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은 전쟁 중 두 명의 병사가 적진을 뚫고, 퇴각 명령을 전하러가는 영화입니다. 전투가 아닌 전투를 피하기 위한 또 다른 전쟁을 다룬 영화인데요. 대부분의 전쟁 영화가 취하는 전투씬과 폭력적인 장면을 최소화하며 그 장면들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최대한 피해가는 영화입니다. 전쟁이 남긴 참상과 아픔 속에서도 끝없이 이어가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의지를 이야기 하는 영화였습니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이 두 명의 병사에게 1600명이라는 병사들의 목숨이 달려있습니다. 하지만 이 미션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블레이크의 형이 그 1600명 안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이 두 명의 병사가 다른 전쟁 영화의 인물과 다른 점은 아직 인간에 대한 연민을 포기하지 못한 인물들이라는 점입니다. 적군이지만, 독일군 병사를 먼저 해할 수 없었던 블레이크는 결국 독일군 병사의 손에 죽고 맙니다. 냉철한 전쟁터에서 연민이란 어쩌면 사치스러운 감정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블레이크를 죽음으로 떠나보낸 스코필드도 독일군을 만났을 때 먼저 죽여 버리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죠. 복수와 전투보다 이들의 더 관심을 두는 건 사람들의 생존과 생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친구의 죽음 뒤로 스코필드는 더 진지하게 임무에 임합니다. 친구의 죽음을 헛되이 해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동차가 수렁에 빠진다거나. 다리가 끊어지는 등 수 많은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심지어 치명적일지도 모를 머리의 부상을 입고 기절까지 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하죠. 하지만 스코필드는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독일군과의 전투로 불타버린 건물들의 모습은 마치 지옥의 화염을 보는 듯 했습니다. 우연히 만난 프랑스 여인과 아이에게 스코필드는 자신의 식량을 전부 줘버립니다. 아기의 순수한 모습 속에서 스코필드는 많은 위안을 얻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간도 잠시 스코필드는 적진을 뚫고 수많은 난관을 떨쳐내고 결국 퇴각명령을 전달할 연대에 도착합니다. 지휘관은 스코필드의 명령을 무시하고 공격을 진행하려 합니다. 하지만 스코필드의 집요한 노력 끝에 전투 명령을 철회합니다. 사령관은 오늘은 끝 날거라는 희망은 허망한 것이라는 말을 하죠. 그렇게 오랫동안 전쟁은 퇴각과 전투를 반복했고, 사령관은 이미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던 것이죠. 전쟁이란 결국 그렇게 사람들을 천천히 죽여 가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스코필드는 블레이크의 형을 만나 담담히 그의 죽음을 전합니다. 모든 임무를 마친 스코필드는 품속에서 자신의 가족들의 사진을 봅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스코필드는 블레이크와의 대화에서 다시 헤어지게 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의미 없다는 말을 하는데요. 상처가 두려워 그렇게 굳게 닿아 놓았던 스코필드의 마음에도 블레이크의 죽음이 소중한 사람들을 기억하려는 마음이 되살려냈는지 모릅니다.
전쟁의 참상
블레이크와 스코필드가 떠나는 여정에서 만나는 전쟁의 참상은 끔찍합니다. 죽어널부러진 시체 위를 쥐가 파먹고 있습니다. 급류에 휩쓸려 떠밀려온 하류에선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가 널 부러져 있죠. 전쟁의 스펙타클만을 취하는 전쟁영화에서 보여주지 않는 부분이었죠. 영화는 폭력과 살인을 최대한 피합니다. 그리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 생존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포착합니다. 그 의지는 수많은 목숨을 살리게 됩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인간이 고난을 통해 성공하는 일종의 동화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블레이크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잊을 수는 없겠죠.
생명의 의지
영화는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여전히 뿌리 내리는 꽃이나 울창한 숲을 통해 생명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전쟁 속에서 생존한 여인과 아이의 모습 또한 그런 삶의 생동을 보여주죠. 인간이란 폭력적이고 탐욕적인 존재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영화는 그 참상 속에서도 끝까지 인간의 긍정과 생명의 힘에 대한 희망을 놓아버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https://youtu.be/JgaETITG8eo?si=EnsQDFZur1jKSbS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