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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Apr 02. 2020

부처님이라고 흙 파먹고 사는 줄 아나

주간(週間) 필름 사진첩 스물세 번째

길상사 대웅전 앞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아기부처상

Canon QL17 g3

Canon 40mm 1:1.7 lens

Fujicolor C200

2019년 7월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걸린 광화문의 연등

Minolta X-700

Minolta-Samsung 50mm f1.4 Lens

Kodak UltraMax 400

2019년 5월



맑고 향기롭게, 길상사

Nikon FG-20

Zoom-NIKORR 35~70mm 1:3.3~4.5 Lens

Agfa Vista 200

2016년 6월



강화도 전등사의 연잎

Minolta X-700

Minolta-Samsung 50mm f1.4 lens

Fujicolor C200

2018년 8월




  좋은 날이면 성북동 길상사를 찾아가 걷곤 한다. 고즈넉한 사찰을 한가롭게 거닐고 있다 보면 서울이면서도 서울이 아닌 어떤 곳에 와 있는  같다. 내 마음은 평소에는 거친 풍랑이 이는 바다였지만 이곳에서는 마치 잔잔한 수면의 호수인 양 편안해진다.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 잠시나마 느릿하게 쉬어 갈 수 있는 안식처 같은 곳이랄까. 미국 작가 수전 손택이 독서를 일컬어 그랬던가. '나만의 작은 자살'이라고. 길상사 산책을 하면 그렇게 나 자신 대해서건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이건 모두, 잠시나마 잊어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누가 코 베어 갈세라 정신 단단히 챙기고서 숨가쁘게 달려야만 하는 서울에서도 이런 곳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다.  


 여름의 어느 날, 역시나 한가롭게 길상사 경내를 걷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 일주문에서부터 법종각, 묵언 수행을 하는 침묵의 집, 무소유 법정 스님의 생전 거처를 지나 대웅전까지 크게 한 바퀴 돌았을 때 즈음이었다. 오늘도 속세에서 켜켜이 쌓인 때를 가득 벗겨내고 가는구나. 절로 마음이 청량해지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평소에는 나지막히 불경 외는 소리만이 맑게 흘러나오던 대웅전 앞 스피커에서 그동안 듣지 못했던 낯선 단어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경내의 적요함이 한순간 깨뜨려졌다.


 "OOO 님 십만 원 시주, ㅁㅁㅁ님 오만 원 시주, 사단법인 XXX에서 봉헌 어쩌구..."


 이게 웬 갑자기 일요일의 대형 교회 예배 끝날 때의 분위기가. 지루한 설교와 도돌이표 많은 4절짜리 찬송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앞에서 뒤로 넘겨오던 헌금 바구니를 마주쳤을 때가 떠오른다. 그리고 머리 벗겨진 목사님께서 그물에서 물고기들을 꺼내듯 바구니에서 헌금 봉투를 꺼내며 외치신다. 신도들이 저를 위해, 아니,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정성스러운 예물을 바치나이다. 아멘. 도들도 소리높여 화답한다. 할렐루야. 그때마다 생각했다. 현찰 뭉치가득 찬 바구니가 눈앞에서 오가 이곳이 교회인지 시장바닥인지 헛갈린다고. 예배라는 한바탕 엄숙한 연극이 끝나고서 왁자지껄한 현실 세계로 갑작스레 추락 듯 기묘한 에 몸서리치곤 했다. 그런데 항상 경건해 마지않던 길상사에서마저도 누가 얼마를 냈니, 그런 도움 덕에 복을 받을 것이네, 따위의 지극히 '교회스러운' 단어들을 듣게 될 이야. 간이 가난한 자는 기독교의 천국에도, 불교의 극락정토에도 갈 수 없는 겁니까.


 내가 이 꼴을 보려고 길상사 왔나. 황당하기도 하고 왠지 모를 배신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렇게 부아가 치밀어서 씩씩거리고 있는 와중에 대웅전 마당 구석에 앉아있던 아기부처상이 눈에 들어왔다. 니, 그동안 몰랐는데 언제부터 저기에 계셨던 건가. 가만히 앉아있던 부처께서는 보일락말락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대여, 화내지 말고 평안하십시오."


 그렇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거늘. 나는 어찌 이리도 화를 내고 있던 것이었을까. 부처님께서도 살아 생전에는 삼시세끼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육신을 지닌 존재였고, 스님들도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수행만 해서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 한낱 인간에 불과한데. 세상 속에 스며들어, 이렇게나 큰 사찰을 운영하며 밥도 해 먹고 난방도 때우고 에어컨도 돌리고 전기료에 수도세에 봄에는 연등도 밝히고 불경도 강독하면서도, 스님이라면 응당 정진해야 할 본연의 일인 자기 수행까지. 이 모든 걸 해 나가려면 결국 '시주'라는 이름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게다. 세상 속에서 그 일원으로 살아가려면 스님이건 신부이건 목사이건 이맘이건 돈을 만지며 살 수밖에.


 그러니까 부처님이라고 흙 파먹고 살 순 없다. 


 교학자 리아데에 따르면 ()속()에 반대하여 나타나는 모든 것들의 총합이라지만 육신을 가진 인간의 삶에서 이 둘의 완전한 분리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더라도 속세의 땅을 딛고 서 있을 수밖에 없. 일견 그토록 당연한 사실에 나는 뭣하러 그리도 화를 냈던걸까. 허히 받아들이자. 그리고 나 혼자 이런 깨달음을 얻어서 무엇하나. 대승불교적 차원에서 곁에서 함께 걸으며 더위에 지쳐하는 이에게도 좋은 것은 나눠야한다. 아기부처님의 염화미소를 통해 깨달은 바를 함께하기 위해,


 "한여름의 무더위 속이지만 마음 속으로 시원하다 생각하면 그리 덥지 않을 것이외다. 모두가 마음 먹기에 달려있지 않겠소."


 라고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얘기했다가 아내에게 등짝을 짝 하고 얻어 맞았다. 땀에 젖은 얇은 여름옷을 통해 느껴지는 손이 무척 맵다. 사극에서 볼기짝을 때릴 때 물 한 바가지 냅다 끼얹고 곤장을 치는 이유를 알겠다.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아내는 화를 냈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땀이 한 바가지씩 주르륵 흘러 내릴만큼 더운 날씨에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더우니까 선문답 따위로 사람 열 받게 하지 말랜다.


 어허, 거 참. 이보게, 아기부처를 보게나, 모두 다 마음 먹기에 달렸다니까. 어허, 거 참. 그렇게 때리지 마. 마이 아파.




 그나저나 주일마다 교회는 꼭 가야 한다며 신신당부 하 열성 신자이신 어머니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놀라 자빠지실 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걱정하시 마세요. 저는 여전히 신을 믿습니다. 다만, 대형 교회의, 벤츠를 타고 다니며, 가톨릭과 불교계와 달리 끝까지 '종교인 과세'에 비협조적이었고, 최근 코로나 19 시국에도 끝끝내 주일 대면 예배를 강행하 (일부) 개신교 목사들을 싫어할 뿐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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