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돌 May 15. 2020

임신, 출산, 육아는 책으로 배울 수 없다

그럼에도 늘 그랬듯이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아이를 맞이하게 된 우리 부부는 당연히도 임신-출산-육아가 모두 처음인 신입이라 일단 책을 사서 공부하기로 했다. 댁도 시댁도 모두 지방에 있는지라 기댈 곳이라곤 책이나 인터넷, 주변인들의 경험담 정도밖에 없. 인류의 위대한 유산인 '책'에 우리가 궁금했던 모든 것들이 있으리라 바랄 수밖에. 늘 그랬듯이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니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보자. 선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후학의 도리 아니겠는가.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가며 고르고 고른 책들을 주문했다.

 처음으로 고른 두 권은 어렸을 때 우리 집 책장 있던 백과사전 전집 비슷하게 생긴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 그리고 에세이집 <임신한 아내를 위한 좋은 남편 프로젝트>라는 책이었다. 대백과는 가히 베스트셀러로 명성을 떨칠 만한 책이었다. 각 시기별로 임신 출산 육아 관련  정보들이 잘 정리돼 있었다. 책 표지가 노란색이라서 다들 '노란책'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던데, 취업준비생일 무렵 토익 교재로 쓰던 빨강이, 파랑이 같은 책들이 생각나는 이름이었다. 좋은 남편 프로젝트에서는 딱히 정보를 얻을 건 없었다. 그저 남편의 입장에서 쓴 유쾌한 에세이집이었다. 배가 나오고 살이 찐 아내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예쁘게 말해주기, 등의 요즘 말로 '윗한'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자를 확인해 보니 과연 외국 사람이다. 한국 남자가 이럴 리 없지.


 선물받았지만 읽을 일이 없어서 먼지만 뽀얗게 쌓여가던 책들도 꺼다. EBS에서 나온 <우리 아이, 상상에 빠지다>와 아직은 이르지만 <학교란 무엇인가> 같은 단행본들이었다. 아이를 낳을 줄 몰랐으니 평생 이런 책들은 읽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결국 펼치게 됐다. 아내는 본인의 '거친' 성격이 아무래도 걱정됐는지 육아 전문가 오은영 박사의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라는 책도 사 와서 읽는다. 그래, 아무리 힘들어도 아빠와 엄마 둘 중 하나는 참아야겠지. 여기에다가 육아 선배인 친구들한테 얻어 온 이런저런 동화책이며 동시집, 졸업한 지 벌써 10년이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한 머릿속을 더듬어가며 교육학 책들도 다시 꺼내 읽었다. 피아제와 비고츠키 선생님, 참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나저나 육아와 교육 관련 책을 읽다 보니 그동안 몰랐던 게 너무 많았다.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건 살아가면서 한 번 (요즘은 비혼 비출산주의자들도 많아서 꼭 그렇지는 않지만) 경험하게 되는데 왜 학교에서는 이렇게 중요한 걸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가정' 과목에서 이런 걸 배우기나 했던가. 사범대 졸업했지만 전통적인 '국영수과사+기타'과목 분류 늘 불만러웠다. 국어 과목이야 기본적인 의사소통과 쓰기 읽기를 위해서 필요하다 하더라도, 나머지 과목들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몇십 년 전에 분류된 언제 적 교과 과목을 아직도 그대로 배우고 가르치고 있다. 야흐로 4차 산업과 스마트 혁명 시대를 맞이한 지금에도 말이다. 교육철학자 존 듀이가 이렇게 말했음에도 말이다. "어제 가르친 그대로 오늘도 가르치는 건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는 짓이다."


 학교에서 배워야 할 과목들을 새로이 구성한다면 국어 다음 첫 번째로는 <안전> 과목을 넣. 물에 빠졌을 때 수영하는 법, 화재 사고 시 어떻게 숨을 참으며 무사히 빠져나올 것인지, CPR과 같은 응급처치법 등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용으로. 두 번째로는 <성교육> 과목. 요즘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뉴스는 죄다 성 문제들이다. n번방 범죄,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 운동 등의 젠더 문제, 발생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성폭력까지. 여전히 수박 겉핡기식으로 진행하는 성교육 현장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올바른 성 의식, 그리고 커플이나 부부를 위한 연애 섹스 임신 출산 등에 대해 쉬쉬하지 고 제대로 르쳐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는 이미 사회 과목에서 일부 가르치고는 있지만 <경제 실전> 과목. 수요 공급 곡선이나 후생 경제 따위들도 중요하지만, 알바때 근로계약서를 쓰는 법이라든지, 주식이나 적금, 부동산 매매 같은 재테크, 노동자의 권리와 조합 설립 등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 꼭 알아야 하지만 그동안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들이 있다. 네 번째로는 <미디어 리터러시> 과목. 바야흐로 정보의 홍수 시대. 수많은 정보 중에서는 정확하고 유용한 것들도 있지만 가짜 뉴스나 선동, 왜곡의 정보들도 많다. 앞으로는 이런 걸 걸러내고 제대로 받아들이는 문해력, 문식성 능력이 필수 소양이 될 거다. 말 같지도 않은 허위 정보에 휘둘리게 되면 나이 들었을 때 광화문 앞에 나가 태극기나 휘두르고 있을지 모른다.


 적어도 이렇게만 배워 한 명의 '정상적인' 사회인으로서 아갈 수 있지 않을까. 소위 '~형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은 아닐 터. 그러니까 이제 국영수과사가 아니라 '국안성경미'를 가르쳐야 할 때다. 그런데 나도 국어교육과 출신 아니랄까 봐 나와 내 친구들의 밥그릇 뺏기지 않으려고 첫 번째 과목으로 국어를 꼽고 있다.

 이야기가 한참이나 삼천포로 빠졌지만 여하튼 우리 복이가 모쪼록 무사히 태어날 수 있길. 엄마 아빠는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벌써부터 책을 사서 열심히 공부를 시작했단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고서 주변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한다.


 "출산 육아는 어차피 사람마다 제각각이라서 책 따위로 배울 수가 없."

 "책에 나오지도 않는 온갖 상상 이상 혹은 상상 이하의 별별 일들이 벌어다니까."

 "책에 너무 의존하지 말아야 . 막상 그 상황이 되면 읽었던 거 하나도 기억 안 나." 


 그런데 어떡하라고요. 신입한테 경력을 쌓아서 오라는 것도 아니고, 저희는 경력 있는 신입이 아닌데.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한테 대체 어쩌라는 겁니까. 책이라도 봐야죠.

 임신 소식을 들은 뒤 얼마 지나지 않은 2019년 9월 초의, 수험생 이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책에 탐독하던 나날들이었다.








 비단 책에서만 정보를 얻는 시대가 아니니까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해서 이런저런 유용한 팁들을 얻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정말 정보의 바다가 맞구나. 책으로는 부족했던 알아야 할, 알고 싶던 정보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아내는 벌써 <맘스홀릭 베이비>라는 카페에 가입했길래 나도 따라서 들어가 봤는데 여긴 생물학적 성만 가입할 수 있단다. 여기가 무슨 산후조리원 수유실도 아니고 금남의 구역이라니, 나 원 참. 아버지만 있는 한부모 가정은 어떡하라고. 남자들만 가입할 수 있는 카페, 아니, 파파카페 하나 들어야 하나. 만국의 소외된 아버지들이여, 단결하라! 쩔 수 없이 아내 옆에서 카페 글을 같이 읽거나 다른 유튜브나 블로그를 구독하면서 또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하지 그랬나 싶다.


 그런데 인터넷 카페 글을 읽으면서 공부하고 있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이 또 한 마디씩 한다.


 "그런 카페나 블로그 글은 믿을 게 못 돼. 쓸데없는 정보만 넘쳐난다니까.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나도 첫째 때는 카페 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곤 했는데, 둘째 때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게 되더라니까."


 대체 어떡하라고요. 책도 인터넷 카페도 필요 없다굽쇼? 그럼 육아 신입인 저희는 뭘 봐야 하는 겁니까. 초보 부모 앞에서 다들 대안없는 비판만 하고들 있다.






 어쨌든간에 인터넷에서 본 대로 일단 병원에서 '임신 증명서'를 하나 떼서 보건소로 찾아갔다. 신부한테 필요한 이런저런 것들을 받을 수 있었다. 엽산, 철분제, 임산부 스티커, 손수건 등의 선물들이다. 보건소 바로 옆의 은행으로 가서 '국민행복카드'라는 것도 만들었다. 바우처로 60만 원 가량의 지원금이 들어왔다. 중에 병원 검진 등에도 사용하고 이런저런 혜택들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원금이 너무 쥐꼬리만하다. 초음파 사진 몇 번 찍고 장애 검사 한 번 하고 나니 금방 다 써버렸다. 우리나라 저출산 대책, 이 정도밖에 안 됩니까? 부의 출산 장려 정책과 혜택, 장단점들도 공부할 필요가 생겼다. 모르면 손해다. 또 공부거리가 하나 늘었다.


 아내가 임신하고 나니 공부할 게 너무 많다. 왜 이렇게나 아무것도 모르고서 살았을까. 공부만 해서 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공부라도 할 수밖에.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오은영 박사 같은 임신 출산 육아 전문가가 되어 있으려나. 부모가 되는 건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다.



전철에서나 보던 임산부 뱃지를 실물로 영접했다.
이전 02화 세쌍둥이일 수도 있다굽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