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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눈썹쯤은 괜찮아

2부 봄 06

by 싱싱샘

팬데믹을 겪으며 마스크 쓴 삼 년 동안 좋았던 건 화장을 안 한 것이다. 누군가는 마스크에도 벗겨짐 없는 화장을 했겠지만 나는 화장을 쿨하게 내려놓았다. 선크림만 바르고 나가는 간편함, 피부의 편안함이란. 안 좋은 일도 기회와 변화는 동반한다. 내 눈은 그럭저럭 크기도 모양도 마음에 들어 화장 안 하고 잘 지내던 날들, 서로 눈을 맞춰 대화하는 일이 늘며 스스로도 눈을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눈이 처지는 게 보였고 특히 오른쪽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꾸 보면 예뻐 보이는 건 젊음의 특권이었을까. 예전 내 얼굴이 스치기만 하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몇 년 전 사진만 봐도 깜짝 놀란다. 양볼을 손바닥 전체로 감싸고 살짝 올려본다. 검지로 관자놀이도 살짝 올린다. 입꼬리도 살짝. 아, 그래 이 얼굴.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인데 불만이 많다. 한편으론 그런 욕심이 좋다. 이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예쁘게 살고 싶다. 속눈썹이 올라가면 처진 눈이 좀 보완될까 생각하다 우연히 알게 된 원장님께 처음으로 속눈썹 펌을 받게 되었다. 코로나 종식은 기약 없고 여전히 마스크가 필수품인 때였다.


나는 뭐든 시작하면 꾸준한 편이라 세 달에 한 번씩은 기분 전환 삼아 펌을 하러 갔다. 수업, 집안일, 아이 양육 사이 어디쯤 놓인 즐거운 외출이었다. 이삼 년 되었을까. 원장님 손목이 탈이 났다. 그래도 낫길 기다렸다 하곤 했는데 시어머니가 아프셔서 아이를 봐주실 수 없다고 했다. 샵이 문을 닫게 되어 다른 곳을 알아보느라 일 년간 쉬었다. 신기한 게 그사이 속눈썹 영양제 바르는 게 습관이 되어 속눈썹이 길어져 있었다. 검지로 속눈썹을 슥슥 쓸면 간질간질한 털들이 많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한동안 지켜보던 새로운 곳에 방문했다. 당연히 파마약을 사용하는 시술이니 속눈썹도 눈도 조금은 고생이지만, 한 시간쯤 지나 눈을 뜨면 내 손으로 절대 만들 수 없는, 가지런히 올라간 속눈썹이 되어 있는 것이 신기했다. 사상 초유 속눈썹 분실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몸도 마음도 꿈틀대는 3월의 봄. 오랜만에 속눈썹 펌을 받고 왔다. 삼 주 정도 지났을까. 펌이 풀리며 가지런히 올라가 있던 속눈썹이 이리저리 휘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왼쪽 속눈썹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속눈썹 반이 없어졌다. 끊긴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그동안 어떻게 관리했는데, 속상했다. 다시 자라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털도 늙어 약해지는 걸까. 당분간 펌을 할 수 없는 길이가 되었으니 열심히 관리나 해야겠다 싶어 새로운 속눈썹 영양제 하나를 주문했다.


말이란 참 묘한 것이다. 샵에서 잘못한 것 아닐까 말했을 뿐인데 짜증이 올라왔다. 샵에 상황 전달은 해야 하지 않을까 포장했지만, 누구 책임인지 알고 싶었고 원인을 아는 건 나쁠 게 없을 것 같았다. 인스타 디엠을 보내 손상 원인에 대해 물었다. 정확한 건 다음 시술 때 상태를 봐야 알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아니라, 속눈썹 상태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다시 보냈다. 혹시 내가 진상 고객이 된 건가. 그 뒤로 답이 없어 디엠도 마음도 그대로 덮어두었다.


나흘이 지나고, 확인이 늦었다는 말과 함께 원했던 설명이 도착했다. 처음 답변을 듣고 전문가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성급한 판단을 철회했다. 마음은 앞서가도 말은 한 발짝 늦어도 된다. 내게 글은 한 다섯 발짝은 늦기에 안심이다. 옳은 말을, 필요한 때에, 친절하게 하라는 한 작가의 충고를 기억해두길 잘했다. 속눈썹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딸은 속눈썹 뿌리만 상하지 않았으면 다시 자랄 거라고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해줬다. 당사자는 마음의 중심을 잃기 쉬운데 그래서 후회할 일을 하기도 하는데 잠시 기대어 시간을 벌 수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친구들을 만났다. 집에 돌아와 그날의 인사를 남겼다. ‘모두들 푹 쉬어. 각자의 자리에서 고생 많은 거 알아. 그래도 나이 들었다고 다 아는 것처럼, 어른인 것처럼 하진 말자. 우리는 늘 처음 겪는 일들이니까 새롭게, 즐겁게, 또 힘들게, 그렇게 살자고.’ 한중간에 있을 때 심각한 일이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것이 되고 더 지나면 추억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 부리는 마법의 힘이 크다. 그걸 믿고, 나는 추억이 된 일을 되감아 별일 아닌 일로 만들고 더 돌려 당황했던 순간 앞에 서 본다.


감정은 팔딱팔딱 생각은 사방팔방 뻗친다. 생이 생생하여 힘들면서 좋은 한때로구나. 이게 또 사는 재미로구나. 말하는 순간, 벌써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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