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봄 05
종로에 있는 약국에 다녀왔다. 버스를 갈아타면 시간이 덜 걸리는데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 그걸 선택한다. 벚나무 있는 자리마다 벚꽃으로 환하고 나는 창가에 앉아 내내 꽃을 보고 사람을 본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걷는데 볕이 따뜻했던 그날, 이게 봄이지 싶었다. 그런데 봄은 짧다. 짧아서 애틋하다. 그래서 청춘이라고 하는가 보다. 4월은 입에 올리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마음 아픈 달이라 그리움 가득 담긴 글을 읽고, 생각하고, 쓰겠다고 마음먹는다. 약국에 도착해 약 몇 가지를 산다. 아이에게 보낼 한 달 치 영양제다. 두세 달분 한꺼번에 사도 되지만 나는 꼭 한 달 치만 산다. 그 마음에는 한 달이 잘 지나갔다는 안도, 또 한 달을 잘 보내겠다는 다짐, 다음 약 사는 날이 오기를 즐겁게 기다려 보겠다는 계획 같은 것이 담겼다. 사실 그러고는 아무 생각 없이 스케줄 따라 살지만 기다리는 시간, 기다리는 마음을 잘 느껴볼까 하여 해보는 중이었다.
일견 의미 없어 보이는 계획 아래, 나의 불안함이 잔잔하게 깔려 있다. 길게 보니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겠고 그 뒤로도 인생은 여러 번 엎치락뒤치락한다. 필연도 우연도 만난다. 그걸 재미로 여기면 좋을 텐데 무엇보다 내가 그런 사람이 못 되는 것이다. 전전긍긍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그나마 안심하는 사람이랄까. 인생이 만만치 않아 겸비하게 되더라. 9월 원서 쓰고 11월 수능 치르는 날까지 기다리자니 마음이 볶인다. 내년엔 딸이 캠퍼스에 있게 될까. 운이 따라 주지 않아 삼수를 하게 되면 어쩌지, 혼자 소설을 쓴다. 그런 불안이 커져 내게 내상을 입힐까 그래, 잘 기다려 보자 다독인다. 기다리는 마음을 들추면 그런 내가 보인다.
나처럼 하고 싶은 일 하며 돈 버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할 때도 있다. 일찌감치 프리랜서가 되어 무지막지하게 일을 했는데 그 시간이 지금의 내공을 만들었다. 그러기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채 해내야 하는 날이 많았다. 해내자면 즐겁지만은 않았다. 싫었다기보다 지겨운 마음을 꾹꾹 누르고 참았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오늘에 이르기도 했지만, 늘 무언가를 위해 기다리는 것 같은 만족의 지연, 현재의 헌납이 억울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운동 참 못했던 내가 매달리기만큼은 만점이었는데 결국 잘 참는 게 재능이었던 걸까.
뒤늦은 방황을 했다. 전공 시험지에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8절지 앞뒷면을 빡빡하게 채워 제출하기도 했다. D를 받는 바람에 재수강도 못하고 그 성적은 영원히 남았다. 스무 살의 내가 써낸 답안지가 보고 싶다. 멀쩡한 얼굴로 출근하고 매일 밤 술을 마신 날이 있었다. 다음 날이면 더 멀쩡한 얼굴로 출근을 했다. 그런 생활을 사 년쯤 했는데 아무도 몰랐다. 남은 몰라도 나는 알았다. 엉망진창의 삶은 자기 자신을 상처 입히는 일이다. 남 보기에 딱하기도 하지만 상처투성이 그가 스스로를 어쩌지 못 하는 것이 가장 딱하다. 힘들 때면 이십 대를 돌아본다. 밤새 싸우고 아침이면 흩어져 일터로 향하는 부모에게 아이러니하게 책임을 배웠다. 온몸으로 배운 것이 있어 나도 출근했다. 부모가 보여주고 싶은 가꾸어진 앞마당이 아니라 절대 자신은 확인할 수 없는 뒷모습 같은 뒷마당을 보며 자랐다. 최후의 보루인 일상을 지키는 힘을 물려받았으니 끝내 다행이었다.
어느 날부터 일이 재미있었다. 내 일은 내가 빛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잘 되는 것이었는데 비로소 신났던 것 같다. 성장하는 재미라고 해야겠다. 그렇게 재미있어서 신나서 나의 쾌락을 유예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대체한 걸까.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나 매달리기에 진심인 사람.
인생은 아무래도 반복이다. 인간은 반복 속에서 편안하다. 요즘 나는 다시금 즐거움에 대해 생각한다. 기쁨을 생각한다. 아이가 집에 없으니 일하고도 시간이 남는다. 챙기는 일이 줄었을 뿐인데 그렇다. 한 사람을 키워내는 데 이만큼의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가 드는 줄 알았다면 했을까. 알고는 안 했지, 몰라서 했지. 친구와 주고받은 말처럼 어쩌면 결혼부터 몰라서 모든 일을 벌였고 그래서 좋았다. 벚꽃 길을 걸었다. 꽃이 좋은가, 걷는 게 좋은가.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 나는 걷는 게 좋다. 내가 걷는데 어느 날은 벚꽃이 있고, 어느 날은 장맛비로 생긴 웅덩이가 있고, 어느 날은 낙엽이 진다. 벚나무에게 나는 지나가는 한 사람일 뿐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밥 먹고 커피 마셔야지, 커피 마실 때 쿠키 먹어야지, 기다려지는 일들이 대체로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기다리는 마음을 오롯이 느끼는 건 아직 연습이 필요하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그에 앞서 나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니, 나를 믿고 결과를 두려워하지 말자고 해도 두려운 건 두려운 거다. 기다리는 마음에 그 마음도 넣어둔다. 달달 떨다 살다 갔소, 묘비에 그렇게 적고 싶지는 않으니까. 마음이란 신기하게 온전히 느끼고 나면 덜해진다. 욕망도 두려움도 슬픔도.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끝까지 가 보는 것 그러니까 끝까지 잘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도망가려고 하니 달라붙는다. 숨었다가 제멋대로 튀어나온다. 잘 기다려 봐야지 하는 마음은 이렇게나 여러 얼굴에서 비롯됐다. 진짜 얼굴은, 잘 살고 싶은 마음이다.
봄밤의 벚꽃은 조명 같은 건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밤이 깊으면 한적해질 것이다. 조명까지 꺼지면 호젓할 텐데, 서울의 밤거리는 그 조명 없다고 어둡지 않을 텐데 희디흰 벚꽃 아래까지 왜 이렇게 불을 밝히고 살까. 이십 년 만에 밤을 돌려받았다. 이제 밤에 나가 놀아도 붙잡을 사람이 없다. 밤을 기다려볼까. 약속 있는 밤이라면 느지막이 일어나도 되는 아침이 기다려질 것이다. 기다리는 마음을 내 맘에 두어본다. 설레게, 두렵게, 기쁘게, 때로 지겹게. 그것만큼 좋은 실감의 시간이 또 있으려나. 매달리기 하듯 살아온 내가, 삼십 년이 되어서야 일이 무엇인지 알겠는 내가, 오래 한 사람을 사랑하고서도 사랑을 모르겠는 내가, 올해는 기다리는 시간을 세세히 실감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