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가을 03
한 시인이 ‘소설은 내밀하고 완전한 경험’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보통 책을 간접경험의 영역에 넣는다. 그런데 내밀하고 완전한 경험이라니… 마음에 쏙 들어왔다. 그 말을 가지고 싶었다. 책을 읽어 좋았던 순간이 언제인가 생각해 보면 내밀하고 완전한 경험이었을 때였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분노로 누군가를 해칠 용기가 없었고 스스로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못 할 만큼 작은 사람이었다. 감정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다. 최선을 다해 달리는 순간이 편안한 사람이 되었다. 환경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나쁘지 않다면, 내버려두면 서서히 자신을 찾아간다고 믿는다. 운이 좋으면 자신감 얻을 일도 생긴다. 어느 때부터 불안해 말고 내 감정을 온전히 보듬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확히는, 잘 느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착적으로 책을 모으던 날들이 있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신간은 도서관에서 빌리기 어려우니 산다. 깨끗하게 읽고 되판다. 몇 번 책장을 털어낸 후로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한 미련도 많이 옅어졌다. 필요하면 사고, 언제든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하다. 대신 오늘 내 손에 들린 책이 소중하다. 한 권 한 권 내밀하고 완전한 경험으로 가고 있는 걸까. 삶도 그러길 바란다. 힘든 일도 내밀하고 완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용기가 난다. 누구와 비교할 필요 없이 나의 감정을 느끼는 내밀하고 완전한 삶을 꿈꾼다.
완전한 대신 온전한, 이라고 하고 싶다. 내가 바라는 건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는 것도, 모자람이나 흠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늘 그대로의 나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이다. 온전하게 읽고 쓰며 가다 보면 마지막 날 비로소 완전하구나 하지 않을까. 완전의 쓰임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