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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그냥 애틋해버릴까

1부 겨울 02

by 싱싱샘

엄마를 둘로 나눈다면 고3 지내본 엄마와 안 지내본 엄마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에이, 뭘 또 그렇게까지 말한담.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니까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처음은 먼저 대학생이 된 친구 딸 때였다. 친구와 나는 스물에 만나 쉰이 되었으니 삼십 년 지기고 친구는 나보다 조금 일찍 결혼해 친구 딸과 우리 딸은 두 살 차이가 난다. 고3 엄마를 아주 가까이서 2년 먼저 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얼마나 힘든지, 내 친구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후에야 알게 되었다. 얘기를 듣고 보고 함께 울기도 했으나 내 일이 되었을 적에야 비로소 알았다. 온전한 경험 없는 완전한 이해란 불가능하구나. 아무도 묻지 않은 답을 스스로에게 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타인의 경험에 대해 이젠 감히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하겠다.


아이의 기숙사 경험은 두 번째였다. 처음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나는 말렸다. 스쿨버스가 있으니 통학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과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딸은 원하는 고등학교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기숙사 생활을 꿈꿨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신이 났다. 신났고 잘됐고 인생이 그렇게만 이어진다면 좋으련만 결국 한 학기 만에 퇴소하게 되었다. 기숙학원에서 재수하기로 결정했을 때 아이에게 기숙사의 환상 같은 건 없었을 것이다.


입소하는 날, 기숙학원 앞에서 아이와 헤어지고 연락이 끊겼다. 핸드폰은 즉시 제출, 그 외 전자기기는 들고 갈 수 없다. 한 시간 반 걸려 돌아오는 길, 나는 울지 않았는데 그날 밤엔 조금 울었다. 다 키운 아이를 떠나보낸 엄마들이 떠올랐고 아들 군대 보낸 엄마들 생각도 했다. 잠깐이지만 연락할 수 없다는 상황만으로도 마음이 이토록 묘한데 다시 볼 수 없다는 건 미칠 노릇 같았다.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내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모든 마음의 힘겨움은 상실, 무언가 잃는 것에서 온다는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 말씀도 생각났다. 지난 이십 년, 내 마음은 온통 아이에게 있었다. 아낌없이 사랑했으니 후회 없이 돌아설 것 같았는데 왜 안 될까. 연락을 할 수 없어 불안한 건지 떨어져 있어 불안한 건지, 일시적인 감정인지 한동안 지속될 감정인지 아는 게 없었다. 친구와 우스갯소리로 아이가 하나라 죽을 때까지 맨날 처음이다 그랬는데 내 삶도 맨날 처음이었다. 그래도 맷집이 는다. ‘그래, 지옥에는 내가 간다.’ 허클베리 핀의 말을 조용히 되뇌어보는 내가 되어간다. 인생은 많이 힘들고 가끔 재밌다. 막상, 지옥에는 내가 간다는 말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다.


다음 날 오후 핸드폰에 유선 전화번호가 떴다. 여느 때 같으면 안 받았을 텐데 혹시나 하고 받았다. 아이가 교무실에서 전화를 걸었다.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인강이 있으니 결제해 달라는 내용이었고 기숙학원 태블릿에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트가 있다고 했다. 들어가 보니 글을 쓰면 아이가 답글을 달 수 있는, 말하자면 둘만의 비공개 게시판이었다. 하루 3회로 횟수 제한도 있었다. 처음 글을 주고받느라 금세 3회를 다 썼는데 딸이 답글로 알려주었다. ‘글 세 개 제한 걸려서 못 쓸 때 하나 지우고 다시 쓰면 되는 걸로 알고 있음’ 늘 방법은 있다. 그리고 그걸 가장 먼저 알아내는 건 궁한 당사자들이다. 인간은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오랜만에 실컷 웃었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알아낸 거야, 누가 알려준 거야.


그동안 메시지가 몇 개나 쌓였나 세어본다. 하루에 한 번씩은 보냈다. 필요한 교재와 물품 몇 가지가 있어 택배도 두 번 보냈다. 택배 보내며 쓰는 글에는 설명이 빼곡하다. 하루 3회가 모자랄 것 같던 처음 며칠을 지나 우리는 하루에 한 번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수업 가는 아침이나 짬이 난 오후 아니면 잠들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남겨 놓는다. 나의 메시지는 때로 길고 때로 짧은데 아이의 답글은 갈수록 담담해지고 담백해진다. 짧아진다. 나는 ‘읽음’이 떴나 안 떴나 ‘답글’이 달렸나 안 달렸나 궁금해서 수시로 들어가 보았는데 아이는 어땠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오늘은 더 안 오겠지 한 어느 날 무심코 새로 고침을 했다고 한다. ‘와, 한번 새로 고침 해본 거였는데 새 글이 올라올 줄은 몰랐다. 좋네.’ 찡했다. ‘내일 또 대화하자. 보고 싶어! 사랑해!’ 또 찡. 찌잉.


각자의 일상이 있다. 몸은 떨어져 있다. 하루에 한 번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올해는 스스로를 잘 돌보기로 했는데 아직은 나보다 아이가 애틋하다. 애틋한 그 마음이 사랑인가, 애틋함은 사랑보다 힘이 센가 생각한다. 안타까워 애타는 마음은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보다 확실히 우위다. 애가 탄다는데 누가 이겨, 어떻게 이겨. 들어갈 때 영양제를 제대로 챙겨 보내지 못해 세 번째 택배를 보냈다. 보내고 메시지를 올려놓았는데 오후 수업 마치고 보니 반가운 답글이 달려 있다.


‘종류가 확 늘어났네. 꼬박꼬박 잘 먹어 볼게. 학원에서 수험생들 약 챙겨 먹으라길래 보내달라고 말했던 건데 바로 종로까지 갔다 와줘서 고마워. 효과 있었으면 좋겠다. 수업 잘 갔다 오고 또 연락 줘.’


아이의 메시지들은 ‘아무튼 엄마 수업 잘 갔다 오고.’로 마무리된다. 기숙학원에서 온 편지를 받을 줄 꿈에도 몰랐지만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다. 다시 오지 않을 날들이다. 힘든 어제도 지나가니 다행이고 힘든 오늘도 훗날 보면 너무 아깝다고들 한다(진짜?). 그러니 사랑해야 한다. 아니 애틋해야 한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삶에도. 나는 애틋해서 늘 힘들었는데 오히려 좋아! 일이 재밌게 돌아가겠구나! 해본다. 크게 외치기까지는 못하겠지만 그래, 그렇다면 더 애틋하자. 이번 생은 그냥 애틋해버릴까. 그래선지 요즘 아이에게 보내는 나의 메시지는 ‘할 일을 하자. 아자!’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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