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다. 가을은 유독 고개 들어 하늘도 자주 보고 고개 숙여 뒹구는 낙엽도 자주 본다. 그래서인지 가을이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던 윤동주의 서시가 더 가슴에 와닿는다. 어쩌면 내리는 비나 하늘을 가리는 구름, 하늘을 나는 새들은 우리 삶에 크고 작게 오가는 시련이나 괴로움일 수 있다. 모두 그렇게 왔지만 결국 어디론가 가버렸고 하늘은 말없이 늘 그 자리에 있다.
하늘은 맑은 거울처럼 고요히 모든 것을 품고, 오가는 것들을 붙들지 않으며 그것들에 물들지도 않는다. 우리 마음 안에도 이런 하늘이 있다. 중심을 단단히 잡고 삶의 유혹이나 시련에 흔들리지 않으면 청정淸淨한 하늘이 나를 이끌고 삶을 이끌 것이다. 가을빛 짙어가는 풍경이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을 떠올리게 한다. 가을은 동주의 계절인가 보다. 그의 맑은 미소와 함께 ‘자화상’이 떠오른다.
자화상自畵像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