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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Nov 12. 2022

두 돌배기 아이와 2박 3일 제주 여행기(3)

안녕, 제주 안녕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짧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좋은 여행이든 나쁜 여행이든 끝은 늘 아쉽다.





1. 아이와의 놀이는 무한반복의 노동과 같다

 창밖으로 먼동이 희붐하게 밝아왔다. 2박 3일의 여행 동안 아침잠이라는 걸 잃어버린 아이는 어느새 눈을 떴다. 일어나자마자 졸린 눈을 비비지도 않고 침대 밖으로 튀어 나갔다. 이내 아빠 손을 붙잡고 이끌더니 계단을 바삐 내려갔다. 하루를 시작하자마자 발걸음을 달려 이른 곳은 1층 놀이터. 여기에 있는 자동차 장난감들을 너무나도 보고 싶었나 보다. 밤새 자동차 생각에 몸이 달았는가. 넋을 잃은 표정으로 한참이나 갖고 논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1.5층으로 이어진 미끄럼틀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 혼자서 타기엔 경사가 다소 심하다. 또다시 내 손을 붙잡고 이끌어 계단을 올라갔다. 내 품에 포옥 안긴 채 주욱, 하고 미끄럼을 탔다. 타고나니 까르르, 웃으면서 “또!”를 외치며 내 옷소매를 잡아끈다. 그게 시작이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나하고 타고 엄마하고도 타고 이번 여행에 동행한 아내의 고모님과도 타고. 다음번엔 또 나하고 타고 또 엄마하고 또 고모님하고. 몇 번이나 미끄럼틀을 오르내렸을까. 어느 순간부터 숫자 세는 걸 포기했다. 아이가 좋아하니 계속해서 함께 미끄럼을 타 줄 수밖에. 뭐가 그리 재밌는지 했던 걸 계속해서 반복하는 아이다. 집에서도 자동차 장난감들을 일렬로 줄 세우기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계속한다. 놀이공원에 갔을 땐 제가 좋아하는, 하지만 키가 모자라서 탑승 가능한 게 몇 개 되지 않는, 놀이기구를 최소 대여섯 번은 반복해서 타야 직성이 풀린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블록 탑을 높게 쌓았다가 쓰러뜨리는 건 몇 번이나 하는지 세는 게 어려울 만큼 도돌이표 놀음이다. 어느 날엔 서울에서 대전까지 운전해서 가는 2시간 내내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갑니다’를 듣기도 했다.


 두 돌배기 아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땐 문제가 있나 싶었다. 어른들이 보기엔 별 의미없는 짓을 내내 반복하니까. 요즘 인기 있었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혹시 나의 아이도, 자폐라든지 하는 병이 있나 싶었다. 주변의 육아 선배들의 말씀과 책자를 통해 알고 보니 이 나이대의 아이는 으레 그런 법이란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같은 행동의 반복과 교정을 통해 몸을 조절하는 법을 익히고, 동시에 아빠 엄마 없이 혼자서 해 냄으로써 자기 주도성을 키울 수 있다나. 아내가 직장을 다닐 때 동료 한 명은 아이가 하루 온종일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단다. 그 집도 애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걱정했다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안심하게 됐다고 한다.


 여하튼 아침부터 무한반복의 놀이, 아니, 노동을 했더니만 배가 고파졌다. 얼른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2.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어

 마지막 날 일정의 오전에는 천지연 폭포에 들르기로 했다. 기억을 거슬러 보니 7년 만에 다시 들른 천지연이었다. 똑같은 곳에 왔지만 예전과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때도 이번에도 여행에 동행한 아내의 할머님께서는 건강이 나빠졌다. 구순의 연세에 당연한 현상이겠지만 요즘 들어 눈에 띄게 나빠 보이셔서 걱정이다. 우리는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됐다. 아내도 나도 흰머리가 하나 둘 돋아나고 허리며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지난 제주 여행 때만 하더라도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다음에 이곳에 여행을 오면 우리는 또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설마 둘째의 손을 잡고 걷고 있진 않겠지.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어...' 천지연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서 옛시조 한 구절이 떠올랐다. 폭포로 가는 길도, 같은 곳에 자리한 폭포도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그대로인데 우리만 달라진 것 같다. 소위 자연 명소라는 곳을 들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대학생일 때 1박 2일 종주길을 걸어 올랐던 지리산 천왕봉, 아내와 연애할 때 종종 들렀던 북한산과 설악산, 예전부터 지금까지 지겹도록 지나다니는 한강, 여행 때 가 본 거제며 강화며 제주 같은 섬들까지. 같은 곳에 또 들르면 분명 자연은 예전과 같은 모습인데 인간인 우리만 아주 달라져 있다. 그럴 때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보잘것없음에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숲이 우거진 완만한 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폭포 앞에 도착했다. 아래로 부드럽게 쏟아지는 물줄기는 시원한 소리를 내뿜었다. 수면에 부딪쳐 튀어 오른 작은 물방울들은 햇빛과 뒤엉켜 하얗게 반짝거렸다. 이과수니 빅토리아니 하는 외국의 폭포처럼 웅장하지는 않다. 유럽이나 일본의 정원에서 볼 수 있는 세밀한 아름다움도 없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꼭 있어야만, 그동안 있어왔던 존재처럼 자리 잡고 있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모습의 천지연이었다. 그 자태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이는 인생 처음으로 마주하는 폭포가 신기한지 "우아-!" 하고 소리 질렀다. 물, 물, 거리면서 폭포를 가리키며 신나했다. 수영장 들어가는 건 무서워하면서 물 구경은 되게 좋아한다.  


 그나저나 조금 걸었다고 그새 또 배가 고파졌다. 점심을 먹으러 갈 시간이다.







3.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

 여행의 마지막 끼니는 갈치 해체쇼로 이름난 식당으로 갔다. 아내의 할머님께서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보셨던 곳이다. 화면에 나오는 해체쇼는 무척 화려했단다. 숟가락 하나만으로 갈치 배를 가르고 가시가 있는 부분을 떼어내고 몸통을 팍팍 쳐서 살만 발라내는 신기의 기술을 보이더라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구이며 조림이 어찌나 맛있어 보이는지 입에 절로 침이 고이셨단다. 눈과 입이 즐거울 그곳을 향해 차를 달려갔다.


 하지만 쇼는 기대했던 만큼 재밌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의 아주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얼굴만큼이나 무심한 손놀림으로 대충 갈치 가시를 발라내고 가셨다. 1분도 안 걸렸다. ‘이게 정말 끝이야?’라는 당혹감과 실망감만이 남았다. 뭐랄까,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엄청 재밌게 소개하길래 기대하면서 봤는데 영 재미없었던 영화를 마주한 때 같달까. 떨떠름한 기분으로 눈앞에 수북이 쌓인 갈치 살을 잠시 바라봤다. 젓가락으로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먹다 보니 가시가 하나도 씹히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기술자가 맞긴 맞는구나. 발골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재미는 없었다. 맛도 별로 없었다.


 문득 예전에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유격수 박기혁이 생각났다. 타격은 영 꽝이었지만 수비에서만큼은 한때 '한국의 데릭 지터'라는 말을 들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보였던 선수.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넘어지고 구르고 기기묘묘한 자세로 공을 던지던 모습이 화려했다. 물론 그처럼 수비하지 않는 좋은 선수들도 많았다. 안정적인 자세로 포구하고 흔들림 없이 송구하고, 굳이 바닥에 구르거나 큰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 묵묵한 스타일의 선수들. 어찌 보면 그런 선수들의 실력이 더 뛰어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박기혁에 마음이 더 끌렸다. 요리든 스포츠든 일이든간에 ’티‘를 내는 게 더 있어보일 때가 있다.


 쇼가 재미가 있건 없건 아이는 갈치구이집에서 가만히 앉아있질 않았다. 갈치 맛이 없는지 몇 숟갈 먹지도 않고 숟가락을 내려놨다. 밥을 채 반 공기도 비우기 전에 아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내 나가자고 칭얼거렸다. 조금만 더 앉아 있으라고 달래 봐도 소용없었다.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더 크게 울기 시작한다. 밖으로 나가자며 창 밖으로 손가락을 가리킨다. 나는 입에 갈치 살과 맨밥을 허겁지겁 욱여넣고서 아이를 안고 식당 밖으로 나갔다. "진아, 어제저녁은 얌전히 앉아서 잘 먹더니 오늘은 왜 그러는 거야?" 말 못 하는 아이에게 물었다. 답이 돌아오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정말 어제 저녁 수육집에서는 지리산 청학동 출신인 양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거기 수육 진짜 맛났는데. 하지만 첫째 날 저녁, 맛이 형편없던 흑돼지구이집에서는 지금같이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밖으로 나가자고 떼를 썼다. 둘째 날 점심때 들른 메밀국숫집에서는 점잖게 앉아서 손으로 국수를 집어 호로록거리며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우리도 즐거운 한 끼 식사를 했다. 복기해 봤더니 아이는 맛집에 들렀을 때는 잘 앉아있어 주고, 맛없는 집에서는 가차 없이 나가자고 했다. 이 녀석 설마... 타고난 미식가인가? 맛집 판별기라도 되는 건가.







4. 제주 동문시장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 한 조각

 공항에 들어가기 전 시간이 조금 남았다. 아무리 여행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도, 결국에는 시간이 모자라거나 혹은 자투리 시간이 남기 마련이다. 남은 시간에는 공항 근처 제주 동문시장에 들러 시장을 구경했다.


 코로나19가 끝나지도 않았건만 시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물건들도 빈 틈 없이 매대에 나열돼 있었다. 살아있는 물고기와 말린 물고기, 감귤과 한라봉과 천혜향, 우도 땅콩 막걸리, 왠지 야하게 느껴지는 오메기떡 등등 오만 것들이 다 있다. 아이는 생전 처음 보는 풍경에 즐거워 보였다. 아이 손을 잡고 걷다가 나중에는 들어 올려 안고 다녔다. 이런 인파 속에서 손을 놓치기라도 하면 졸지에 이산가족이 될까 겁이 났다.


 내가 네 살 무렵 때 그런 일이 있었다. 가족들과 진주 지하상가에 나들이 갔던 날. 어렸던 나는 뭐가 그리 신기하고 재미난 것들이 많은지 이곳저곳을 총총총 뛰어다녔단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옷가게 점원과 잠시 이야기를 하고 뒤로 돌았는데 내가 보이지 않았다. 10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는데 그새 어디로 사라졌어. 어머니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단다. 내 이름을 부르며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니셨는데 어디에도 없는 아이. 이렇게 아들을 잃어버렸구나, 파도처럼 들이닥치는 자책과 후회와 분노와 절망에 어쩔 줄 몰라 하셨단다.


 나는 그때의 기억이 단편적인 조각들로 머리에 남아있다. 지하상가 가게들의 반들거리는 유리창이 생각나고, 내 손에 늘 쥐고 있던 어머니의 손이 느껴지지 않아서 당황했던 느낌도 떠오르고, 어쩌다 보니 관리사무소에 앉아서 내 이름 세 글자를 외치던 장면을 기억한다. 내 자랑 같지만, 네 살밖에 안 먹은 아이가 어떻게 그곳을 찾아가서 엄마를 찾아 달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관리소 아저씨는 마이크를 들고 “아 아, 여그는 상가 관리소입니더.”라며 운을 뗀 후 내 이름을 말하면서 아이를 찾아가라 말했다. 방송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머니께서 달려오셨다.   


 그때 내가 내 이름을 말할 줄 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네 살부터의 삶의 궤적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여하튼 동문시장에서는 아이를 꼬옥 안고 다녔다.







5. 남에게 말하기 왠지 부끄러운 사소한 습관 하나

 마침내 김포행 비행기에 올랐다. 결정적일 때 효행을 ‘일삼는’ 아이는 이번에도 비행기 안에서 얌전히 앉아있어 줬다. 다른 아이들처럼 울고불고 난리 치지 않고 선비처럼 의젓하게 앉아 있다. 다행이다.


 이제 곧 착륙한다. 안전벨트를 매고 좌석에 몸을 붙였다. 고목처럼 단단한 자세로 앉아있는 아이에 반해 나는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억새풀처럼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창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심호흡을 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마다 되풀이하는 습관 아닌 습관이다.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비행기가 추락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면과의 거리를 가늠해 본다. 아니다, 아직 너무 하늘 위다. 이 정도 높이라면 죽을 수밖에 없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거리를 잰다. 아파트 10층 정도 되겠다. 잘하면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5층 정도 높이다. 다치긴 해도 죽지는 않겠다. 어디 하나 부러지는 정도겠지. 다소 마음이 놓인다. 가빴던 숨이 점차 느려진다. 땅에 닿는 순간 비로소 큰 숨을 한 번 내쉰다. 다행이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습관. 남한테 말하기는 왠지 부끄러운 사소한 습관. 실은 비행기에 탈 때마다 이런다고, 어느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살 수 있을지 가늠하느라 마음이 분주하다고, 최근에야 아내에게 고백했다. 아내는 놀라는 눈치였다. 뭐든 무덤덤해서, 심지어는 수능 전날이나 취업 면접날에도 긴장한 기색이라곤 없이 꾸벅꾸벅 졸기까지 해서, 이상하다 싶었던 사람이 혼자 그러고 있었냐고. 그러게나 말이다. 나도 내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아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나 혼자만의, 입밖에 내면 왠지 부끄러운, 별것 아닌데 별것 같은 그런 습관이 하나쯤은 있을 게다.


 아빠의 불안하고 부끄러운 마음 따위 까맣게 모르는 아이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평온한 얼굴이었다. 내려서 짐을 찾은 후 신나게 캐리어를 밀고 다녔다. 굴러가는 바퀴를 보며 신나는 얼굴이었다. 녀석은 바퀴 달린 거라면 다 좋단다. 지난 사흘간 다녔던 제주 이곳저곳의 풍경이나 이런저런 맛난 음식들 따위, 벌써부터 기억도 나지 않나 보다.





이렇게 두 돌 아이와의 2박 3일 제주 여행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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