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도 하나의 작은 씨앗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생의 수많은 파도를 넘어서며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고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때 삶은 죽음으로 가는 소멸이 아니라 무르익는 완성이라 생각된다.
오랜만에 스승님을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법정 스님께서는 인생 중반부터는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간다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스승님께서도 40대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하셨다고 하셨다.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며 죽음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있어야만 잘 살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폐암으로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의식불명 상태이셨다. 어른들은 해외에 나가 있는 큰아들을 마지막으로 보려고 저리 기다린다고 말씀하셨다. 위급 상황임에도 사정이 좋지 않아 오빠의 귀국이 지체될 때쯤 서울에 계신 사촌언니가 아버지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오셨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숙부인 아버지를 친부모처럼 오빠처럼 따랐던 사촌언니는 아버지 상태를 보시고 체념하신 듯이 아버지 손을 꼭 잡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작은아버지, 훌륭히 잘 사셨어요. 자식들 모두 반듯하게 잘 키우고, 힘든 시절 다 이겨내고 성실하게 사셨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이고 너무나 잘 사신 거예요,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이제 편히 가셔도 돼요.”
사촌언니는 아버지 얼굴을 보면서 곧 쾌차하실 거라고 말하려 했는데 너무 늦게 왔다고, 이제 더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하시며 병실 문을 나서셨다. 가족들이 배웅을 하느라 병실에는 아버지와 단둘이 있었다. 손을 꼭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산소포화도가 급속도로 뚝뚝 낮아지더니 그렇게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였을까... 큰아들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도, 남아있는 가족 특히 어머니에 대한 걱정 또한 모두 부질없음을 느꼈던 것일까... 아버지는 그렇게 단호하게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주관이 뚜렷하시고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분이셨기에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실 분이라는 것을 잘 안다.
잘 살아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니 늘 자신을 돌아보며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숲이 처음부터 울창한 숲이 아니었듯이 삶 또한 처음부터 완성된 삶이 아니다. 삶은 날마다 새롭고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긴 여정이다. 지금 이 순간도 그 길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