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K의 직장생활 중간정산 (3)
노을이 물들어가는 개와 늑대의 시간. 광화문을 걷다가 인상적인 장면과 마주쳤다. 오토바이 배달 청년이 신호등 빨간불에 걸려 잠시나마 한숨 돌리는 모습이었다. 모두가 쌩쌩 달리는 와중에 주어진 짧은 휴식 시간. 온 몸에 묻어 나오는 피로함이 몇 발짝 떨어져 있는 나에게도 생생히 전해졌다. 담배라도 한 개피 꺼내 물었으면 조금이나마 피곤을 풀었으려나, 그러기엔 빨간불에서 초록불까지의 시간이 너무 짧다. 신호가 바뀌고 오토바이는 이내 다시 달려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먹고 산다는 게 고달픈 일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회사에서도 동료들과 함께 종종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 어찌 보면 내가 더 힘들게 살았네, 네가 덜 힘들게 살았네, 라면서 '지난날의 고난 대결'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대화들이다. 별 의미없는 대결의 시작은 반지하에 살던 경험담부터다. 창문도 없는 좁은 지하방에서 살던 무렵 여름 장마 때 물이 새서 하마터면 잠자리에서 익사할 뻔한 경험. 이어서 지갑에 단돈 백 원이 모자란데 어디 빌릴 데도 없어 눈 앞의 컵라면 하나를 사지 못해 주린 배를 움켜쥐던 설움을 토로하고. 이에 질새라 생일날마저도 하루종일 알바를 하고서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작스레 내린 소나기에 홀딱 젖어 빗물인지 눈물인지를 뚝뚝 흘렸던 때의 기억을. 급기야는 평생을 해도 질리지 않는다는 군대에서 고생한 이야기까지 소환하고야 마는데. 이런 데서 지기 싫다는 듯 저마다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펼쳐낸다. 이기더라도 이긴 게 아닌, 지더라도 지는 게 아닌 이상한 대결의 장이다.
그래도 우린 지금은 어엿한 회사원이 돼서 밥벌이를 하고 살잖아? 그건 그렇죠. 힘들었던 시절은 흘러간 옛 추억이라며 이제 웃으며 이야기하고, 나 때는 말이야, 를 입에 달고 사는 아저씨들의 대화를 하고 있다. 이런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20대 청년 비정규직 K가 입을 열었다. 계약 기간이 끝났으니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거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참 후에서야 어렵게 꺼낸다.
"몰랐는데... 다들 서울대, 고대, 연대, 좋은 대학 나오신 분들이더라구요. 과장님들도 그러시잖아요. 그래서 희망을 접었죠. 저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구요."
금방이라도 눈에서 눈물이 흐를듯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그였다. 파견기간 종료 며칠을 앞두고서 함께 한 환송의 술자리. 그는 지난 2년간 이곳에서 비정규직, 자세히 말하자면 이 회사와 직접적인 고용 관계라 할 수 있는 '계약직'도 아니고 다른 업체 소속인 '파견직'이라는 이름을 달고, 일했다. 열심히, 그리고 제법 일을 잘한다는 평을 들었기에 혹시나 파견 기간이 끝나면 정규직이 되지나 않을까, 그것까지는 어렵더라도 공채에 지원해 여기서 계속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었다 했다. 그래서 비슷한 또래의 정규직 직원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봤다. 알고보니 같은 곳에서 함께 일하며 지극히 평범해 보이던 그 사람들이 다들 소위 SKY니 뭐니 하는 명문대를 나왔다는 거다. 그날 이후 그는 정규직이라는 건 감히 꿈조차 꾸지 않았단다. 좋은 대학의 졸업장도, 그럴듯한 스펙들로 채워진 이력서도 없었으니까.
K의 말을 들은 우리는 '나는 너를 응원한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술잔을 몇 번 부딪치고, 지금은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힘을 내라는 의미를 지닌 위로의 말을 몇 마디 건넸다. 그래, 너와 내가 하는 일이 뭐가 그리 다르겠나. 그럼에도 정규직인 나는 이 회사에서 계속 일을 할 것이고, 계약 기간이 끝난 너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다시금 새 직장을 찾아 헤매고 다녀야 할 팔자로구나. 열심히 일했던 네가 나가게 되면 당장 그 부서는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을텐데. 그렇게나 열심히 같이 일했는데 왜 우린 함께 오래도록 행복할 수 없는 것일까. 왜 이 땅에는 비정규직이라는 계급 아닌 계급이 존재하는 것이냐. 우리 시대의 슬픈 현실이다ㅡ 등의 진심이 어려 무거우면서도 내일이면 휘발되어 버릴 가벼운 말들을 밤 늦게까지 주고 받았다.
하지만 전염된 슬픔의 행진 속에서 슬몃 다른 생각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다르냐고 하지만, 나와 너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지. 내가 차지한 이 책상은 피땀흘려 노력해서 이룬 SKY라는 학벌과, 각종 스펙 달성과, 치열한 시험의 통과로써 마침내 쟁취해 낸 정규직의 자리다. 존 롤스의 '무지의 장막' 하에서도 자신있을 만큼, 누가 봐도 나는 열심히 살았다. 노오력하지 않은 자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불가피하고, 적자생존의 이 각박한 사회에서는 타인을 이겨야만 먹이를 확보할 수 있는 법이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지만,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자 내가 마치 한 마리 짐승처럼 느껴졌다. 남에게 먹이를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한 마리 야생동물으로 전락한 것처럼. 혼자 부끄러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게 나의 민낯이고 바닥인건가.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며 비틀거리던 발걸음이 씁쓸했다.
며칠 뒤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대책(지난 문재인 정부 때다)이 발표됐다. 모두가 잘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예전 같았으면, 특히 취준생일 때의 내가 들었으면, 무척이나 기쁜 소식이었으리라.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걸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 회사는 비정규직이 절반이 넘는 곳인데 어떡하지, 이들을 모두 정규직화하면 인건비가 어마어마하게 늘텐데, 그럼 회사가 어려워지고 결국 내 월급을 많이 못 올리는 거 아닌가, 대출 상환 기간도 아직 엄청 남았는데, 큰일이다 큰일이야, 이놈의 정부는 대책도 없이 이러면 어쩌라는 거야, 등의 그동안 어디 숨어 있었는지도 몰랐던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고작 한 줌만큼이지만 뭐라도 하나 움켜 쥔 '가진 자'가 되었는지 잘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마치 사측의 간부라도 된 양 비용 절감을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또다시 한 마리 야생동물로 돌아간 듯하여 부끄러워졌다.
K는 몇 달 뒤에 2년짜리 계약직으로 회사에 다시 들어왔다. 동일 부서, 동일 업무가 아닌 덕분에 이곳에서 다시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었다. 열심히 일했지만 계약 기간이 종료된 후 이번에도 정규직이 되는 데 실패했고 다시 구직 활동을 하는 중이다.
어쩌면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프리랜서'로 일하게 됐다면서 다시 이곳으로 들어올 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부리는 데에 그런 꼼수가 있다. 예전에 하던 것과 똑같은 일을 할 것이고 회사와 K는 실질적으로 고용과 피고용자의 관계지만, "사업자 대 사업자의 계약이라고, 노동법에는 안 걸리게 입단속을 단단히 받았어요."라고 말하면서. "잘은 모르지만 동일한 업무를 같은 사람이 2년 이상 계속 하게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그런 법이 있다더라구요." 그가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하면, 그걸 듣고 있을 나는 같이 웃어줘야 할까 함께 울어줘야 할까. 배우도 아니면서 소위 웃픈 표정이라는 걸 미리 연습해둬야 할 지도 모르겠다.
오토바이 배달 청년도, 비정규직도, 구직자도, 그리고 SKY를 나오거나 나오지 못한 우리들도. 분명 같은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이 아닌 채 지금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