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믿어요

by 풍경

늦은 밤

수화기 너머

그대의 목소리만 들어도


난 알아요

목소리에 온기가

없다는 것을 느껴요

아무 일 없는 듯

허공을 떠도는 이야기는

식은 재가 되어 흩어지고

서로의 빈 가슴에 슬픔만 채워요

힘겨워하는

그대를 생각하며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나를 뒤흔들 때마다

지금 펼쳐진 삶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믿기로 해요

이제는

휘청거리지 않아요

삶을 믿기로 해요


나를 유혹해도 좋아요

나를 흔들어도 좋아요

나는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요

나는 아파도 아프지 않을 테니까요

나는 삶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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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터널을 빠져나오기 전까지는 어둠의 끝을 알 수 없다. 어쩌면 이 어둠이 영원히 끝일 수도 있다는 불안과 공포가 몰려오기도 한다. 자포자기해서 털썩 주저앉아 펑펑 울어본 사람만이 삶을 안다. 끝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 일이 희망의 서막이 되기도 하고 영원할 거라 생각했는데 한순간 무너져 내리기도 하는 게 삶이다. 그래서 세상은 요지경이고 알다가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푸념처럼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인생 곡선이 있다. 내가 힘들 때는 웃는 사람만 보이고 내가 좋을 때는 힘든 사람은 안 보이고 나만 보인다. 내가 힘들 때는 신을 원망하고 내가 좋을 때는 나의 운명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완전한 행복도 없고 완전한 불행도 없다. 개개인의 인생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각자의 어느 한 시기에 다 위기가 찾아온다.

힘들어하는 사람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많이 힘들고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건 지금 그 사람 인생에서 그때가 되어 찾아온 일이다. 그 사람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인데 섣부른 도움으로 오히려 실타래를 더 복잡하게 꼬이게 만드는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기다린다는 말을 쓰는데 이 말 또한 나의 이기적인 마음일 뿐이다. 기다린다는 말속에는 상대가 제자리를 찾거나 더 나아진 모습으로 변하기를 바라는 나의 기대가 담겨있기 때문에 또 다른 부담감이 된다.


그저 우리 앞에 펼쳐진 삶을 믿기로 한다. 그저 이 시기를 스스로 잘 견뎌낼 것을 믿어주기로 한다.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고비를 무수히 넘기며 삶이 이끄는 대로 살아왔고 지금 이렇게 건재하다. 그렇기에 가슴 아파도 아프지 않다. 삶을 믿으니까.


# 삶을 믿어요 / 2021. 9. 27. pungg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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