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겨울 03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지 십오 년이 되었다. 나는 종교적인 인간이지만, 기독교적으로 사는 일은 쉽지 않아 내적 갈등을 겪었다. 이십 대에 세례를 받긴 했으나 예배드리며 많이 졸았다. 졸렸다고 해야 하겠다. 어려서 겪은 부모의 엄청난 갈등, 어린 날 당한 성추행, 참은 줄 모르고 참고 이유는 더더욱 모르겠는 시간이 쌓여 이십 대에 폭발했다. 마음의 지옥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경험했다. 인생을 해석하고 싶었다. 완전한 해석을 꿈꾸진 않았으나 숨이라도 쉬고 싶었던 시간이 있었으므로 - 듣는 시간이 조금씩 쌓여 - 어느 날 그 말들이 내 안에 들어왔다.
지금은 사람마다 각자 고유한 존재로서 다르다고 생각한다. 교인이 천 명이라고 하면 교회와 완전히 맞는 사람이 있다. 조금 맞는 사람, 덜 맞는 사람, 안 맞는 사람 모두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거다(인생의 어떠한 경험을 통해 전격 변화하는 일도 있지만). 그래서 믿음이 없다고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공동체를 신뢰한다. 그걸 사랑이라고 인식한다. 죄와 지옥을 이야기하는 기독교이지만 예수님은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고 사랑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걸 믿고 싶기 때문이다. 어쩌면 존재 자체의 나로 받아들여진 경험이 너무도 부족하기에 늘 사랑을 갈구하며 그것이 관계의 기본값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대학 입시를 치르며 간절했다. 불가능한 학교를 쓴 것도 아니고 잘해온 부분도 있지만, 학운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운이 나를 비껴가지 않기를 빌었던 것 같다. 붙들 건 나의 신밖에 없어 그분께 더욱 간절했다. 모든 시험이 끝나고 후폭풍이 몰려왔다. 교만하다, 순종하지 않는다, 이런 말이 싫었고 자신의 생각 같은 건 없는 것처럼 일률적으로 읊어대는 말에 귀를 막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성경 말씀의 잣대가 여럿인 것도 이상한데 그때 나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 오직 시간만이 필요하다는 걸 지금은 조금 안다.
일요일 오후 책이나 읽을까 하고 앉았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다. 앉아 있기가 힘들어 서교동에 갔다. 식탁 매트 봐둔 것이 있는데 그거나 사야겠다 싶었다. 일부러 버스를 탈 때가 있다. 창가에 기대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 매트를 고를 때 보니 눌린 자국이 있는 것이 있었다. 직원은 ‘잘 보고 고르시면 돼요.’라고만 했다.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나와서 합정역 쪽으로 걸었다. 중고서점에 다 읽은 신간 한 권을 팔려고 했는데 이전을 한단다. 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 영원한 건 없구나. 그런데 인간은 영원할 줄 알고 사는구나. 이럴 때마다 깨닫는다. 그래야 살아지기도 하니까. 아니면 불안해서 어떻게 살아.
식탁 매트를 깔고 보니 아무래도 전시품이다. 기분이 나빠진다. 왜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을까. 리뷰를 쓰기로 했다. ‘식탁 매트를 구입했어요. 원래 좋아하는 브랜드인데 집에 와서 보니 전시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위에 물건을 놓았던 모양인가 봐요. 10퍼센트 세일 상품이긴 했는데 그게 전시품 할인인지 세일 중인 상품인지 알 수는 없었어요. 모르고 샀기에 그 점이 속상했습니다.’ 괜히 썼나, 기분 나쁘면 환불하면 될 것을, 결국 사용할 것을, 굳이? 생각이 줄줄 이어졌는데 글을 올리고 보니 업체만 보도록 되어 있는, 비공개다. 다시 바꿀까 하다 되었다, 충분하다 했다. 아직까지 이 모습이 딱 나다.
인디언들은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엄마가 아닌 한 인간,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좋았다. 출처를 찾을 수 없어 기억의 왜곡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십 년이 내가 정한 육아 기한이었다. 그때가 되면 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를 돌보는 감각을 찾고 원래도 부족했던, 나를 돌보는 감각을 알고 싶었다.
‘엄마는 요즘 말을 아끼고 글을 쓰려 해. 타인을 향한 시간을 아껴 엄마 시간으로 삼으려고 해. 엄마 자신으로 돌아간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건 너야, 자기 자신이야. 너 스스로를 돌봐. 돌보는 데엔 아껴 주는 것도 있지만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도 들어간다.’
점심 무렵 딸에게 보낸 글의 마지막 문단이다. 내가 마음을 쓰는 사람이란 건 익히 알았는데 그 마음이 시간을 쓰게 하고 노력을 하게 해 일을 잘되게 만들었다. 그래서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다. 긴 세월 관성이 붙어 질주에 가까웠다. 사람들이 내려놓으라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지나친 것부터 내려놓아야 했다. 내 마음에 관한 한 하고 싶은 말 정확하게 하기, 설명하기 싫다면 안 하기, 그래서 생기는 불편한 감정들을 좀 내버려두기. 미움받을 용기까진 아니더라도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은 의연함으로 살기(위근우 작가의 말이다. 최근 들은 말 가운데 가장 좋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한다지만 좋은 것에서 나는 빠져 있었고, 좋은 게 끝까지 좋지는 않았다. 내 마음이 불편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 오십은 두 번째 스무 살 같기도 하다. 나는 실패한 나의 스무 살을 다시 잘 살아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또 한 가지 바보짓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