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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Jul 13. 2022

아빠는 나의 연적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아마 아이가 두 돌을 맞이했을 때 즈음부터였을 거다.


 종종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내를 꼬옥 껴안는다. 서로의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아이에게 화목한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이고자 함에서다. 과연 보기 좋았는지 그럴 때마다 아이도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내 세 가족이 서로 부둥켜안는 모습이 연출됐다. 이런 게 소위 '정상 가족'의 행복한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 


 문제의 두 돌 때부터 변화가 생겼다. 여느 때처럼 아내와 함께 누구 하나 손해 볼 것 없는 프리 허그를 시전 중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이 예전과는 묘하게 달랐다. 눈빛뿐 아니라 표정도 일그러졌고, 이내 거친 발걸음으로 쿵쿵 달려오더니, 캬아악 괴성을 지르면서 나를 밀쳐냈다. 아빠를 엄마에게서 떨어뜨려 놓으려는 몸짓이었다.   


 "쓰읍! 진아. 왜 이래? 아빠한테 이러면 안 돼."


 아이에게 엄한 목소리로 혼을 냈다. 그랬더니 검은 눈동자를 까뒤집고 흰자위가 가득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아닌가. 대체 저런 눈깔, 아니, 눈 모양은 어디서 배운 게야. 아이가 볼세라 TV에서 주야장천 나오는, 그 재미난 막장 드라마도 한 번 틀어준 적 없는데. 아내에게서 떨어지자 그제야 아이는 평소의 '착한' 아들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고된 노동과 육아로 인한 어깨 뭉침을 풀어주려 서로 안마해 줄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소파에 앉아서 바닥에 앉아있는 아내의 어깨를 주무를 때면 어디선가 우다다다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들이다, 아들이 온다. 공습경보가 발령됐다. 역시나 내 손을 밀어내고 제가 엄마 어깨를 주무르겠단다. 제 기능을 제대로 하기나 할까, 싶은 작고 여린 손으로 아내의 어깨를 주무른다. 아니, 주무른다기엔 힘이 약하고 문질거림에 가까운 몸짓이다.


 "아이고, 시-원하다. 진이가 주물러 주니까 너무 좋네."


 아내는 아들이 애써 안마까지 해 주는데 차마 야단치지 못하고 칭찬해 줄 수밖에 없었단다. 물론 하나도 시원하진 않았단다. 


 요즈음 아이의 말이 제법 늘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그리 빠르지 않지만 드디어 서너 단어를 붙여서 말하고, 좋고 싫음에 대해서도 명확히 표현하고, 우리가 하는 말 역시 잘 알아듣게 됐다.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썩 기쁘지만은 않다. 내가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이런 것들 따위라서 그렇다.


 "아으빠 꺼 아니아아(아빠 거 아니야 / 해석 : 아버지, 그것은 당신이 함부로 건드릴 게 아닙니다)!" 


 내가 집 정리를 한답시고 본인의 장난감이나 책을 집어 들었을 때 항상 듣는 말이다. 


 "아빠 안녀으응(아빠, 안녕 / 해석 : 아버지, 이제 그만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주십시오)."


 이건 내가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짓, 이를테면 밥 먹기 싫어할 때 억지로 숟가락을 입에 들이밀면 하는 말이다. 녀석아, 무럭무럭 자라려면 밥을 많이 먹어야지. 어르고 달래면서 "청룡열차 숟가락이 입으로 달려갑니다아-" 같은 대사를 치며 회오리 방향으로 빙글빙글 재미나게 밥숟갈을 들이밀지만 소용없다. 내 손을 탁 치며 밀어낸다. 흰 밥알이 팝콘처럼 사방으로 튄다. 엉망이 된 식탁과 바닥을 보며 순간 울컥하지만 마음속에 무수한 '참을 인' 자를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그려가며 화를 삭인다. 밥 한 끼 먹이기가 이렇게나 어렵다.  


 보다 못한 아내가 출동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방실거리면서 엄마를 쳐다본다. 군말 없이 숟가락을 입 안으로 통과시켜 준다. "으음-"이나 "야미야미" 같은 추임새를 넣기도 한다. 방금 전까지 인상을 쓰고 소리 지르던 아이가 맞나 싶다. 숟가락을 입에 넣으면서 흘끗 나를 쳐다본다. 엄마를 향해 웃느라고 반쯤 감겨 있으면서도 나를 바라볼 땐 일말의 서늘함이 서린 것이 왠지 아이 같지 않은 눈빛이다. 일순 나의 역할은 구남친, 아이는 아내의 현남친 역을 맡은 극이 시작됐다. 구남친 앞에서 보란 듯이 '이 여자는 내 사람이다'의 행동을 하는 현남친. 나는 왠지 자신이 초라해지고 해결할 수 없는 질투심에 몸서리치게 된다. 


 이제는 철 지난 이론이라지만 대학생 때 교육심리학 수업에서 배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따위 단어가 생각난다. 3~5세의 남근기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현상. 남자아이는 처음으로 만난 이성인 어머니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우월한 아버지에게 반항하다가는 거세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어머니를 포기하고 점차 아버지를 닮아가는 방식으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성장한다나. 어린 딸아이 역시 어머니를 경쟁자로 보고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한다고 한다. 게임 <워크래프트>에서 아서스가 아버지에게 칼을 꽂으며 했던 말인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Succeeding You, father.)"까지 떠올리는 건, 에이, 너무 멀리 나갔다. 


 혹시나 싶어 주변의 부모들에게도 자문을 구했다. 원래 이 나이 때 아이들이 이렇습니까. 우리 아이만 이런 겁니까.


 딸바보로 이름난 H 형에게 물어보니 한숨을 내쉰다. 어릴 때만 하더라도 "나는 아빠하고 결혼할 거야."라며 밤낮으로 붙어있던 첫째 딸이 이제는 본인을 본체만체한단다. 아빠 말에 흥, 하고 콧방귀를 뀌고 자기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도 않는다나.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인데 그렇게 됐단다.


 후배 S의 경우는 더 심했다. 본인이 퇴근하는 시각 즈음 아내가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단다. 요리를 해야 하니 아들을 잠자코 앉아있게 하려고 잠시 유튜브 영상을 보여 주는데 이걸 너무 좋아한다고. 아빠가 오면 유튜브를 더 이상 보지 못하니 S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면 "아빠 나가!"라고 소리를 지른다고 했다.  


 이미 장성한 아들을 둔 J 형은 이런저런 경험담 따위 한 귀로 흘려듣고, 지금의 걱정 따위는 적당히 묻어두란다. 그리고 '이미 겪어 본 자'의 여유로운 태도로 조언했다. 


 "결국에 아들은 아빠하고 친해지게 돼 있어. 몸으로 놀아주는 때가 오면 알게 된다니까. 그땐 엄마보다는 역시 아빠지, 아빠."


 그나저나 나의 육아휴직 7개월 간 우리가 쌓은 정은 어디로 간 걸까. 그건 늦봄 무렵 맥없이 나리는 꽃잎처럼 한없이 가벼운 것이었나. 작년에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온종일 집 안에서 단둘이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는데. 그땐 아이가 내게 이러지 않았는데. 아비로서 이런 마음을 품으면 안 되지만 아이에게 적이 섭섭하다.



아빠한테는 얼굴도 안 보여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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