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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는, 미워하지 않는 (2)

2부 봄 03

by 싱싱샘

휴강을 두 번이나 해야 했다. 지금까지 내가 아파서 휴강한 일은 딱 한 번, 2018년 겨울, 독감에 걸려서다. 집에 꼼짝없이 갇혔다. 누워서 휴강 메시지를 적고 있자니 묘했다. 학창시절 12년 개근에, 코피 한번 흘린 적 없는 내가 휴강하는 날도 오네 그랬다. 이번에는 MRI 검사를 받느라 수업을 못 했다. 오전 아홉 시 반 검사였으니 오후 수업은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당일 생기는 변수로 인한 당일 휴강은 불가능하기에 오전 오후 수업을 모두 쉬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 만나 결과 보고 얘기 들어야 해서 한 주 만에 휴강을 또 했다. 다행히 센터 수업은 5월 말 보강하면 되고 과외 수업은 중간고사까지 시간이 있어 안심이었다.


대학병원에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약간 친숙해지려 한다. 어제 쌀쌀해 오늘은 코트를 입었더니 하나도 춥지 않다. 바람도 덜 불어 따뜻했다. 끝나고 수업이 없으니 헐렁한 마음으로 걸었다. 평일 한낮이라 그런가 학교 잠바 입은 학생들이 많다. 봄볕도 예쁘고 아이들도 예쁘고 병원 가는 길인데 나는 좋았다. 이따 나오면서 던킨 도넛이나 사갈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나를 앞질러 달려가 멈춘다. 그래, 여긴 병원이지.


MRI 찍은 일이 벌써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손등에 로션을 바르다 작은 딱지를 발견했는데 그게 조영제 바늘 꽂느라 생긴 상처였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병원에 아홉 시에 도착했다. 잠깐 대기, 검사 전 한 차례 더 대기, 검사 마치고 시계를 보니 열 시 반이었다. 핸드폰을 탈의실 사물함에 두었더니 할 일이 없어 사람 구경을 했다. 시장 구경은 재미라도 있지, 병원 구경은 어째 엄숙하다. 한 나이 많은 아저씨가 부인과 왔는데 간호사 질문에 71년생이라 대답해 놀랐다. 내 친구급인데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냥, 한 나이 많은 아줌마란 말인가 하며 웃었다. 휠체어 탄 할아버지는 앉은 채 한밤중처럼 주무시는데 머리 부위를 찍는다고 했다. 늙어 늙어도 병원에서 포기할 때까진 검사를 받아야 하는구나 슬퍼졌다. 71년생 아저씨는 환자복 바지를 조이지도 않고 손으로 붙든 채 나왔다. 젊은 부부 중 아내가 남편 이름을 부르며 커피 마시러 갔다 오자고 했다. 서로 이름 부르는 것도 참 괜찮네, 첫사랑이랑 결혼했다면 이름을 불렀겠지. 환자로서 내 이름이 불릴 때까지 실컷 상상을 했다. 그렇게 세 팀 그리고 내 곁에 앉은 다정한 노부부 한 팀까지, 토요일 열 시 전후 MRI 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며 잠깐 스친 인연들이었다. 모두 무탈하시길.


‘20분 지연’ 화면에 글자가 떠 있다. 담당 선생님 진료가 늦어지고 있다. 일찍 도착해 딱 단편소설 하나 읽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산부인과 앞에서 대기하다 진료실 앞으로 자리를 옮긴 뒤 선생님을 뵈었다. 3M 주황 귀마개를 끼고 헤드셋까지 썼는데도 띠디디디, 다다다다다다 굿판 벌어지는 소리가 쟁쟁했는데 삼십 분 내리 찍은 결과가 이거구나. 선생님 말 들어야지, 컴퓨터 화면 봐야지, 돌이켜보니 나는 배꼽 밑에 있는 커다란 혹만 제대로 봤지 싶다. 병원도 경험이다. 초짜 환자는 말도 제대로 못 듣고 화면도 제대로 못 봤다. 그래도 두 번이나 뵈었으니 선생님이 수술해 주셨으면 했다. 환자는 의사에게 순식간에 마음을 내어준다. 내적 친밀감을 급속도로 가진다.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일 것이다.


근종 위치 때문에 복강경이나 로봇으로는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치료 방법은 두 가지다. 개복 수술 혹은 먼저 주사를 맞아 몸 상태를 조정한 뒤 로봇 수술. 나의 자궁은 우리 딸을 낳아 길렀으니 원이 없고 그동안 수고했다 해주고 싶은데 여성호르몬이 조금 남아 있다고 했다. 폐경까지 시간이 남았다는 뜻이었다. 왜 사람은 작은 일, 사소한 일에 마음이 흔들리는가. 적출을 앞두고 나는 호르몬 생각을 오래 했다. 생리를 삼십 년 넘게 했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싶으면서도 어쩐지 쉽게 결정이 나지 않았다. 의료계 종사자인 친구의 친구는 비슷한 상황에서 망설이지 않고 결정했다고 했다. 그런 근종 선배들이 있어 그래도 마음이 괜찮았다. 여성 셋 중 하나가 근종을 가지고 있다는데 절친 셋 중 셋, 백 퍼센트 이 수치는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힘들 때 남 긁는 대신 자신을 긁은 우리 생각에 잠깐 아렸다.


문제가 있었다. 의료파업으로 병원에서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 수술을 잡을 수 없으니 당연히 주사도 바로 맞을 수 없었다. 기다리거나 다른 병원으로 가야 했는데 나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암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피검사 수치상 낮고, 증상으로 인한 불편함은 인내심 99단인 내게 참을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파업 사태가 나아져 있길 바란다며 선생님은 초음파 예약을 9월로 잡아주었다. 9월, 가을, 낯설다.


근종이 몇 개인지 왜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아? 물었더니 근종 선배가 친절하게 얘기해준다. 다발성은 그렇게 하나하나 셀 수가 없어. 아, 의사가 그저 많다고 할 때는 이유가 있구나. 그럼 잠깐만요, 하고 엉터리라도 세어 볼걸. 근종 선배는 제 몸으로 고생을 많이 했던 터라 내가 다른 병원에도 가봤으면 했다. 병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수술 받은 선생님이 아직 계신다고 이름을 알려주기까지 한다. 그런데 나는, 적출까진 생각했는데 개복은 예상 밖이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실은 손등에 꽂은 바늘로 조영제가 들어갈 때 그 찌릿함이 끔찍했다. 팔을 타고 흐르며 어깨 밑 어디까지 혈관이 이어지는지 선명히 알려주는 느낌이었다. 세 가지쯤의 타악기 소리가 합쳐지고 지루해 죽을 때쯤 검사가 끝났고 베드가 기계를 빠져나와 천장을 보게 되었는데 하늘, 구름, 나뭇잎 사진을 조명등으로 설치해 놓았다. 병원이라는 걸 잠깐은 잊으라는 듯. 나와서 보니 하늘, 구름, 나무의 문제가 아니라 병원과 바깥은 애초에 공기가 달랐다. 검사할 때 배가 들리지 않도록 숨을 잔잔히 쉬라고 한 게 떠올라 크게 들이켜고 깊게 내쉬어 보았다. 다음번 병원에 갈 땐 공기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병원도 경험이지만, 경험이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손등의 1밀리 딱지가 기억하게 해준다. 조영제의 찌릿함을, 병원의 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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