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갬성

by 풍경

가을 갬성이

싱그런 교실 품으로

살포시 날아든다

유리창 두드리는

빗방울 연주가


수정 같은

맑은 눈망울들의

시선을 붙들고

너무 어둡지도

너무 밝지도 않은

낭만적인 불빛에

목젖은

내주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무표정도 아닌


입을 곱게 다문

우아한 소녀들의 미소

잔나비의

빛나는 노래가

들꽃들의

해맑은 눈빛이

빗속을 거닌다

빗속에서 춤을 춘다

/


어제부터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태풍이 북상 중이어서 그런지 아침인데도 초저녁처럼 어둑하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니 감정의 기복이 오르락내리락 안 하고는 배길 수 없다. 누구나 이런 비 오는 날, 한 번쯤은 감성에 젖어봤을 것이다.

누가 비 오는 날 아니랄까. 8시 30분 조례를 알리는 종소리에 교실로 향했다. 교실이 가까워지니 복도 창문 너머로 교실 안이 어둑어둑하다. 날도 어두운데 교실 불도 켜지 않고 무엇들 하나 싶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왜 불도 안 켜고 있니?”라고 물었더니 여러 명이 “갬성”이라고 대답한다. 그러고 보니 복도 창문 쪽 전등은 켜져 있고 교실 가운데 천장이랑 바깥 유리창 쪽 전등은 꺼져 있었다. “그럼 불을 다 끄지?” 했더니 이번엔 더 많은 아이들이 “갬성”이라고 말하며 빙그레 웃는다. 아니나 다를까 은은한 불빛이 더 운치가 있어 보였다.


창문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비에 흠씬 젖은 소나무도 바람결에 흔들거린다. 4층 건물에서 소나무랑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 흔치 않다며 우리 교실이 명당자리라고 말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봄부터 창문 밖에 키 큰 소나무들이 늘 우리 교실을 내려다본다. 교실이 카페 같다며 맞장구를 쳐주고 이럴 땐 음악이 있어야 제격이라고 했다. 즉흥적으로 잔나비의 노래를 들려줬다. 아이들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영상을 보다가 창밖을 보다가 하며 가을 노래에 빠져들고 있었다.

내리는 비를 보며 짜증 내지 않고 “갬성”을 말하는 이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 싱그럽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이럴 때는 여학생 반을 맡는 게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 그런 것도 아니고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도 흔치 않지만 말이다.

이런 날... 남학생 반은 아침부터 주먹질이 오가고 교실 컴퓨터가 부서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느 반인지 모르겠으나 타잔인지 늑대인지 울부짖는 소리도 들린다. 어느 반 여학생은 우울하다고, 몸이 아프다고 아침부터 조퇴 허락을 받으러 오고 교무실과 상담실은 저마다의 사연 있는 아이들로 북적이고..


가을비가 참으로 사람의 갬성을 이리저리 산란하게 하는 날이다.

<갬성>

최근 SNS, 특히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로 많이 사용하던 말 중 하나가 ‘갬성’이다. 이제는 이 말이 오프라인에서도 흔히 쓰인다. ‘갬성’은 감성(感性)의 변형된 말 또는 개인의 감성을 줄인 말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든 나는 감성을 느꼈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나타내는 요즘 세대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 생겨난 신조어이다.

# 가을비 갬성 / 2021. 9. 14. punggyeong



https://www.youtube.com/watch?v=XeaVK0zRQSc&t=5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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