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시작은 숲의 나무를 아래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시작됩니다. 시선은 점점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5분여간을 그렇게 채운 영화는 타쿠미가 나무를 톱으로 자르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곧 타쿠미의 딸과 나무의 이름을 읊조리며, 숲을 걷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산골마을의 사람들에게 숲은 생활의 터전입니다. 하지만 곧 글램핑장이 들어서게 되고, 그들의 정화조의 설치로 식수원이 위협받게 되는 상황이 찾아오면서 생활터전을 지키려는 지역주민들과 개발을 진행시키려는 회사 사이의 갈등이 발생합니다. 시간이 지나 회사의 직원들은 이 지역에 글램핑을 개발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을 내지만, 사장의 일방적인 통보로 개발을 시작하려 하고, 직원들은 다시 산골마을로 향합니다. 회사에서는 지역민의 태표격인 타쿠미에게 글램핑장의 관리직원이 되줄 것을 부탁하지만 거절당하고 맙니다. 직원은 자신이 글램핑장의 관리직원이 될테니. 조언을 부탁한다고 하며, 지역에 남아 타구미의 일을 도우며 지역에 대한 공부를 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직원들은 점점 타구미와 함께 일을 하며 지역을 존중하고 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 갑작스레 타구미의 딸이 실종 됩니다. 안개가 뒤덥인 거대한 평원에서 타쿠미의 딸은 총을 맞아 부상당한 사슴을 마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슴에게 점점 다가갑니다. 직원은 하나를 막으려 하지만, 타구미는 왜인지 직원을 막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실갱이가 끝난 후 타구미의 딸은 쓰려져 있습니다. 딸을 안고 뛰어가는 타구미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면서 화면은 영화의 시작처럼 나무를 아래에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움직입니다.
영화의 시작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글램핑장을 개발하려는 회사와 산골마을 사람들은 갈등을 겪습니다. 자연을 보호하려는 산골마을 사람과 글램핑장을 개발하려는 회사. 자연스레 사람들은 회사를 나쁜 사람들로 생각하고 산골마을 사람들을 착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산골마을 사람의 태도를 자세히 바라보면, 그들의 시선역시 자연을 인간의 필요에 의해 자연을 이용하려는 태도입니다. 연못가에 정화조의 오염수가 섞일 수 있다는 말에도 생활용수라는 말로 반대 의견을 내어놓고, 회장이 물은 상류에서 하류로 흐른다는 말에도 상류의 사람들이 제대로 생활해야한다는 말을 내놓죠. 타쿠미 또한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 같지만 나무를 전기톱으로 잘라서 땔감으로 이용합니다. 즉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들이 말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이 자연에게 인간은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자연의 극히 일부일 뿐인 것이지요. 그래서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와 방식과는 관계없이 자연은 자연의 방식으로서 존재하고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가 사슴에게 모자를 덮어주려는 시도 역시 시해적인 태도일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슴은 그저 자신의 본능대로 움직였을 뿐이라는 것이죠. 즉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려는 태도는 중요하고 인간의 욕심에 의한 개발이 잘못된 것이지만, 자연은 인간의 인식을 넘어서는 질서로 존재하고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아름답게 담긴 자연의 모습은 경이롭습니다. 충격을 담은 하나가 쓰러지는 안개낀 대평원의 모습은 아름답죠. 그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자연의 냉혹함이 무섭게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인간의 자만심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