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때 이른 폭설로 도로는 마비되고 세상은 온통 백지가 되어간다. 간밤부터 내린 눈은 한없이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부드럽게 대지를 어루만지다가도 갑자기 성질 고약한 노인네처럼 매정하게 퍼붓는다. 오랜만에 베란다 창가 블라인드를 하늘이 다 보이도록 올리고 방 안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본다. 크리스마스 전후하여 흰 눈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놀이터에서 꼬마 손님들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백지를 닮은 아이들은 추위도 모르고 옷이 젖는 줄도 모르니 저리 단숨에 달려가 눈을 맞이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엄마도 어릴 때는 그렇게 눈이 좋아서 너희 외삼촌 꼬리를 붙들고 온 동네를 싸돌아다닌 기억이 난다. 겨울에 태어난 아이 아니랄까 말이다.
그땐 얼굴이 트고 손발이 다 얼어도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지. 그냥 눈과 하나 되어 마구 뒹굴었으니까 말이야. 너무 추워서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입은 찢어지도록 웃고 있었어. 눈물인지 콧물인지 몸 안에 온갖 분비물을 다 뱉어내면 그렇게 속이 후련할 수가 없었단다.
창밖을 한참 바라보는데 신기하게도 눈발이 계속 하늘로 향하고 있네. 비는 수직하강을 하는데 눈은 수평이동을 해. 어떨 땐 땅에서 뿜어져 솟구치는 것처럼 수직 상승하기도 하고 말이야. 도대체 눈은 어디서 오는 거지? 바람을 타고 멋스레 흩날리는 눈발에게서 어떤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 수영할 때 힘을 완전히 빼면 물 위에 몸이 온전히 떠오르듯이 어쩌면 눈들도 이완하여 이 넓은 하늘에서 바람과 함께 즐겁게 노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런데 자세히 보면 눈발의 방향도 수시로 다르구나. 하늘로, 땅으로, 동東으로, 서西로 어느 방향과도 충돌하지 않으면서 무질서의 질서를 구현하는 눈발들의 행렬이 신기하기만 하다. 사방으로 마음을 탁 트고 날아다니는 모습이 자유로운 바람 같기도 하고, 살아 춤추는 새 같기도 하고 거대한 강물의 흐름 같기도 하다. 어떨 때에는 신난 꼬마들의 아우성 같고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마라톤 선수들 같고 치열한 삶의 현장인 것도 같다. 다시 보니 눈꽃송이 하나하나의 흩날림이 갈매기 조나단의 비상飛上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사랑하는 나의 별콩달콩아.
눈은 추위와 짝을 이루는 결정체란다. 뜨거운 한여름에는 눈을 볼 수 없듯이 매서운 추위가 닥쳤을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맑은 눈과 마주하게 돼. 그러니 삶의 역경과 마주하게 될 때 추위 속으로 매몰되지 말고 영원의 순수성을 지닌 눈처럼 처음의 설렘을 늘 간직하길 바란다. 그럴수록 더 다디단 하얀 솜사탕 같은 마음을 늘 품고 살았으면 한다.
우리 안에는 눈의 양면성兩面性이 모두 있단다. 누구나 여리면서도 강한 모습을 갖고 있기에 잘만 꺼내 쓰면 우리의 삶은 더 이상 두려울 게 없겠지. 한없이 여리고 가벼워서 슬픈 것이 아니라 그러하기에 자유로이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고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것이란다.
어떤 일의 시작에 앞서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의 날개만 먼저 펼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너희를 강인하게 이끌 것이다. 그러니 연약하다 하여 우습게 볼 인생도 없고 볼품없다 하여 하대할 인생도 없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듯이 삶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일에 대해서 어떤 편견도 갖지 말고 하얀 눈처럼 백지가 되어 그 안에 냉정과 열정의 삶을 그려내기를 바란다. 그 그림이 온전히 나의 삶이요 나의 꿈이요 나 자체일 테니 말이야.
사랑하는 나의 별콩달콩아.
지금껏 눈이 내린다. 이제는 눈발이 동쪽으로 흩날리고 있네. 어떤 녀석은 빠르게, 어떤 녀석은 느긋하게, 어떤 녀석은 별나게 베란다 창틀에 내려앉아 쉼을 하고 있어. 그래, 우리 삶도 이리 다양하게 흘러가는 것이니 나의 속도로 나의 선택으로 나의 자유의지로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때로는 뜨겁고 때로는 차갑게...
p.s
올 한 해 돌아보며 남은 며칠 마무리 잘하고 새해에는 보다 더 성장하고 보다 더 성숙해지는 나날이기를 바란다.
'눈꽃을 닮은 순수한 나의 사랑, 나의 별콩달콩아♡'
[ 사진 캡처 : 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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