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전을 들여다보면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의미들이 조금씩 보인다. 한편으로는 공부가 조금씩 깊어질수록 보일 듯 말 듯 잡힐 듯 말듯하여 그럴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답답하다. 오늘이 딱 그랬다. 벌떡 일어나 나의 카렌시아인 숲으로 향했다.
수목원 입구부터 맑은 기운이 전해진다. 숲이 우리 마음의 고향이자 마음 그 자체임을 확인한다. 한낮의 더위로 땀이 날만하면 바람이 살랑거려서 피부에 닿는 시원함이 마음까지 간지럼을 태운다. 게다가 미세한 바람은 감로수와 같아 갈증을 풀어주기까지 한다.
숲은 늘 그렇듯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뽐내고 있다. 값싼 장난감에서 나는 듯한 삑삑 대는 새소리가 예전 같으면 듣기 싫었을 텐데 귀 기울여 보니 나름 무슨 말을 하는 듯하다. 새들도 저마다의 톤이 제각각인 것이 사람의 목소리와 같다. 굵고 짧게 까! 외마디 지르는 새가 있는가 하면 째재재 쉬지 않고 떠드는 새들도 있다.
숲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니 어느 누가 비루하다는 단어의 의미를 알겠는가. 인간만이 시비와 분별을 통해 우월과 열등을 조장하고 상대적 우위에 서고자 치열한 생존경쟁에 목숨을 내건다. 상대적 박탈감도 비교와 분별에서 나오는 것이며 인간은 헛똑똑하여 그때 느끼는 감정의 언어들을 체계적으로 만들어놓았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언어의 족쇄로 스스로 자신을 옥죄는 꼴이다.
노자는 ‘불귀난득지화不貴難得之貨’라 하여 얻기 힘든 것을 귀하게 여기지 말라고 했다. 흔하지 않은 것은 숫자가 적어서 저마다 가질 수 없는데 그것을 좋다고 하니 욕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공기, 바람, 햇살, 새소리...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모든 것이 가장 귀한 명품인데 사람들은 흔한 건 귀하지 않고 흔하지 않은 것은 귀하게 여겨 고가의 명품에 집착한다.
숲길을 걷다 보니 제법 큰 나무들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흔히 우리가 명품이라 하는 물건에도 고유번호가 있는데 어찌 인간의 계산법을 자연에 적용시켜 저리 못질을 해놓았을까.
숲에는 원래 이름표가 없다. 어떤 분별도 없는 그 자체이기에 그냥 존재한다. 어떤 해석도 없는 알아차림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사물이나 현상에 이름을 붙인 순간부터 생각과 감정이 들어오고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해석을 입혀 그것을 내가 했다고 믿는다. '나는 좋아, 너는 싫어. 돈이 많으면 행복해, 비가 와서 우울해...'
스승님께서는 흔히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을 하는데 자존심은 그 무엇에 의해 손상될 수 없다고 하셨다. 사람들이 말하는 자존심은 자격지심이라고 하셨다. 또한 자신이 명품임을 알면 고가의 물건인 명품에 마음을 주지 않는다고도 하셨다.
자기 자신이 유일한 명품인데 그럴듯한 분장으로 본래의 나를 감춰버리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삶 전부를 걸고 자신을 잘났다 못났다고 한다. 나 또한 오랜 습으로 굳어진 사회 제도와 가치의 앙금들이 상황에 따라 문득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가끔씩 올라오는 열등감도 실체가 없는 허망한 생각이요 생각 그 자체 또한 허망한 것임을 다시 확인한다.
숲에서 다시 본래의 나를 만나고 있다. 호흡은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두통도 사라지고 마음은 평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