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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Oct 20. 2022

구애가 좌절된 아이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아이에게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가르치는 건 쉽지 않다



 매주 토요일 오전, 별다른 일이 없을 땐 아이와 함께 집 근처 구립육아종합지원센터로 간다. 언제부터인가 고정 스케줄처럼 돼버렸다. 가지 않는 때는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가거나, 아이가 평소와 달리 늦잠을 잤다거나, 혹은 너무 덥거나 춥거나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거나 하는 날뿐이다.


 이곳에는 육아에 필요한 많은 것들이 종합 선물세트처럼 나열해 있다. 센터 건물 바로 옆에 어린이집도 붙어있고, 장난감 대여소도 있고, 종종 육아 관련 행사나 부모 교육도 열리고, 우리가 매주 들르는 목적인 '열린육아방'도 있다. 열린육아방이란 일종의 키즈 카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런저런 장난감과 그림책, 간단한 놀이기구, 공중에서 오갈 수 있는 그물망 구름다리까지 재미난 것들이 많은 곳. 그리고 구민이라면 사전 예약 후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다. 국가에서 ‘저출산 대책’이랍시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쏟아붓는다는데 대체 어디에 쓰는 걸까. 쓸데없는 데 낭비하고 있으니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지, 쯧쯧. 강 건너 불구경하듯 훈수만 해 댔다. 아이를 키워보니 그제사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곳곳마다 우리가 가는 육아센터와 같은 보육 지원 기관이 자리하고, 매달 나라에서 육아 수당 명목으로 몇십만 원씩 통장에 넣어 주고, 한부모가정처럼 육아가 힘들 수밖에 없는 가정에서는 긴급 아이 돌봄 서비스도 받을 수 있고, 출산 이전 임신부들에게는 병원에서 쓸 수 있는 바우처 등도 지급된다. 국가에서도 나름의 애를 썼던 것.


 여느 때와 다름없는 토요일. 서둘러 아침을 먹고 아이와 함께 열린육아방으로 향했다. 그날은 내가 가는 걸로 당첨됐다. 집에 남아있는 아내는 빨래를 하고 대청소를 했다. 나는 잠시나마 지긋지긋한 집안일에서 해방됐다. 아이 손을 잡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하늘도 맑고 햇볕도 따뜻하고 바람도 선선했다. 걸은 지 10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역시나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는 늘 갖고 노는 자동차 장난감을 집어 들고, 미니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고, 탱탱볼도 던지고, 그물망 구름다리도 기어 건너면서 놀았다. 아침에 눈 뜨고 나서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쉬질 않는다.


 갑자기 어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갓 돌이 지났을까 싶은 여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아직 걸음마가 미숙해서인지 바닥에 넘어졌나 보다. 아이 엄마는 황급히 우는 아이를 달랬다. 근처에 있던 웬 남자아이도 블록 장난감을 들고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친구야, 울지 마."라고 말하듯이 장난감을 여자아이에게 건넸다. 다정한 남자아이였다. "진아, 잘 봐. 저런 걸 배워야 한다니까. 여자애들한테 '서윗'하게 해야 인기남이 될 수 있다구." 여자는커녕 자동차 굴리기에만 여념이 없는 아들에게 소곤거렸다.


 하지만 우는 아이에게 다정함 따위는 별무소용이었다.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의 손을 홱 뿌리쳤다. 서러운 울음소리를 계속해서 뱉었다. 그때였다. 남자아이는 갑자기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주먹으로 여자아이의 머리를 내리쳤다. 난데없이 얻어맞은 여자아이는 원래보다 두 배는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지켜보던 나도 놀랐고, 여자아이의 엄마도 놀랐고, 누구보다 남자아이의 아빠가 가장 놀랐다. 아빠인 듯한 아저씨가 당황한 얼굴로 달려왔다. "우진(물론 가명이다)아! 친구를 때리면 어떡해. 아이구, 죄송합니다." 미안한 얼굴로 연신 사과하는 남자. "아녜요, 괜찮아요. 애들끼리 그럴 수도 있죠." 여자는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사과를 받았다.  


 소동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누구도 곧이어 닥칠 다음 사건을 예상한 이 없었다. 울음이 그친 여자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부지런하게 놀았다. 속눈썹에 눈물 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그러다가 또 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넘어진 건 아니고 어딘가에 부딪친 듯했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는 넘어지고 부딪치는 게 일상다반사다. "저 친구는 되게 많이 운다. 울보야 울보. 진이 너는 그러지 말어." 여전히 자동차를 굴리기 삼매경에 빠져있는 아들에게 또 소곤거렸다. 아이는 우는 친구를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관심 없다는 듯 자동차로 시선을 돌렸다. 


 울고 있는 여자아이 곁에 어느새 아까 그 남자아이가 다가왔다. 포기를 모르는 정대만 같은 남자였다. 남자아이는 또다시 뭔가를 들고 와서 여자아이에게 건넸다. 멀리 있던 탓에 손에 뭘 쥐고 있는지는 안 보였다. 탱탱볼인지 인형인지 알록달록한 색깔의 무언가였다. 하지만 뭐가 됐든 소용없었다. 여자아이는 이번에도 남자아이의 다정함을 거절했다.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똑같이 되풀이되는 장면을 바라보며 일순 긴장됐다. 주변의 다른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던 듯. 모두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 장면을 지켜봤다. 흐릿한 적막함이 내려앉은 가운데 울음소리만 또렷한 지금 이 순간.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두 번째의 구애가 좌절된 남자아이는 첫 번째 때처럼 여자아이의 머리를 또 후려쳤다. 여자아이의 엄마가 옆에 서 있었음에도, 남자아이의 아빠가 서둘러 달려왔음에도 간발의 차로 때리는 걸 막지 못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이번에는 맞은 여자아이가 울음을 멎었다. 아이답지 않은 매서운 눈빛을 번쩍이더니만 손에 쥐고 있던 장난감으로 남자아이의 머리를 쾅, 하고 후려쳤다. 남자아이는 이게 머선 일이고, 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아픔이 몰려왔는지 머리를 부여잡고 울기 시작했다. 그걸 본 여자아이도 잠시 끊어졌던 울음을 다시 이었다.


 육아방에 몇 달째 다니고 있는데 이런 난리는 처음이었다.  


 "진아, 쟤들 봐라. 친구를 때리면 안 돼. 알았지? 폭력은 나쁜 거야.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이런 말이 있어." 아이 귓가에 다시금 소곤거렸다. 아이가 듣건 말건 혼자서 또 이러고 있다. "혹시나 맞게 되면 저 여자애처럼 너도 같이 때려. 맞기만 하면 안 돼. 눈에는 눈 이에는 이야." 이런 말을 해도 되나 걱정하면서 말했다. "그리고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이거 명심해라. 너 좋다는 애도 있을 텐데 굳이 너 싫다는 애한테 애쓰지 말어. 그런데 내 말 듣고는 있니?" 친구들이 울거나 말거나 아이는 자동차만 굴린다. 하기사 두 돌배기 아이가 내 말 뜻을 알아들을 리 없다.


 한창 말하던 중에 왠지 마음이 쓰였다. 남의 아이들의 불행을 나의 아이의 교육 재료로 쓰는 건 옳지 않은데. 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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