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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y 20. 2020

너의 심장소리에 나는 잡아 먹혔다

아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4)

지난주엔 초음파 사진으로 아이존재 유무 확인했고 이번 주엔 녀석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으러 왔다. 지난주에 둘 다 한꺼번에 될 것을 병원매주 오라고 하는 건지. 그러고 보면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들이 사람을 조련할 줄 . 선 포장을 한 번에 뜯어 모두 보여주지 않고, 하나  조금씩 열어 보여주니 매번 두근두근하 된다. 다음 주엔 과연 어떤 마법 같은 선물로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실까 기대하 이 마음. 들, 모르긴 몰라도 연애  잘하실 것 같다. 밀당 같은  아주 능숙하시다.


일주일 만에 다시 찾은 병원. 아내와 함께 둠이 려있는 초음검사로 들어다. 난주에 한 번 와 봤답시고 이제익숙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대학병원이라 그런지 몰라도 대기 중인 산모들이 많아서 한참이나 기다린 끝에 우리 차례가 왔다. 저출산 문제가 전례 없이 심각하다, 이제는 출생자수보다 사망자수가 더 많은 시대이다, 생산가능인구가 감하는 인구절벽 도달했다, 같은 걱정스러운 뉴스들만 접하다가 여기에 오니 인지 부조화를 겪게 된다. 다들 애 안 낳아서 문제라더니 왜 이렇게나 애 낳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아마도 다른 곳은 그렇지 않은데 여기만 유독 붐비는 거겠지?


오랜 다림 끝에 들어간 검사실에서 아내는 옷을 갈아입고 배를 훌 까고 에 누웠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만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샤워할 땐 꼭 문을 닫아놓고 옷을 갈아입을 땐 뒤돌아 있으라고 신신당부하던 사람이, 여기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이 가슴 아래 헐벗은 모습을 내게 보여주고야 만다. 남편 앞에서 얼굴이 빨개져 상을 짓는 아내. 그 표정이 왠지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아니, 뭐가 부끄러워. 언제까지 내외할 거야 대체. 너 혹시 결혼하고 나서 나 몰래 어디 용 문신이라도 새긴 거야?"


"그냥 보여주기 싫어서 그래. 검사 시작하기 전까지 눈 감고 있어. 빨리. 아, 빨리 감라고!"


임신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없으니 의사 선생님이 오시기 전까지 아내의 배에서 시선을 돌렸다. 괜히 딴청을 피우면서 천장을 바라보거나 낯설은 기계들을 살피는 척한다. 이제 막 임신해서 배가 나오지도 않았구만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우리 서로 볼 거 다 본 그렇고 그런 사이인데 별 이상한 지점에서 부끄러움을 타는 아내이다. 검사실에서도 한참을 기다린 끝에 선생님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제는 다시 시선을 돌려 아내의 배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생님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배에다 젤을 치덕치덕 바르고 마트에서 쓰는 바코드처럼 생긴 기계를 갖다 대고서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우리에게 소리를 들어 보라고 다.


콩닥 콩닥 콩닥 콩닥 콩닥 콩닥 콩닥 콩닥.


차게, 그리고 생각보다 무척 빠른 박자로 뱃속 아이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비로소 아버지가 되었음을 실감하는 눈물 따위는 흐르지 않았다. 대체 언제쯤에야 남들처럼 눈시울을 적시려. 다른 사람들은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했을 때, 병원에서 임신 판정을 받았을 때, 초음파 사진을 처음으로 찍었을 때, 뱃속에서 태동이 느껴질 때 등등 많은 순간들에서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한다던데 나는 아직 모르겠다.


대신 벅찬 기쁨다는 알 수 없는 서늘함슴 속에서 소름 돋아난. 그저 태아의 심장 뛰는 소리일 뿐인데 마치 새로운 세계가 나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처럼 들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그마한 심장이 거릴 때마다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세계 여지없이 쿵쿵 흔들리고 부서져내리는 것 같다. 아이 따위 없더라도 나 혼자서, 그리고 아내와 나 둘이서 잘, 아무 흔들림 없이 단단하게 디디고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지금까지의 삶 이렇게나 빈약한 세계을 줄이야. 이제 막 심장이 뛰기 시작한 고 작은 것이 우리의 모래성 같 세계를 송두리째 엎어버릴 파도로 자라나게 될 다. 렇게 나의 모든 걸 앗아 자기 성장의 양분으로 삼고 말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희랍 신화 제우스아버지 크로노스를 몰아냈고, 그 크로노스 역시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시키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던데. 자식 바라볼 때 행복감뿐만 아니라 불현듯 느껴지는 묘한 두려움  된 자라면 당연히 겪게 되는 근원적인 감정인걸까.


한참을 멍하니 심장 소리에 빠져 있다가, 지금 이 순간 흘려 보내기엔 까운 '소중한 순간'을 깨닫고 황급히 휴대폰을 들어 녹음 어플을 실행시켰다. 하지만 집에 서 들어보니 소음이 섞여서 제대로 들리지가 않는다. 실망감에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들고 다니던 부들부들한 털 달린 마이크 따위를 미리 사 둘 걸. 녹음테이프에서 흘러나오던 이영애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유지태처럼, 나도 종종 생각날 때마다 휴대폰에 파일로 저장된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나지막이 웃음 지을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그 소리가 힘들고 지칠 때 한 줄기 위안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언제 어느 순간에 인생의 소중한 장면과 맞닥뜨리게 될지 미리 알 수가 없으니 항상 준비가 된 채로 살았어야 했. 결국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라도 하듯 뒤늦게나마 휴대폰 이어폰 단자에 꽂아서 쓰는 간이 마이크를 하나 주문했다. 다음부턴 아이가 들려주는 소리, 그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을 거에요, 라고 다짐해 본다.


병원을 나오면서 아빠로서의 바람이 하나 생겼다.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준 우리 아이에게, 나도 아름다운 것만 들려주 키우고 싶다. 세상이란 아름다운 노랫말들로 가득 찬 곳이라는 걸 너도 알게 되길. 잔인한 현실의 소리도 듣지 않을래야 그럴 순 없겠지만 그건 되도록 먼 훗날,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되길 소원해 본다. 그러고보니 심장 소리를 들었을 때 기쁜 가운데서도 동시에 느꼈던 부끄러운 두려움은 이미 까맣게 잊은 지 오래다.


2019년 9월 18일, 복이의 두근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처음으로 들었고 내 가슴도 따라서 두근두근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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