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召喚

by 풍경

지난봄

미처 가슴에 담아두지 못한

소망을 눈여겨 두었다가

슬그머니

눈앞에 펼쳐 보이니

가을은 온통 선홍빛으로 물들었다

가지마다 화사한 봄꽃이

붉은 잎으로 피어나니

새들도 돌아와 노래 부르고

지나던 바람도 뒷걸음질로 반긴다


하늘과 대지는

다시 붉고 노란 봄이다

가을은

소진消盡된 봄을 소환하여

시든 가슴에 희망의 꽃을 피우고

그리움을 붉게 지피며

격렬히 낙하落下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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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 가기 전에 창밖 너머로 하늘을 바라봤다. 회색빛이 맴도는 걸 보니 비가 오려나 싶었는데 가는 길에 빗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머리 위로 똑 떨어지는 빗방울에 선득한 기운이 느껴진다. 가을이 점점 깊어지고 있음을 한 방울의 빗줄기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기온이 점점 떨어지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허虛한 마음이 올라오곤 하는데 문득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지라 날씨에 따라 우리 마음도 영향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하셨던 법정 스님의 말씀이 위안이 된다.

수목원은 쌀쌀한 기온임에도 새봄을 맞은 듯 온통 울긋불긋하다. 나뭇가지마다 붉고 노랗게 물이 들어 화사하기까지 하다. 눈이 따뜻해지니 마음도 온기를 되찾아 잠시 잊힌 지난 봄날의 소망들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정신없이 사느라 주변 돌아볼 틈이 없었건만 얼어붙었던 가슴이 스르르 풀리니 그리운 이들도 하나둘 피어올라 보고 싶은 마음이 진한 향기를 풍긴다.


그제야 살아있음을 느낀다. 가을의 충만한 은덕恩德으로 봄의 생기를 충전하였으니 다가올 추운 겨울을 무사히 보내면 머지않아 봄은 응당 우리 곁으로 당당히 걸어올 것이다. 자신도 곧 소진될 것임을 알면서 마지막까지 다 내주는 가을의 모습에서 삶의 의연함을 배운다.


# 소환召喚 / 2021. 10. 31. pungg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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