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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Feb 28. 2022

코로나 19는 멀리 있지 않다

검사받는 아이가 서럽게 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아침. H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메일이나 톡을 보내지, 느닷없이 전화까지 해서 할 말이 있나.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아침부터 웬일이세요? 급한 일이라도 생겼어요?"


 "놀라지 말고 잘 들어요. 집에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 있?"


 "네, 있어요. 혹시나 해서 두어 개 사놨어요. 그런데 왜...?"


 "나 확진이랍니다. 애들이 열이 나고 기침도 하길래 같이 검사해 봤는데 양성 나왔어요. 빨리 해 봐요."


 과연 전화까지 할 급한 일이었다. H 형은 본인은 아무 증상이 없다고 했다. 3차 백신까지 맞아서 그런 것 같다고. 다만 백신을 맞지 않은 8살, 5살 배기 딸아이들은 열이 40도까지 오르내리고 기침 콧물을 동반해서 아파하는 중이라며 걱정했다. 또한 어제까지 회사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걱정됐단다. 그 사람들에게 다들 전화를 돌리는 중이라고. 하필이면 나도 어제는 회사로 출근했었다. 마스크를 벗고서 그와 함께 점심으로 육개장을 먹고, 으레 그러하듯 식후에는 카페에 들러 차도 마시고, 심지어 하루 온종일 옆 자리에 앉아서 일했다. 이른바 '밀접 접촉자' 중에서도 밀접 접촉자였다.


 "큰일이네요. 저도 얼른 해 보고 결과 알려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서둘러 서랍장에서 자가진단 키트를 꺼냈다. 처음으로 만져보는 낯선 도구. 설명서를 눈으로 훑고 손에 비닐장갑을 낀 뒤 동봉된 면봉을 꺼냈다. 안내 문구에 따라 양쪽 콧구멍을 1.5~2 cm씩 번갈아 쑤셨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긴가민가하면서. 지난달에 보건소에서 받았던 PCR 검사를 떠올리며 최대한 비슷하게 흉내 냈다. 콧물로 젖은 면봉을 용액 통에 넣고 휘저었다. 용액을 검체기에 3~4방울 떨어뜨리면 끝. 15분 뒤면 검사 결과가 나온다. 빨간색 한 줄이면 음성, 두 줄이면 양성이다.


 15분은 길었다. 그새 아이는 방실방실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를 안아줄 수 없었다. 아이에게 가까이 가지 않으려 했다. 멀찍이 선 채 다급하게 외쳤다. 진아, 잠깐만. 아빠 지금 에비야, 찌찌야. 저리 가. 너한테 위험한 병이 옮을지도 모른다고. 영문을 모르는 아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흐잉, 하고 울먹거렸다. 왜 나를 피하냐고, 늘 하던 대로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느냐고 말하는 듯했다. 아직 말을 못하니 그런가 보다, 생각할 뿐. 샐쭉한 얼굴로 쫓아오는 21개월 아이를 피해 도망 다니는 활극 끝에 마침내 시간이 다 됐다. 다행히 한 줄이었다.


 달가운 소식을 눈으로 확인했음에도 불안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내 코를 제대로 찔렀을까. 코 끄트머리만 간질거렸던 것 같은데 그래도 되는 걸까. 자가진단 키트는 정확도가 떨어진다던데 한 번 더 해 볼까. 아니, 또 해 봤자 찌르는 사람이 같은데 결과가 다르게 나올 리가 없잖나. 마음속 한편의 먹구름을 씻어낼 수 없어서 다음날도 재택근무를 신청했다. 일하다가 틈을 내 동네 병원에 가서 한 번 더 검사를 받아볼 요량이었다. 집에 오가던 길에 봤는데 5천 원만 내면 '신속항원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써붙여 둔 곳이 있었다. 

 

 다음날 오후, 병원에 들렀다. 소아과인데 정작 아이들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어른들만 바글바글했다. 다들 나 같이 코로나 19 검사를 받거나 늦은 백신 접종을 하러 온 이들이었다. 과연 확진자가 하루에 10만 명이 넘게 나오는 시절답다. 접수를 하고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응당 어린이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를 뺏은 듯해서 불편했다. 생각보다 내 차례는 금방 왔다. 의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기다란 면봉을 내 콧속에다 찔렀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코를 지나 눈까지 찌르는 느낌이었다. 아파서 눈물이 왈칵 솟았다. 하지만 아이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소아과에서 울 순 없는 노릇.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눈을 크게 뜨고 어깨를 활짝 펴고 힘을 준 채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전문가용 키트라서 그런지 10분이면 결과가 나온단다. 그래도 길게 느껴졌다. 어제 요맘때처럼 초조해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우두커니 자리에 앉아서. 혹시나 하는 들리는 마음처럼 다리를 달달 흔들고, 설마 하며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억누르기라도 하듯 손가락을 꾹꾹 눌러댔다. 그러던 중 가족으로 보이는 일행이 병원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아버지, 어머니, 대여섯 살로 보이는 누나와 남동생의 4인 가족이었다. 아마 40대 중반쯤 됐을까, 아버지인 남자는 잿빛 얼굴을 간호사에게 들이밀다시피 하며 말했다.


 "여기, 코로나 신속검사하죠?"


 "네, 받으실 수 있구요. 여기 이름 쓰시고 기다리세요."


 남자는 볼펜으로 이름들을 휘갈겨 쓰고 여기저기에 다급하게 전화를 했다. 아마도 회사로 거는 전화인 듯했다. 의사가 이런 일에 워낙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들의 차례도 금방 왔다. 입구로 들어오던 것처럼 진료실로 우르르 들어가던 잿빛 얼굴의 가족들. 얼마 있지 않아 진료실에서는 여자아이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앙, 아파, 시러, 하지 마요오오. 괜찮아, 금방 끝나, 같은 어른들의 어쩔 줄 몰라하는 말도 곧이어 들려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번은 어린 남동생 차례. 아까보다 더 큰 비명소리가 귀를 찔렀다. 이야, 용감하네. 다 끝났어. 아주 잘하는데, 같은 소아과 의사의 어쩐지 틀에 박힌 대사와 함께 그들 모두의 검사가 끝났다. 끝났지만 끝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진료실 밖으로 나와서도 꺼지지 않는 잔불처럼 한참을 울었다.


 이름 모를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런 세계라서 너희 고생이구나. 내가 코로나 19를 만든든 건 아니지만 왠지 미안해졌다. 단지 미안함뿐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세계를 감각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예전과는 달라졌다. 이를테면 뉴스에서 떠드는 성장과 투자 같은 경제지표보다는 지속 가능한 환경과 생명 보호 등에 관심이 생겼다. 밥을 먹을 땐 맛보다는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건지, 재료에는 유기농이나 공정 무역의 꼬리표가 달려있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그간 사람을 판단할 때는 으레 옷차림과 행동과 말투와 배경를 봤지만 이제는 어린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떠한지, 마스크를 제대로 썼는지부터 확인한다. 일을 할 땐 자식에게 보여주기 부끄럽지 않은지 되돌아보고, 선거 때는 미래 세대가 조금이나마 살기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며 한 표를 행사한다. 그리고 얼굴이 고운 미인대회 참가자도 아닌 주제에 감히 세계 평화의 꿈 품는다.


 한마디로 이 세계를 나 혼자 살다가 끝나는 곳이 아니라 아이 세대가 앞으로 살아갈 공간으로 바라보게 된 것. 때문에 막연한 미안함에 갇혀있지 않고,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조금이라도 애쓰겠다는 다짐을 한다.


 생각에 잠겨 있던 중 내 이름이 불렸다.


 "김 OO 씨, 결과 나왔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검사 내용이 적힌 종이를 펼쳤다. 결과는 음성이었다.


 


자가진단 키트에는 다행히 한 줄만 떴다


언제쯤이면 아이가 마스크를 벗고 다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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