 미소가 아스라이 잊혀져버리기 전에 서둘러서 글을 써 본다.
두 돌배기 아이와 함께하는 첫 여행이었다. 작년에는 코로나 19라는 전염병 때문에 늘 집에만 있었다. 때때로 집 근처 카페나 문화센터에 나가는 날도 있었다. '조심스럽게 용기 내 봐'도 서울 시내, 아무리 멀리 나가더라도 당일치기가 가능한 경기도까지가 마지노선이었다. 우리는 뭐가 그리 두려웠던 걸까. 다른 집들처럼 여행다운 여행을 한 번 가긴 가야 하는데, 라는 마음만 먹던 중 드디어 때가 왔다. "만 2세 전까지는 비행기표가 공짜"라는 말을 듣고서 엉겁결에 결심한 것이다. 아이는 2020년 5월생. 허겁지겁 막차에 올라타는 기분으로 4월의 마지막 날 제주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뒤이어 숙소를 예약하고 렌터카도 결제했다. 아이와 함께 갈 수 있을 만한, 그러니까 맵고 짜고 독하지 않은 음식을 파는, 괜찮은 식당도 검색했다. 물론 그걸로 끝일 리가. 여행 파티에 아이라는 구성원 ‘하나’가 늘어났을 뿐인데 준비해야 할 건 하나만 늘어나는 게 아니었다. 다량의 기저귀와 물티슈, 빨대가 달린 물병과 실리콘 수저, 갈아입을 여벌 옷가지들,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 잠자리에 들 때 늘 안고 자는 이케아산 애착 강아지 인형, 해열제와 지사제와 비판텐 같은 피부연고 등등. 아이 짐만 해도 캐리어 하나가 가득 찼다. 혹여나 빠진 건 없는지 짐가방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아이와 첫 여행이다 보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행의 첫째 날이 밝았다.
1. 효도는 이승엽처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의 울음보가 터졌다. 공항 입구 길가에 차를 세우고 아이를 비롯한 일행과 짐을 내려줬다. 나는 장기주차를 맡기려고 다시 차에 올라탄 순간. 바로 그때, 아빠가 함께하지 못할 거라 넘겨짚은 걸까, 혹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처음이어서일까. 아이는 흐잉 흐잉- 하며 서서히 시동을 걸더니만 기어코 으앙- 하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내가 공항 건물로 돌아오기 직전까지 계속 울었다나. 머릿속으로 걱정하던 장면이 현실로 펼쳐졌다.
비행기에서도 계속 울면 어떡하지.
아이가 없을 땐 비행기에 타는 아이들을 싫어했다. 내가 앉은 좌석 근처에 어린 아기가 앉으면 더더욱. 툭하면 울고불고 소리 지르고 통제되지 않는 고 작은 것들을 짜증 서린 눈길로 흘겨봤다.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애를 왜 비행기에다 태운 거야. 무슨 대책없는 용기로 이런 민폐를 끼치는 거지. 그런 사나운 마음으로 아이의 부모들도 째려봤다. 그땐 꿈에도 몰랐다. 나도 그런 아이를 키우고, 그런 아이의 부모가 될 줄은. 내가 그간 저질렀던 일을 이제 되돌려 받을 차례다. 이렇듯 사람 앞일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아이를 조심스레 안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섰다. 혹여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안 돼. 또 울음보가 터지면 끝장이라고. 기체로 들어가는 게이트에서는 우리처럼 아이와 함께 가족여행을 떠나는 일행들을 어렵잖게 마주할 수 있었다. 봄의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라 그런가 여기도 아이, 저기도 아이. 사방이 아이 천지다. 그런데 우리와 다르게 다들 비행기 유경험자라도 되는 듯 긴장한 기색은 하나도 없었다. 어떤 아이는 어찌나 생글거리며 웃는지, 얼마나 씩씩하게 혼자 걸어가는지 부러울 정도였다.
비행기에 타고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에겐 서둘러 사탕을 하나 물렸다. 기압차로 인해 귀가 먹먹해지면 말 못 하는 아이는 울기 마련이다. 꼴깍 침을 삼키면 되는데, 이걸 알지도 못하고 말해준다 한들 만 두 살도 안 된 꼬맹이가 알아들을 리 있나. 그래서 음료수를 마시게 하거나 사탕을 빨게 한다고 했다. 사탕이 먹히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평소에 즐겨먹는 과일 주스도 꺼냈다. 역시나 좋아하는 과자도 준비했다. 최후의 수단인 핑크퐁 영상을 틀기 위해 스마트폰도 다른 손에 쥐었다. 이제 곧 결전의 시간이다.
몇 분이나 앉아 있었을까. 굉음과 함께 비행기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땅을 박차고 두둥실 떠올랐다. 녀석이 무서워하는 건 아닐까. 또다시 벼락 같은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채 아이를 바라봤다. 어라, 의외로 아무렇지 않아 한다. 창 밖 풍경이 신기하구먼, 하는 표정으로 얌전히 앉아있다. 비행 중에도 별일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사탕을 빨고, 주스를 마시고, 심심할라치면 자동차 장난감을 갖고 놀고, 휴대폰에 담아 온 핑크퐁 영상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의 눈가에서는 건조한 사막처럼 눈물 한 방울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야구선수 이승엽이 떠올랐다. 베이징올림픽 때의 이승엽. 수 차례의 예선 경기 내내 극심한 부진을 보여, 일본 진출 초기에 1할도 안 되는 타율 때문에 붙은 '오푼이'라는 오욕의 별명을 다시금 듣고 있던 그였다. 하지만 스타는 결정적인 순간에 빛난다던가. 그는 준결승과 결승전에서 결정적인 홈런을 때리며 '과연 이승엽이다'라는 말을 증명해냈다. 아들 녀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항에서 울고, 비행기 타기 전에 좀 울면 어떻나. 비행기에 타고 있을 때 울지 않으면 된다, 이거다. 효행은 이승엽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하면 된다.
아 참. 게이트에서 생글거리며 웃던 그 아이는 비행기가 뜨자마자 울기 시작해서 내릴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참을 수 없는 미소가 입가에 새어 나왔다. 육아라는 게 경쟁은 아니지만 왠지 묘한 승리감이 느껴졌다.
2. 차는 굴러가기만 하면 되는 물건이 아니었다
제주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렌터카 업체 주차장으로 갔다. 2박 3일 동안 타고 다닐 차는 현대차에서 나온 7인승 팰리세이드로 골랐다. 미국 연수 갔을 때 쉐보레 대형 SUV인 타호를 몰아본 뒤로 이렇게 큰 차는 처음이었다.
몰아보니 생각보다 좋은 차였다. 소음과 진동도 적고, 부드럽게 쭉쭉 달리고, 이런저런 옵션도 많아서 편리했다. 운전하면서 생각했다. 팰리세이드도 이러할진대 GV80 같은 차는 더 좋겠지. 그렇다면 벤츠나 볼보 같은 차는 얼마나 더 좋을 거야. 우리도 서울 아파트를 팔고 경기도로 이사 가면 남은 돈으로 값나가는 외제차를 몰아볼 수 있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혼자 계산기를 두들겨 봤다.
예전에는 차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차가 별건가, 굴러가기만 하면 됐지, 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타고 있는 코란도 C를 살 때도 후방카메라니 통풍 시트니 하는 옵션들은 하나도 안 넣었다. 이벤트 기간이라 선루프를 무료로 설치해 주겠다는 제안에는, 그런 거 아무 필요 없으니 대신 차값이나 깎아달라 그랬다. 딱 하나 신경 썼던 건 차 색깔뿐. 가수 이승환의 오랜 팬으로서 그의 노랫말 '예쁜 여자 친구와 빨간 차도 갖고 싶었지만'처럼 빨간색을 골랐더랬다.
아이를 낳을 때 즈음 주변 사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너의 디젤 차는 덜덜거리는 탓에 아기 머리가 흔들려서 좋지 않아. 진동은 뇌 발달에 나쁠 거라고. 애가 학교 들어갈 때 즈음엔 비싼 차로 바꿔야 할 걸. 우리 아빠 차는 뭐야, 너네 아빠 차는 뭐니, 같은 말을 하면서 아이들끼리 비교한다니까. 요즘 애들은 초등학생만 돼도 알 거 다 알아. 나이가 들면 승차감이 아니라 하차감도 따져야 돼. 중년 남자가 소형차나 오래된 차 타고 다니면 없어 보인다고. 별별 말을 다 들었다. 차는 굴러가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닌, 별것이구나 싶다.
그나저나 차에 옵션이 너무 많아도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운전 내내 거슬렸던 것 하나. 차선 유지 기능이라고 해서, 차가 도로 중앙선이나 실선 등을 침범하면 삐삐삐 경고음을 내거나 자동으로 핸들을 꺾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뭐 이런 신박한 기능이 있나,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의 등장이 머지않았구나, 하고 감탄했다. 하지만 운전을 하면 할수록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마치 끊임없는 잔소리를 듣는 것 같아서였다. 엄마한테서도 이렇게 자주 잔소리를 들은 적 없는데 네깟 자동차 놈이 대체 뭐라고 인간인 나한테 이러는 거야.
3. 여행에서 아이가 있고 없고의 차이
첫째 날의 제주 바다는 협재해변이었다. 아이는 인생 처음으로 마주하는 바다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우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았다. 그리고 알갱이가 고운 백사장에 한참 동안이나 퍼질러 앉아서 모래놀이를 했다. 아직 5월이 되지 않아서인지 바닷물이 차가워 보여 발은 담그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일정은 둘만 있을 때의 그것과는 아주 달랐다. 하루에 바다는 딱 한 군데만 보는 걸로 계획했다. 예전에는 시간 단위, 분 단위로 여행 계획을 짜서 되도록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먹고 느끼려고 했다. 둘이서 마지막으로 제주 여행을 했던 3년 전에도 그랬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SNS에서 유명한 카페 서너 군데를 들르고, 쉴 틈 없이 운전하며 바다도 서너 군데 보고, 남는 시간 틈틈이 인기 있다는 오름도 오르고 숲길도 걷고 하면서 하루 내내 분주했다. 이른바 ‘비워내기’보다는 ‘채워 넣기’에 가까운, 무소유를 주구장창 강조하시는 저명한 큰스님들이 보면 눈살을 찌푸리실 듯한 여행이었다.
훗날 아이가 다 자란 뒤엔 어떤 여행을 좋아하게 될까. 한가롭게 빈 여행을 좋아할까, 바쁘도록 채워 넣은 여행을 좋아할까. 아니, 우리와 함께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기는 할까. 아직 조우한 바 없는 낯선 미래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4. 아이의 마음이란 알 수가 없는 것
이번 여행에서 가장 공을 들인 건 숙소였다. 치열한 예약 전쟁에서 승리해서 사흘 동안 묵은 곳은 서귀포에 자리 잡은 '아이노리터'라는 펜션이었다. 아직까지 코로나 19가 무서운 탓에 우리만 사용하는 독채 펜션으로, 기왕이면 바다가 보이는 곳, 물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수영장까지 딸려 있었으면 했다. 아내가 검색으로 찾아낸 곳은 앞서 말한 장점과 더불어 아이를 위한 각종 장난감들과 2층에서 타고 내려올 수 있는 미끄럼틀까지 구비된 소위 ‘키즈 펜션’이었다. 세상에 이런 게 다 있다. 아이가 없었으면 평생 가 볼 일이 없을 곳이다.
무엇보다 숙소에 기대했던 건 펜션에 딸린 수영장이었다. 아이는 집에서 목욕할 때마다 욕조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담아 욕조 바깥에다 뿌리고, 제가 좋아하는 자동차 장난감들을 물 속에서 굴리고, 조그마한 손과 발로 물장구를 치며 논다. 물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가만히 놔두면 최소 반나절은 욕실에서 시간을 때울 수 있을 것 같다. 이러다 물만두처럼 몸이 퉁퉁 붓겠어. 이제 그만 나가자고 애원해도 도무지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전생에 물 부족 국가에서 살기라도 했나. 어디 한 번 네가 좋아하는 물놀이를 실컷 해 보자. 온종일 첨벙거릴 수 있게 해 주마, 라며 수영장에 들어서는 순간을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부푼 마음을 안고 아이의 옷을 벗기고, 방수 기저귀를 채우고, 구명조끼를 입히려는데. 어째 아이의 얼굴이 굳어있다. 평소에 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이인데 반응이 시원찮아 이상하다.
"이보세요, 김딱딱 씨. 자네가 좋아하는 물에서 신나게 놀아 보자니까 왜 가만히 서 있기만 합니까."
"......"
아무리 꾀어 봤지만 아이는 물에 발가락 하나도 담그지 않았다. 수영장 멀찍이에 서서 겁먹은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별수 없이 나 혼자 먼저 물에 들어가서 팔다리를 첨벙거렸다.
"진아, 이거 봐라, 아빠 신나 보이지? 이게 바로 수영이야. 재미난 물놀이야."
결국 아이는 2박 3일 내내 수영장으로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이 꼴을 보려고 1박에 50만 원 넘는 숙소를 예약한 게 아닌데. 돈이 아까워서 나 혼자서라도 열심히 수영했다. 아이의 마음이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5. 여행지의 맛집 복불복
제주에서의 첫 식사는 공항 근처에 자리 잡은 '앞뱅디식당'에서였다. 이곳은 본래 각재기국으로 유명하다는데 멜(큰 멸치)로 만든 멜국, 멜튀김, 멜조림이 맛나단다.
우리는 점심으로 멜튀김과 멜조림, 그리고 아이를 위해 고등어구이를 주문했다. 혹여나 잔가시가 목에 걸릴까 봐 멜 요리는 어른들만 먹기로 했다. 먹어보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조림은 뼈가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연해서 아이가 그냥 먹어도 될 만큼 푹 익혀져 나왔다. 적당히 칼칼한 양념이 잘 배어 있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튀김은, 이것 참 운전만 안 하면 술안주로 딱이구나, 싶었다. 서울에서 먹던 추어튀김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소하고 큼직했다. 고등어구이 역시 두말할 필요 없는 맛이었다. 적당히 기름지고 적당히 고소하고 적당히 살쪘다. 어째 나오는 음식들이 모두가 밥도둑이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 한 끼 식사였다.
반면 저녁에 들른 숙소 근처 흑돼지구이집은 실망스러웠다. 굳이 가게 이름을 밝혀가며 장황하게 서술하고 싶지도 않다. 글을 쓰면 좋지 않은 기억이 되살아날 듯하여 아예 쓰는 것을 시작조차 않는 것이 좋겠다. 맛 없는 식당의 특징이랄까. 어째 이런 곳에는 현지인들은 하나도 없고 한 눈에 봐도 여행객이 틀림없는 사람들로만 가득하다. 손님들의 면면을 보자마자 발길을 돌렸어야 했는데 우리가 잘못한 것. 예쁜 인테리어, 깨끗해 보이는 식기, 잔디밭이 구비된 넓은 장소 따위는 맛과 아무 상관 없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며 이런 식당 복불복이야말로 여행의 맛 아니겠나, 하고 자기 위안을 했다. 항상 계획을 하지만, 항상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여행이다, 싶다.
숙소로 돌아올 때 즈음엔 벌써 저물녘이 됐다. 발간 석양이 내려앉는 듯하더니만 금세 어둠이 사방을 집어삼켰다.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탓에 하마터면 돌담에 차를 긁어먹을 뻔했다. 주차를 마치고서야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여행의 첫째 날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