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엄마를 안았다. 어색했지만 내가 먼저 엄마에게 안아보자고 했다. 그동안 별로 안아보지 못했다며 어릴 때도 그랬던 것 같다고 슬쩍 지난 얘기를 꺼냈다. 엄마는 예전처럼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사는 게 바빠서 제대로 안아주지 못했다고. 미안해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포근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앙상한 뼈마디만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 엄마도 싫지 않은 내색이었다. 엄마도 나처럼 앙상한 뼈마디만 잡히는 나를 안쓰러워했을까. 쑥스러우셨는지 멋쩍어하시며 품이 넉넉한 올케 얘기를 꺼낸다. 엄마 걱정을 덜 끼쳐드리려면 살을 좀 찌워야 하나 싶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엄마는 엄마가 아니다. 이제 엄마는 나의 동지이다. 나이 들수록 여자로서 생각하고 느끼고 공감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그리고 이제는 같은 엄마로서 내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어주신다. 어떨 때는 편한 동네 친구 같다. 다행히 엄마는 나보다 수다쟁이다. 늘 엄마가 먼저 말을 걸어주고 맞장구를 쳐준다.
사실 나는 엄마와 성격이 정 반대여서 목소리 크고 수다스러운 엄마보다 과묵한 아빠를 쏙 빼닮은 나는 아빠와 사이가 더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늘 맞장구치며 내 편이 되어주는 엄마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딸들에게도 이런 엄마가 되고 싶다. 두 딸들이 언제든 찾아오면 수다스러운 엄마가 되어 어떨 때는 맞장구를 쳐주고 어떨 때는 별의별 얘기를 다하는 모녀 사이이고 싶다.
지금 엄마는 87세의 고령이시지만 아직까지는 쌩쌩하시다. 목소리는 여전히 우렁차시고 소녀처럼 수다스럽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은발의 세련된 멋쟁이이셨던 엄마는 그 사이 얼굴에 검은 꽃이 무성히 자란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예전보다 더 웅숭깊어진 삶의 내력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퍼 올릴수록 삶의 지혜가 샘솟는다. 충만한 사랑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서 오랜 시간 숙성되어 저절로 빛을 발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최근 엄마가 툭툭 내게 던지는 말들이 나를 계속 울컥하게 한다. 엄마의 무심無心한 말들이 계속 나를 울린다. 아무리 정제된 최고의 언어가 있다한들 엄마의 무심에서 나오는 말과 견줄 수는 없다. 엄마의 말에서 인생을 진심眞心을 다해 살아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묘한 전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