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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택배

4부 가을 07

by 싱싱샘

수능 이십 일 전이다. 왜 자식 일에 그렇게까지 마음을 졸이느냐, 어차피 타인인데. 안다. 아이의 사춘기를 겪으며 알았고 스무 살을 통과하며 또 알았지만, 사랑하는 이가 들어간 수술실 앞에 앉아 기다리는 상상을 해본다. 애가 타는 심정이 될 것이다. 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짧은 영상을 보았다. 차량에 생일자가 타고 있으니 경적을 울려 축하해 달라고 했던가. 비상등까지 켜며 축하하는 운전자들이 있었다. 감응하는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타인을 따라 내 마음도 움직이는 것. 다시 눈물바람이다. 가을이라 그래도 따뜻한 눈물바람이다. 애타고 졸이는 시간도 지나간다. 매일 숫자가 줄어든다. 어느 날은 훅 줄어 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오늘을 세세하게 애타게 졸이며 살고 싶다. 인생이 무엇인지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소중한 날인데 조금 타버리는 것이 대수랴. 백 일간 적어 내려가는 기도문이 날마다 짧아진다. 진짜 하고 싶은 말만 남는다. 오늘의 따뜻한 눈물이 뜨거운 기쁨이 눈물이 되었으면. 모든 수험생 위해 두 손 모으는 아침이다.


***


딸이 필요하다고 한 몇 가지 생활용품과 패딩을 보냈다. 기온이 떨어질지도 모를 수능 날 필요한 옷이다. 어떤 걸 보낼까 고민했는데 고등학교 내내 입었던 검정 패딩을 보내달라고 했다. 제일 편해서 오래 입었던 옷이다. 목도리도 하나 보냈다. 딸은 목이 깔끄런 걸 못 견뎌 하니 얄팍하고 부드러운 하늘색 파시미나를 골랐다. 그 목도리만 하면 친구들이 잘 어울린다고 해줬다던 좋은 기억의 목도리다. 패딩과 목도리 모두 익숙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떠올리게 할 것이다. 나는 이미 졸업했지, 하는 생각도 함께.


더는 보낼 것 없는 마지막 택배다. 한겨울 1월에 보내기 시작한 택배가 10월 말에 끝이 났다. 덥고 길었던 여름날, 버스에서 내렸을 때 내리쬐던 우체국 앞 뜨거운 볕을 기억한다. 열 달 꼬박 채운 재수 생활이 산고 치를 일만 남았다. 얼마 전, 수능 앞둔 또 다른 아이를 스치듯 만났는데 그 얼굴이 내 딸의 얼굴이었다. 마음이 아프면 말이 유려하게 나오지 않는다. 헤어지며 아이 얼굴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첫눈에도 눈빛이 단단했으므로, 잠깐 맞잡은 손을 기억하며 ‘너는 잘 해내리라.’ 응원을 보냈다.


간식 몇 가지도 챙겨 보냈다. 일요일 오후 커피 마신 곳에서 쿠키 두 개와 파운드케이크 한 쪽을 샀다. 딸이 좋아하는 말차와 얼그레이 그리고 유자레몬 맛이다. 보내고 나서 올리브영 들를 일이 있었는데 작은 통이 너무나 귀여운 레모나를 발견했다. 아, 저것도 보냈으면 좋았을 걸. 마지막 택배는 곧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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