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죽어도 하기 싫어, 운동

2부 봄 08

by 싱싱샘

아는 분이 손재주가 대단하다. 손바느질, 미싱, 리폼 못 하시는 게 없다. 오랜만에 뵈었더니 어깨가 둥그렇게 말려 있었다. 평생 업으로 삼았으니 그럴 만도 한데 나는 약간 겁이 났다. 그분은 하루에 몇 시간씩 앉아 작업을 하셨을까. 나는 몇 시간이나 앉아 있는지 비교해 보았다. 소설가와 시인이 이야기를 나누며 근육 이름을 좔좔 왼다. 나는 작가는 아니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 친정엄마가 키가 자꾸 준다고 한다. 150 넘긴 자그마한 엄마가 이제 150도 안 돼, 했을 때 148이나 150이나… 무심히 받아넘겼는데 160 넘긴 내가 160이 안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긴급한 일로 다가왔다. 웃픈 일이었다. 의연한 척하지만 늙는 일이 정말 싫은가 보다. 나는 자세도 평생 나쁘다. 허리 힘 탁 풀고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게 편하고 다리도 오래오래 꼬았다. 나란 사람, 대단한 성공을 꿈꾸진 않지만 절대 실패하고 싶지 않아 하는데 그 연장선에서, 대단히 예쁘진 않지만 조금이라도 미워질 순 없다는 마음이라고 할까. 자세가 곧고 팔다리도 길어지는 운동을 하고 싶었다. 막연하게 즐거운 거였으면 했다.


기본적으로 여럿이 하는 운동, 싫다. 선생님과 단둘이 하는 운동, 부끄럽다. 공으로 하는 운동, 재주 없다. 번거로운 운동, 안 갈 거다. 해봤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잠깐 경험한 건 헬스와 요가였다. 헬스는 회사 다닐 때 회원권을 끊었는데 야근이 많아 몇 번 못 갔다. 요가는 버스 두 정류장 거리가 귀찮아 안 갔다. 이러면 의지박약이란 결론이 난다. 할 마음이 당최 없는 것이다. 나는 망망대해를 수영하거나 운전하는 꿈을 자주 꿨다. 수영과 운전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이십 년 전 운전을 시작하고 운전하는 꿈은 덜 꾸었다. 운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되었는데 이제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유유히 호텔 수영장을 가르는 로망이 있어 수영은 꼭 배우고 싶은데 내게 번거로운 운동에 속한다. 하기 싫은 이유는 백 가지이지만 해야 할 이유는 하나라고 늘 말하지 않았나.


운동 유전자가 없는 거냐 하면 그렇지 않다. 허리가 약한 엄마는 평생 근력 운동 중이고 아버지는 동호회긴 했으나 산악대장이었으며 두 분은 육십 넘어서도 제주도 사이클 여행을 다녀왔다. 남동생은 산악자전거 대회에서 메달을 따기도 했다. 나는, 누워 있었다. 숨쉬기 운동만 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 숨도 제대로 쉴 줄 모르는구나 알게 된 건 3월이었다. MRI 검사를 위해 기계 안으로 들어가기 전, 담당 선생님이 배가 들썩이지 않도록 숨을 얕게 쉬라고 했다. 이해했다. 그런데 삼십 분간 나는 얕은 숨과 사투를 벌이다 나왔다. 숨을 컨트롤할 줄 모르는 거였다. 건강검진 항목의 폐기능 검사가 싫었다. 깊게 들이마신 뒤 길게 내뱉는 숨이 괴로웠다. 평소 나는 어떤 숨을 쉬며 사는 걸까.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며 꼭 시작하기로 한 것이 운동이다. 모두가 코어를 얘기하고 PT를 얘기할 때 나는 모르쇠가 아니라 ‘모르오’였다. 평생 몸에 큰 변화가 없어 비슷하게 먹고 비슷하게 자고 비슷하게 살았다. 안 할 수만 있다면 운동은 끝까지 안 하고 싶었다. 요가원 등록 직전, 이틀을 미뤘다. 운동을 할 것이다 큰소리 뻥뻥 쳐놓은 게 있어 슬쩍 요가원에 가 보았더니 한낮인데 문이 잠겨 있다. 전화를 하니 낮 시간은 개인 수업 시간이라 한다. 더 미루다간 안 하겠다 싶어 요가원 카카오톡 채널로 질문을 보냈더니 당일 바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집에 있는 매트가 얇을 것 같아 요가원에서 구입하기로 하고 저녁 9시 20분 수업을 들으러 갔다.


선생님이 너무 예쁘다. 마르거나 앙상하지 않은 보통의 몸이 아름다웠다. 목소리는 낮지만 분명 배에서 울리는 소리다. 마스크를 써서 얼굴의 반이 가려졌는데도 아우라가 느껴졌다. 입고 있는 요가 바지마저 왜 이렇게 예쁜가. 자주 선생님을 바라봤다. 편안한 옷차림이면 된다고 해서 집에 있는 레깅스에 티셔츠를 입었다. 귀에 들리는 말은 전부 이해되는데 그대로 되지 않았다. 비슷하게 흉내는 내고 있는데 선생님과 숨은 반대로 쉬고 때론 숨도 안 쉬었다. 동작에 집중하느라 뭐가 뭔지 모르는 채 따라가고 있었다.


주 2회면 적당할 거야,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요가원에 처음 걸어가며 3회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고 요가 수업을 받고는 주 5회로 변경했다. 수업이 전혀 무리가 없었던 데다 하필 저녁 수업이었기 때문에 하루 동안 구부러져 있던 몸을 펴고 돌아온 느낌이었다. 등록 후 아침에도 가보고 점심에도 가보고 저녁에도 가보았는데 운동하고 돌아오는 밤이 특히 좋았다. 맨 뒷자리에서 시작해 두 줄 앞으로 진출했다. 나는 오른쪽 자리가 편한데 왼쪽으로도 가볼까 생각한다. 세 분의 수업을 들었는데 원장님 실력이 단연 탑이다. 전문가는 말의 깊이가 있으면서 어렵지 않게 꼭 필요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서 있을 자리마저 아는 사람, 원장님은 고수였다. 만 시간 법칙에 따르자면 하루 세 시간은 해야 하는데 나는 하루 한 시간, 일주일에 다섯 번 무림의 평범한 수련자로 살겠다. 충분해, 만족해.


힐링 요가는 편안한 마음으로 스트레칭을 하는 정도고 하타 요가는 빡세게 같은 동작을 반복시킨다. 나는 하타를 싫어하겠군 했는데 역시나 요리조리 하타 시간을 피하고 있다. 원장님 수업은 이지하타라 나에게 아주 적절했다. 이지하타를 중심으로 필요한 날에 힐링, 싫은 마음이 들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하타를 듣기로 해본다. 상담할 때 들으니 하타는 정통 요가라고 했다.


주변 두 사람이 내게 필라테스를 권했다. 근력이 중요하다는 거였다. 설득은 되었지만 나는 요가가 하고 싶었다. 수련에 대한 호감이다. 모든 운동, 모든 공부는 사실 수련이고 훈련이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의 소리를 가만히 듣자면 필요보다 호감이 먼저다. 그렇게 나는 호감을 택했다. 나는 반듯한 자세로 우아하고 싶은데 현실은 한 다리로 버티지 못해 달달 떨고 있다. ‘유지’라는 말이 그렇게 무서운지 처음 알았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오십 넘어 처음으로 시작한 운동 이야기이자 꾸준히 끝까지 할 수련 한 가지는 갖고 싶었는데 그걸 요가로 택한 이야기이면서 우아하고 싶은 욕망에 관한 이야기 되겠다.


요가 선생님 세 분은 몸의 각 부분을 따로 쓸 줄 안다. 유연하게 연결할 줄도 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운동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삐그덕대며 걷는 로봇이다. 마음을 한없이 탐구하고 싶었는데 나에겐 몸도 있었다. 몸을 잊고 살 수 있었던 건 젊음 덕분이었고 이제 내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다. 늙을수록 몸의 가시가 늘 텐데 여전히 철이 없어, 혹은 아직 견딜 만하니 건강이 아니라 우아함이 중요하다. 최근 수업에서 나처럼 뻣뻣한 사람을 두 명이나 발견했다. 엎드려 시선을 배꼽으로 향하는 동작을 할 때였나. 육성으로 ‘히히’ 하고 싶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뒤에 발가락 양말을 신은 분이 있었는데 발바닥엔 미끄럼방지 돌기가 빼곡했고 색깔은 심지어 핑크여서 또 ‘히히’ 하고 웃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memo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