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점점 여물어간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햇살도 따사롭고 바람도 맑게 흐른다. 수목원 곳곳에서는 벌써 바람 따라 나뒹구는 홍엽들이 눈에 띈다. 가을밤은 낮의 화려함을 모두 감추고도 그 정취가 빼어나다. 오히려 다 드러내지 않아 감추어진 은밀한 아름다움이랄까. 주말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수목원 밤길을 걷지만 평일에는 마음만큼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집 근처 공원에 자주 나가본다.
꼭 그곳이어야만 할 이유가 없으니 가벼운 옷차림으로 솔솔 걷는 밤길이 제법 괜찮다. 한 번은 좀 이른 9시쯤에 가봤는데 시간대가 그래서인지 운동하는 아이들과 저녁 식사 후 가족끼리 나온 사람들이 많아 다소 북적거렸다. 그래서 10시쯤 가야겠다는 작은 원칙을 정해놓았다.
도심지 공원이지만 이사 올 때부터 조성된 숲 공원이어서 나무들이 울창하다. 코로나 이전에는 종종 음악회도 열릴 정도의 규모이기에 산책하기에는 제격이다. 어느새 이곳에서 스무 번의 가을을 맞이했다. 결혼 4년 차일 때 이사를 온 이후로 붙박이처럼 20년을 여기서 살았다. 둘째 딸은 여기서 나고 자랐고 그때의 조막만한 아가는 이제 소녀에서 숙녀로 변신 중이다. 그때의 꽃다운 젊은 처자는 중년의 아낙이 되고...
우뚝 솟은 나무들에게서만 세월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는 주름살과 나의 눈높이를 넘어 위로 커가는 아이에게서도 세월은 느껴진다. 법정 스님께서는 세월이 무상한 것이 아니라 세월 속에 오가는 사람들이 항상하지 않아 무상하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맞는 듯하다. 세월 속에 오갔던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언젠가 나 또한 그곳으로 돌아가겠지...
# 가을밤 산책 / 2021. 9. 26. punggyeong
지음知音
삶이 한바탕 꿈의 길이라면
기쁨도 고통도 허상일 뿐이니
애쓸 필요도 괴로울 필요도 없다
거친 가슴 매만지며 달래줄 이
어두운 가슴 눈 트이게 해 줄 이
밤하늘 반짝거리는 오랜 벗뿐이니
하늘을 우러러
두런거림을 들어보라
기품의 빛깔이 소란하지 않고
고요함 속에 찬란한 미소 깃드니
삶의 길은 거기에 있다
2020. 4. 17. Facebook
<백예린, 산책 - 원곡자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병상에 계실 때 아버지랑 산책하는 상상하면서 만든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