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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y 10. 2020

세쌍둥이일 수도 있다굽쇼

선생님, 저희한테 왜 그러셨어요 대체

 "너는 행복해? 기분이 어때?"

 마침내 임신을 하게 된 아내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나도 내 기분을 잘 모르겠다. '내가 드디어 아빠가 된다니', 하며 무척이나 신기하고 기쁜 나머지 하루 종일 웃는 표정일 때도 있고, 다른 어떤 날은 '나 같은 게 아빠가 된다고', 라며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침울의 심연으로 가라앉을 때도 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기분이 들쑥날쑥한 게 뭐라 한 마디로 표현하질 못하겠다. 속이야 어떻든 일단은 행복한 걸로 합시다, 나도 당신도.


 그런데 임신 초기라는 중요한 시기에 남편인 내가 집을 며칠이나 비우게 됐다. 회사를 10년째 다닌 (?)로 인해 신입사원 채용 필기시험 출제 위원으로 낙첨되어 3박 4일간의 합숙에 들어가게 된 거다. 합숙 기간 동안 문제 유출의 위험이 있으니 당연히 전화도 문자도 인터넷도 할 수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그렇잖아도 지금 국가적으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 예비 부모를 우대해 주진 못할 망정. 저는 임신 극 초기의 아내를 돌봐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서 집을 비울 수 없다구요. 한참이나 하소연했더니 인사팀 직원 대동 하에 하루에 두어 번 아내와 전화 통화 할 수 있게 해 준단다.

 합숙소에서의 이튿째, 이날 혼자 병원에 들러 첫 초음파 검사를 마치고 왔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신테스트기가 알려 준 것처럼 정말 임신이었을까, 혹은 그저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기억되고 말 한바탕 소란이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수화기 너머 리는 아내의 목소리가 왠지 떨린.

 "놀라지 말고 들어."


 "아니, 뭘 놀랄 게 있어. 임신 맞다 그러지?"


 "응, 임신은 맞대. 그런데..."


 '그런데'라니?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럴 땐 꼭 이승환의 노랫말처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나도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아내에게 다시 물어본다.


 "그런데... 뭐? 혹시 의사쌤이 안 좋은 말이라도 했어?"


 "아니. 초음파를 찍어 봤는데, 희미한 점이 두 개가 보인대. 쌍둥이일 수도 있대."


 "쌍... 쌍둥이라고?!"


 "게다가 어쩌면 세쌍둥이일지도 모른대. 아기집인 점 두 개 옆에 더 작고 희미한 게 하나 더 보인대. 정확하게 봐야 하니까 며칠 이따 다시 병원으로 오래."

 아내는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 뒤의 대화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너무 당황, 아니, 황당한 나머지 무슨 말을 듣고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애타게 고대하던 전화를 했음에도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고서 인사팀 친구는 의아해했다. 통화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서 고민에 빠졌다.  상상도 못 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구나. 시험관 시술을 하면 쌍둥이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던데 자연 임신임에도 이런 일이 가능한가. 하나도 벅찬데 셋이나 키우려면 부업이라도 해야 하나. 시댁도 처가댁도 서울에 있지 않은데, 여보세요 거기 돌봐 줄 사람 누구 없소. 아내의 작은 배에 셋이나 들어갈 공간이 없을 텐데. 이러면 너무 잔인한 말이지만, 알아보니 다둥이인 경우 선택 유산이라는 방법도 있다던데.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 나타나는 바람에 그날 밤엔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녘에 얼핏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3인조 걸그룹 S.E.S 노래가 들렸던 것 같다. 꿈도 참 야무지다.


 아이를 좋아하고 원하는 사람들에겐 쌍둥이는 배의, 세쌍둥이는 배의 기쁨을 줄런지도 모르겠다. 너구리 라면 봉지에 다시마가 두 개, 비슷한 사례로 건빵 한 봉지에 별사탕 두 개, 생각지도 못한 기념일이라서 사이즈가 업그레이드된 음료, 주방장의 실수로 반쪽 계란 두 개가 들어간 비빔냉면, 편의점에서 계산하는데 우연히도 1+1인 상품이었던 것처럼, 의도하지 않았지만 배로 누리는 뜻밖의 기쁨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를 딱히 좋아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다. 낳더라도 하나만 잘 키워 보자는 심산이었는데 처음부터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고 말았다. 다둥이 부모라는 건 우리 인생 사전에 없었던 단어라고. 그런데 이렇게나 뜻하지 않은 과한 친절라니.


 며칠 뒤 운명의 날, 초음파 재검을 받기 위해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정말 쌍둥이일까, 혹은 더 놀랍게도 세쌍둥이일까. 기어코 그런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인가. 며칠 동안이나 걱정에 잠 못 이뤘건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과는 싱겁게 나왔다. 그동안 뭣하러 이렇게 힘들었나 싶을 만큼 허탈할 정도였다.


 "태아는 하나가 맞네요. 임신 초기에는 초음파에 제대로 안 잡힐 수도 있어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씀하시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 하마터면 그분의 멱살을 부여잡을 뻔했다. 저희한테 왜 그러셨어요 대체. 세쌍둥이라길래 간밤에 S.E.S 꿈까지 꿨단 말이에요. 할 말이 많았지만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그래도 한숨 돌릴 수 있어 다행이다. 잠을 통 못 자서 시뻘게진 눈을 이제야 조금 쉬게 할 수 있을 테니까.






 2019년 9월 11일 수요일, 우리 '하나뿐인' 복이는 이랬다. 눈을 가늘게 뜨고 봐야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크기. 저렇게 작고 희미한 검은 점 속에서 한 생명이 숨 쉬려는 참이다. 저런 ''이 점점 자라나서 결국 한 명의 '사람'이 된다고 하니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다.





 두 째 초음파 사진을 찍으러 병원 가기 전날 밤 기분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같았는데,




 다음날 쌍둥이가 아니라는 결과를 들은 후엔, 비가 그친 후 햇살이 환한 하늘처럼 우울했던 기분 역시 활짝 개었다. 아이 참, 이 녀석. 태어나기도 전부터 아빠 엄마를 놀래키고 그러냐. 그러면 못 써. 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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