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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Sep 06. 2024

점심시간에 거짓말하는 직장인

회사원 K의 직장생활 중간정산 (5)

 몇 해 전 서울 강남에 있던 회사가 고양시 일산으로 이사 왔다.


 "세상에, 어떻게 올라온 서울인데 결국 지방에 있는 회사에 다니게 됐네요." 


 일산으로 첫 출근한 날 농반진반으로 말했다. 서울에 올라와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주소의 집에 살면서 서울에 있는 회사를 다녔으니 이제 나도 서울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다시 지방의 회사원이 되었다는 장난 섞인 푸념이었다.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찬 아침 시간 교대행 2호선과 수서행 3호선을 타고 다녔는데 이제부터는 이름도 낯선 대화행 방향 3호선 열차를 타야 한다. 평생 가 볼 일이 없을 것 같았던 구파발 너머 미지의 세계로 여행 아닌 여행을 매일 떠나게 됐다. 그래도 전철이 널널한 건 마음에 들었다. 만원 전철에서 옴짝달싹 못하고서 몸이 끼일 일도 없고, 낯선 이와 어깨를 부딪쳐서 불쾌한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으며, 게다가 앉은 채로 출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강남으로 오갈 땐 상상도 할 수 없던 장면이었다.


 며칠 동안 일산으로 출근해 보니 깨닫게 됐다. 서울, 그곳에서도 강남이 얼마나 좋은 동네였는지. 먹을 것도, 구경할 곳도, 이런저런 재미난 일들도 많은 곳이었던 거다. 왜 다들 서울 서울 그러면서 떠나지 못하는지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에 반해 일산은 도화지 가장자리의 하얀 여백 같은 곳이었다. 유독 회사가 있는 쪽이 더 그랬는데, 말하자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운동장 한가운데 건물 한 채만 덩그러니 서 있는 느낌이었다. 회사에 파견 나온 공익근무 아이들도 그랬다. 처음에 파견지 주소를 보고 의아했다고. 거기 아무것도 없는 동네인데 회사가 있다고? 이게 정말인가, 전산 오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이나 여기는 허허벌판이었다.


 몇 해가 지난 지금은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들도 들어서고 초등학교도 하나 생겨서 제법 그럴싸한 동네로 탈바꿈했다. 처음에는 근처에서 편의점 하나 찾기도 어려운 게 어찌나 낯설고 불편했는지.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사옥 이전 초기에 회사 사람들의 불평불만이 폭주했다. 사내 게시판에는 불만 글이 매 끼니를 챙겨 먹듯 매일같이 꼬박꼬박 이어졌다. 바로 옆 부서인 운영팀에는 문의와 항의 전화가 끊이지 않아서 사무실 전화 벨소리를 무음으로 바꿔주고 싶을 정도였다.


 "전철역에서 회사까지 15분 넘게 걸어가야 하는데 너무 힘들어요. 셔틀버스 좀 늘려주세요."

 "셔틀버스는 왜 일산 역에서 회사까지만 있나요. 서울 사는 직원들이 많으니까 서울에서 회사까지 오는 셔틀도 만들어 주세요."

 "집에서 회사가 멀어져서 자가용으로 출퇴근하게 됐는데 주차장 자리가 너무 부족해요. 왜 건물 설계를 이따위로 했나요?"

 "설계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이렇게 큰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왜 이것밖에 없는 건가요?"

 "실내가 너무 추워요."

 "아니, 우리는 더운데요."

 "구내식당은 서울에 있을 땐 맛있었는데 지금은 맛이 없어졌어요. 반찬은 왜 이 모양이죠? 가격은 더 올렸잖아요."

 "편의점하고 카페는 언제 입점하는 거예요? 일하면서 커피도 한 잔 못 마시잖아요. 편의시설도 하나 없는 건 하루 종일 그냥 일만 하라는 건가요."


 하지만 무엇보다 직원들을 심란하게 했던 건 회사 주변에 '괜찮은 식당'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강남에는 길바닥에 널린 게 맛집들이었는데 여긴 그렇지가 못했다. 그나마 맛있는 걸 먹으려면 차를 타고 저 멀리 어딘가로 나가야만 한다. 행주산성이라든지 파주 장단리, 혹은 고양 애니골 같은 동네까지 20~30여분을 차를 달려가야 하는 길. 거기까지 오가기에 불과 1시간 남짓한 직장인의 점심시간으로는 빠듯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 그래도 주변 식당들 중에 어디 한두 군데 정도는 괜찮겠지."


 그렇게 걸어갈 수 있는 맛있는 밥집을 찾기 위해 용감하게 점심 식사 원정길을 나섰던 사람들은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왔다. 원정에 실패한 패잔병들이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근처에는 마땅한 곳이 없으니 그냥 구내식당에 가는 게 나을 거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점심 12시 즈음엔 부서 동료들과 다들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지하 1층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행진에 합류하게 됐다. 그때의 우리 모습은 마치 일렬종대로 나란히 바닥을 향해 침몰하는 레밍 무리들 같았다. 먹고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맛없는 구내식당에서 꾸역꾸역 끼니를 때워야 하는 직장인들의 슬픈 모습이었다.


 사실 구내식당이 맛이 있는 지의 여부를 떠나서 나에게 있어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매일같이 여럿이서 함께 밥을 먹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친한 동료들이라 하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땐 서로 말을 해야 하고, 잠자코 듣기도 해야 하고, 하다못해 최소한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아아, 네에ㅡ 그렇군요." 같은 추임새라도 넣어줘야 한다. 매번 또래 동기들과 밥을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식사 자리에 나이 지긋한 부장님이라도 끼어 있다면, 더럽게 재미없는 아재 개그에도 대단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양 깔깔 웃어주는 척도 해야 하고. 밥을 먹는 속도도 남들과 비슷하게 맞추려면 수저를 조금 더 바삐 놀려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이렇듯 생각보다 참 피곤한 일이다. 말하는 걸 썩 좋아하지 않거나 밥을 천천히 먹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고. 뭐랄까, 밥에서 얻는 에너지를 밥을 먹으면서 동시에 써 버리는 것 같다. 분명히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아 놨는데 고사양의 게임을 돌리느라 충전이 제대로 되는 둥 마는 둥의 꼴이라고 해야 하나.


 비단 밥을 먹는 시간뿐만 아니라 밥을 먹기 전과 먹은 후에도 상당한 '사회생활력'이라는 게 필요하다. 점심시간 30분 전 즈음부터 왠지 주변 동료들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혹시 다들 약속이 있는 건 아닐까? 아니, 약속이 있으면 미리 말을 했겠지. 나만 빼놓고 어디 가는 건 아닐 거야. 오늘은 역시나 구내식당을 가려나. 어제 술을 마셔서 해장 라면이나 한 그릇 하고 싶은데 점심에 라면 먹자고 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 혼자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마침내 점심시간이 되어서도 다시금 가벼운 갈등이 시작된다. 구내식당을 갈 것이냐 혹은 밖으로 나가서 한식이냐, 중식이냐, 일식이냐, 양식이냐. 저마다의 입맛과 취향을 맞춰 메뉴 합의를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날 때 즈음부터 또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밥값 계산은 어떡하지. n분의 1로 내려나, 지난번에는 누가 샀더라, 오늘은 내가 쏘는 날인가. 밥을 먹었으니 다들 커피를 마시러 가겠지. 카페에서는 또 이런저런 대화를 하겠구나.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나는 밥 먹고 나면 되게 졸린데 먼저 들어가겠다고 하면 안 되나. 이런 말 못 할 고민들과 복잡한 감정들을 숨긴 채 겉으로 멀쩡하게 웃으며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떨 땐 참으로 버겁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렇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어째 이런 일에는 지치지도 않는가보다.


 혹시나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나를 오해할까 봐 덧붙이자면, 사람이 싫다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걸 마다하지는 않는다. 그게 사람 사는 거라 생각한다. 다만,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상호 작용 활동, 의사소통 시 생각해야 할 대화의 격률, 화젯거리가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한 시사 공부, 사회적 체면과 지위를 건실하게 유지하기 위한 가면 쓰기 따위에 들여야 하는 노력이 가끔은 지칠 때가 있다는 것뿐이다. 서로 충돌하지 않을 만큼 적당한 궤도로 공전하는 코스모스의 아름다운 행성들처럼, 타인들과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고 싶다.


 그래서 종종 약속이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혼자서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왜 혼자 먹어요, 라는 말에 일일이 설명하자면 힘드니까 그냥 선약이 있다고 대충 얼버무리고서 종종걸음으로 회사를 나왔다. 점심시간만이라도 가끔은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그 시간을 제대로 누리려면 회사에서 너무 가까운 식당은 피해야만 했다. 혼자서 밥을 먹다가 아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무척 뻘쭘할 것 같아서다. 그래서 양재역 방향으로 적어도 15분 정도는 쉼 없이 걸어간 뒤 적당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그렇게 홀로 들어선 맥도날드에서 빅맥 세트와 밀크 셰이크를, 김밥천국에서 치즈라면과 김밥을, 탐앤탐스에서 갈릭 소스를 곁들인 이탈리안 프레즐과 아이스티를, 서브웨이에서 클래식 참치 샌드위치를(할라피뇨와 올리브는 꼭 넣고), 일식 돈가츠집에서는 등심과 안심을 반반 섞은 모듬 가츠와 미니 우동을, 가끔은 한참을 더 걸어간 뒤 어느 아파트 상가에 자리 잡은 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 곱빼기에 고춧가루를 가득 뿌려서 먹곤 했다. 그러고 보니 고작 한 끼라고 해서 대충 때우지 않고 제법 다양하게 먹었다. 혼자 먹는다고 해서 오늘 하루 딱 한 번뿐인 소중한 점심을 맛없게 먹을 수는 없는 법이다.


 혼자서 밥을 먹고 남는 시간엔 멍하니 창 밖의 사람들을 쳐다봤다. 밥 먹을 시간인데 다들 뭐가 저리 정신없이 바쁜 걸까.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의 톤으로 '밥은 먹고 다니냐.'고 읊조렸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은 챙겨 먹어야지, 같은 생각 따위를 하면서. 음악을 듣거나 웹툰도 보고 따뜻한 봄날에는 기분 좋은 배부름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짧은 점심시간 동안 누리는 나만의 작은 여유였다.


 이제는 그런 혼자만의 사치를 더 이상 부릴 수 없게 됐다. 어디 나가서 혼자 먹으려고 해도 도저히 방법이 없다. 걸어서 왕복 도합 40여분 거리의 일산 번화가로 나가서 혼밥을 할 순 없으니까. 그렇다고 혼자 차를 몰고 나가서 밥을 먹고 오기도 힘들고. 도대체 이놈의 회사는 왜 이런 곳으로 이사를 온 걸까.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없는 이런 유배지 같은 곳에 말이다. 내가 매일 혼자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아주 가끔, 2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이라도 그러고 싶은 건데.


 "저기... 구내식당에 1인용 자리라도 하나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가끔이라도 혼자서 밥 먹고 좀 쉬고 싶은데 말이죠."


 옆 부서 운영팀에 하고 싶은 말이었지만 워낙 바빠 보이는지라 염치없이 그런 부탁을 할 순 없었다.


 윤고은의 단편 소설 <1인용 식탁>에서 화자는 평범한, 아니 평범보다 조금 더 소심한 편에 가까운 직장인이다. 그는 어느 날부터 영문도 모른 채 따돌림을 당하게 되고 결국 점심을 혼자서 먹게 된다. 우두커니 홀로 앉아 밥을 먹는다는 게 너무나도 낯설고 어려웠던 일인지라 '혼자서 밥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학원까지 다니게 되는데. 서툴렀던 초반은 잠시, 점차 발전을 거듭하며 식사를 즐기게 된다. 정말 혼자서 밥을 잘 먹고 다니는지 학원의 불시 검문 테스트까지 받으면서 훈련에 매진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양반 참, 혼자 밥 먹는 게 뭐가 어렵다고. 이렇게나 편하고 좋은 것을. 소설이 쓰인 지 10년 즈음 됐으니까 그땐 아마 '혼밥'이라는 단어조차 흔하지 않았을 때인데, 시간이 흘러 이제는 혼자 밥 먹는 것 따위 아무렇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유례없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장됐던 때. 비상사태를 맞이한 회사에서도 구내식당 의자를 절반이나 빼 버렸다. 마주 보고 앉아 있으면 서로의 비말이 튈 수도 있다면서 죄다 나란히 앉아서 밥을 먹으라고 했다. 그래서 점심시간 식당에 갈 때마다 장관이 펼쳐졌다. 모두들 일렬횡대로 한쪽 방향을 바라보고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마치 해가 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해바라기들로 가득찬 꽃밭에 온 것 같았다. 재택근무도 많이들 하는지라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밥을 먹게 된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듬성듬성 앉아 홀로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 나도 재택근무가 아니었던 날, 사무실에 혼자 출근하게 됐다. 점심시간에는 홀로 먹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자연스레 합류해 앉아서 밥을 먹었다. 아무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혼자 밥 먹는 게 전혀 이상한 모습이 아닌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더 나아가 좌석마다 칸막이를 설치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기왕 거리를 둘 거면 제대로. 이러다가 나 혼자 마음속으로만 바라 왔던 1인용 좌석을 회사에서 정말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참. 좋다고 해야 할지 나빠졌다고 해야 할지. 상상도 못 했던 시대의 낯설고도 왠지 슬픈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엔데믹을 지나 이제는 다 같이 밥을 먹는 지금, 그때는 어느덧 오래 전 풍경이 되어버렸다. 나는 다시금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없게 됐다. 직장 동료들은 일산에서도 맛집들을 꽤 찾아냈다.



직장인 드라마 <미생>의 촬영 배경지였던 서울역 건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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