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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y 02. 2020

직장인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꿈

주간(週間) 필름 사진첩 스물아홉 번째

라라 랜드의 할리우드 스타 거리. 안성기와 이병헌의 손바닥을 찾아 헤매이면서
왠지 영화에서처럼 커플 댄스를 춰야 할 것 같았던 그리피스 천문대
11월의 LA는 마치 초여름 날씨처럼 더웠다

Samsung af slim zoom 70s

Samsung zoom 35-70mm auto macro lens

Kodak Colorplus 200

2018년 11월




(제목은 소설가 장류진의 단편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차용)



 "LA 가면 여긴 꼭 들러만 한다."


 렇게 L형이 박박 우겨서 끌려다시피 했던  영화 <라라 랜드>에서 보랏빛 노을이 아름답던 그리피스 천문대. 다음 목적지는 영화에서 자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City of stars'를 부르던 닷가 근처 재즈 클럽이었다.


 재즈 공연을 보면서 누가 디자이너가 아니랄까 봐 금세 낭만에 젖어드는 L형과 달리 나는 수록 머리가 차가워졌다. 그날의 운전 당번은 나였기에 혼자서만 술을 마시지 않아서 그랬으려나.  두어 순배가 오가고 다들 왁자지껄한 가운데 자만의 각에 빠져들었. 라라 랜드 본 지 오래돼서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진 않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극 중에서 연인이었던 라이언 고슬링(세바스찬 역)과 엠마 스톤(미아 역)국 헤어졌으니 좌절된 연애담이라고 하면 되려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실패한 사랑을 몽환적인 은유로 가득 낭만적인 영상으로 포장한 영화였다. 대신 그들은 사랑이 아니라 각자의 꿈을 이뤘다. 남자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는 재즈 클럽을 열었고, 여자는 바라 마지않던 배우의 삶을 살게 됐으니까. 멜로 영화가 아니라 성장 영화라는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런 결론은 새드엔딩이라기보다해피엔딩이라 해 되다.


 그들 꿈을 이뤘지만 사랑을 잃 것처럼,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 법. 모두를 가질 순 없는 게 세상의 이치이다. 그런데 꿈이라는 건 뭘까.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 하는 것, 그걸 갖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고 못 살게 되고야 마는 그런 걸까. 영화에 나왔던 꿈 같은 장소에 앉아서 내가 못 다 이룬 꿈에 대해서 다.


 "너는 꿈이 뭐니?"


 이런 질문을 들으면 어릴 땐 과학자나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또래 아이들과 같은 평범한 대답이었다. 어느 날부터는 선생님, 그중에서도 교수가 될 거라는 대답을 했다. 공부를 곧잘 했기에 "너는 대학 교수가 되거."는 외할아버지 말씀 부응한 이었다. 교수가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른 고3들이 하는 것처럼 수능 성적에 맞춰 대학교어갔다. 리고 름 SKY 학교 생으로서 남들이 한 번씩은 다 도전해보던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교육부 고위공무원이 돼서 한국 교육을 바꿔보겠다는 야로 부푼 꿈을 다. 몇 번의 낙방 끝에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니다 싶어 고시 생활을 때려치운 후엔 기자 험을 보러 다녔다. 배운 게 글쓰기인데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직업이 꿈으로 삼아 볼 만하다 싶었다. 그러다가 어쩌다보니 기자도 PD도 아닌 공기업 시험을 봤고 덜컥 붙어 버려서 일단 다니기로 했다. 누가 보더라도 다니기에 괜찮은 회사이긴 했으니까. 그렇게 회사원이 되었다.


 직장인 생활은 지겨웠다.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딱히 재밌지도 않았다. 그저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뿌리칠 수 없어 꾸역꾸역 매일같이 출근 전철에 몸을 실었다. 그제야 내 꿈이 뭘까, 하는 고민을 뒤늦게 하게 됐다. 일을 하지 않을 때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보니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아침 KBS <황정민의 FM 대행진>부터 시작해서 잠 못 드는 새벽에는 MBC <이주연의 영화음악>까지 듣곤 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 땐 <이소라의 음악도시> 시민이었고 용돈만 생기면 음악 테이프나 CD를 사는 데 죄다 썼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걸 업으로 하기 위해 라디오 PD가 되. 늦게 생겨난 꿈을 이루기 위해 주말마다 글쓰기 스터디에 나가고 상식과 뉴스 공부를 하고 프로그램 기획안들을 써댔다.


  몇 년 간 M사의 필기시험, S사의 면접과 K사의 최종 면접 등에서 거듭 탈락하면서 다시금 꿈을 접었다. 여기까지 했으니 이제 그만하자. 책상 한켠에 높다랗게 쌓아 둔 기획안들을 찢어 버리면서 생각했다. 벌이의 지겨움에도 불구하고 지금 다니는 회사나 열심히 다녀야지 수가 없구먼. 어쩌면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으면 싫어하게 되었을지도 몰라. 이솝 우화에 나오는, 먹지 못하는 포도를 쳐다보며 신맛이 날 거라고 자위하던 여우모습다.






 지금은 군가 꿈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할 때 어떠한 직업이라는 '명사형' 대답을 하지 않는다. 으면 좋겠다, 하는 조건'서술형'으로 답하곤 한다. 더 이상 과학자, 교수, 공무원이라 답하지 않고 통장 잔고가 늘었으면 한다, 서울 비싼 아파트를 가졌으면 좋겠다, 9 to 6를 지키는 직장 생활을 겠다 같은 대답을 한다. 직장의 삶에 대해서는 조금 더 구체적인 답을 덧붙인다.


 "저는 직장에 대해서 딱 세 가지를 고민했습니다. 첫째, 돈을 많이 주느냐? 둘째, 사회에 기여하는 보람찬 일인가? 셋째,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가?"

 사장과의 점심 식사 때 한 말이었다. 이런 자리에서 으레 맞이하게 되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 편하게 털어놔 보게'의 시간에서 내 차례가 왔을 때였다. 그런데 말이라는 게 그렇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바퀴가 굴러가긴 하는데 핸들을 어찌할 줄 몰라서 이리저리 꺾어대다가 결국 엉뚱한 방향으로 쓰러져 버리는 것처럼, 시작할 때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결말로 끝맺는 경우가 많다. 사장 앞에서 횡설수설하다가 내린 결론은, 이 회사는 월급도 애매하게 제법 많이 주면서, 나름 공익을 위하는 회사지만 더러운 꼴도 많이 보게 되고, 사기업에 비해 힘들지는 않은데 왠지 일하는 게 짜증스럽다. 직업을 선택할 때 고민했던 세 가지 중 뭐 하나 확실한 게 없는 곳이라는 거였다. 원하는 꿈을 이뤘다기엔 여긴 너무 애매하다고.

 내 이야기를 들은 사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김 과장은 다른 회사로 가고 싶다?"

 대체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인 건가 아차 싶었지만, 하고 싶은 말 아무거나 솔직하게 해 보랬으니까 나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직 시도를 몇 번 했었는데요. 이제 나이가 많아서 다른 회사 신입으로 들어가긴 글렀으니 여기 열심히 다녀야죠."






 친구 W는 여의도 증권사를 다다가 공기업으로 이직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살이 30킬로그램이나 쪄 버 탓에 살기 위해서라도 여의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대학 동기 S는 나와 같이 고위 공무원이 되겠다며 공부를 시작했고 신림동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지만 결국 포기하고 취업을 했다. 먹고살려면 언제까지나 고시를 붙들고 있을 수 없었다. 회사 동기 H형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마흔이 되기 전에 주식이든 뭐든 재테크에 성공해서 여길 때려치우고 나는 게 목표라고. 소위 파이어족이다.


 장 동료들과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 대화의 주제는 늘 비슷하다. 몇 년 전에 코인나 주식투자하지 않았던 걸 후회하서 괜찮은 재테크거리가 있는지 정보를 교환하고, 내가 가진 아파트값은 오르고 가지고 싶은 아파트값은 떨어지길 고대하면서, 모두가 평일에는 로또를 사고 토요일 저녁에 추첨 방송을 보면서 실망했다는 말을 어놓는 일주일을 도돌이표처럼 되풀이하며 살고 있다. 직장인라고 해서 처음부터 이않았을텐데 다들 어쩌다 이 비슷비슷한 꿈 꾸며 는건지. 저마다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반짝거리며 빛났을 꿈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이렇듯 누군가에게 꿈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모두가 가지고 싶은 직업이나 그 직업의 장점, 혹은 재산의 규모를 말하곤 는데, 친구 J만은 스무 살 무렵부터 혼자서 별말을 했다.


 "나는 좋은 아빠가 될 거야."


 들으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그런 게 진짜 꿈라고 할 수도 있겠구나. 돌이켜보니 참으로 멋진 꿈이 아닐 수 없다. 멋진 꿈을 꾸던 멋진 녀석. 하지만 그땐 아무것도 몰랐다. 다들 와하하하, 이 새, 우선 여자 친구나 만들고 그딴 낯 간지러운 말을 하라면서 놀리기나 했을 뿐. 그땐 그게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인지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몰랐었다. 하기사 스무 살 남자애들이 생각이라는 게 있었겠만은.


 어느덧 서른 중반저씨가 된 나도 이제 새로운 꿈이 하나 생겼다. 그건 못 다 이룬 라디오 PD라는 업도 아니고,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포상도 아니고, 토요일 밤의 열기 같은 로또나 아파트 청약 당첨도 아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출산을 내가 건강히 끝마치는 것. 그리고 태어난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놀아주는 좋은 아빠, 그럼에도 아이보다는 아내를 조금 더 사랑하는 좋은 남편이자 친구가 되는 것. 더 나아가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리만큼이나 남들도 행복할 수 있도록 내가 가진 것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 리 대단해 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해 나가 보면 나에게도 언젠가는 금의 꿈이라는 걸 이룬 날이 오라 믿는다.


 꿈이라는 게, 꼭 거창할 필요가 있나. 





 ※ 아 참, J는 몇 달 전 첫 아이를 낳았다. 본인은 이미 까맣게 잊어 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스무 살 무렵 그 자기 입으로 꿈이라고 말했던 '좋은 아빠'가 꼭 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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