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無心

by 풍경

변하는 건

진짜가 아니지

어제의 내가
진짜가 아니듯이

가슴 저렸던
어제의 사랑도
진짜가 아니야

모든 건
다 변한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게 있지

둘로 나눌 수 없고
둘을 가질 수 없는
하나의 진리眞理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하나의 순수純粹

그건 바로
텅 빈 허공이야
텅 빈 마음이야


/

부처님 오신 날, 필연처럼 연이 닿은 동쪽 거문오름 근처에 있는 자그마한 암자에 다녀왔다. 코로나로 인해 스님의 법문은 물론 점심 공양도 하지 않고 야외에서 차 한 잔 대접하는 정도로 조용히 하루를 보냈다. 이 절과 처음으로 연이 닿은 분이 직책을 맡고 계셔서 아침부터 함께 일을 도왔다. 아무래도 이런 날에는 절에 터줏대감이신 어른들이 많이 계셔서 그 틈에서 지내려니 마음이 조금씩 불편해지고 있었다.

어른들은 나를 '젊은이'라 불렀다. 그 어색한 표현에 잠시 주춤했다. 고령의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같은 학년 교무실에 있는 젊은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그들도 지금의 나와 같은 마음일지, 나 또한 그들에게 불편한 어른의 모습일지 생각해 보았다. 결국 '젊다'는 것도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황에 따라 쓰임이 다르니 변하는 것은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어른들 틈에서 벗어나 절 근처를 산책했다. 햇살이 유독 여름 한낮처럼 뜨겁지만 주변은 온통 신록으로 가득했다. 돌담을 끼고 양쪽으로 들꽃들이 즐비하게 서서 춤을 추고 나비도 새들도 나를 따라오며 지꺼지는 듯했다. 멀리 보이는 거문오름도 진중하고 텅 빈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푸르렀다. 내 마음도 텅 빈 하늘처럼 고요해졌다.

어인 연유로 살고 있는 집과는 정반대 편에 있는, 멀리 떨어진 이 절과 연이 닿았을까. 사람 북적이는 것을 싫어하고 낯선 사람과 섞이는 건 더 싫어하는데 그냥 이곳에 오면 마음이 고요하다. 거문오름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앞뜰에는 잔디가 넓게 깔려있어 시야가 탁 트였으며 곳곳에 스님의 손길이 닿은 소박한 절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몇 번 가보지는 않았지만 스님이 내려주시는 차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볼 때쯤이면 오래전 어느 날에 이곳에 있었던 것 같고 마치 속세를 벗어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었다. 정말 과거 어느 한 때 이 절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던 걸까...


*지꺼지다 : '기뻐하다'의 제주어


# 무심無心 / 2021. 5. 19. pungg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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