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도덕적 논란을 가진 천재 영화 감독의 덕질을 하는 나와 동호회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나는 우연히 김곤의 영화를 보게 되고 그에게 매료 된다. 너무 매료된 나머지. 그의 도덕적 흠결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그에 대한 덕질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 후 나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린다. 천재감독의 영화라는 화려함과 도덕적 흠결은 양가적 감정이지만, 그 미묘한 감정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경향이 있다. 그가 그 양가적 감정에 한 쪽으로 기우는 순간 감정이 휘발된다. 갈등이 주는 긴장감은 그의 매력을 상승시켰지만, 이미 흠결로 남아버린 그는 매력을 잃는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내 안에 있떤 어떤 감정이 자극되어 심한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인간의 호감과 사랑이란 때론 이토록 하찮하고 제스처에 불과한 것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한국을 전혀 모르고 관심을 가지지 않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한국에 방문하기 전까지 한국을 후진국이라고 생각했지만, 선진화된 도시의 모습에 당혹감을 느낀다. 고급 음식에서도 감응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우연히 극우 집회에 휩쓸리게 된다. 그곳에서 미스터김의 인간적인 매력에 이끌린다.
극우로 치우쳐진 비정상적인 사상을 옹호하는 인간은 뭔가 삐뚤어지고 이상한 인간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는 매우 정상적이고 휴머니즘적인 면모까지 가지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편견을 이야기하고, 내가 한국에 가지고 있던 편견을 빗댄다. 나는 끝까지 그가 극우추종자임을 알지 못하지만, 한국에게 더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면모는 하나의 큰 코미디 소동극처럼 보이기도 하고, 편견과 편견을 선 위에 올려 놓음으로서 편견이 결코 한 인간의 모든 면을 알 수 없다는 진실을 이야기 한다. 소설이 끝이 났을 때. 내 자신의 편견에 대한 부끄러움과 함께. 깨달음이 찾아온다.
혼모노는 신을 잃어버린 나이든 초라한 나이든 무당에 대한 이야기이다. 30년을 고약한신을 위해 성심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신은 젊은 여성에게 들어가. 자신과는 다르게 너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나쁜데. 자신의 오랜 고객까지 채가자 그는 분노에 빠진다. 마지막 자신의 오랜 고객의 굿판에서 그는 최후의 결전을 치른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지만, 늙었다는 이유로 신에게 버려진 그가 느끼는 감정이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는 신을 이용해 많은 돈을 벌지 않았을까. 자신의 직업적 사명감을 가진 인물로서 자존심과 욕심을 가진 인물의 모습이 한 편으론 안타깝게 보였다. 이제 나이를 먹은 만큼 내려놓고 휴식을 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는 그 욕심을 내어버리지 못합니다. 거기에는 자신을 고생시킨 신에 대한 원망의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지독한 면이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버릴 만큼 끝까지 가야만 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일텐데. 자신을 던져버려 복수하고, 싸움에서 이기려 하는 모습에 안타깝게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이 소설은 유신독재정권시절 고문실로 지어졌던, 구의 집에 대한 이야기이다. 건축가 재화는 자신의 제자 중에서 욕심이 없는 구보승을 택한다. 그는 그 곳이 고문실로 쓰여진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구의 집을 설게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너무도 설계에 집중한 나머지 그에게서는 인간에 대한 죄책감과 연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듯 하다. 시간은 흘러 스승은 죽고 구보승은 홀로 그 건물에 간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죄책감이나 연민은 남아 있지 않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결말을 맞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권위와 독제애 충성했던 수 많은 부역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했다. 그들에겐 애초에 비판의식과 인간성 윤리 같은 것들이 없는 인간들이었던가. 그들의 과도한 충성은 스스로의 삶의 주도권을 권력자들에게 넘겼다고 생각한다. 씁쓸하고, 기분이 나빠지는 소설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사람들 속에 숨어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겠지. 그 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죽어나갔던가.
스타트업 기업에 다니는 90년대생인 나는 대기업에서 스카웃된 부장 급의 진, 80년대생 수잔과 함께 팀을 이루게 된다. 상여금 문제로, 직급이 더 높은 수잔이 진보다 더 적은 금액을 받자 사이가 틀어진다. 나는 어떻게든 이 둘 사이를 중재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결국 실패한다. 수잔은 그만두면서 노력하면 더 멀어진다는 이야기를 내게 전해준다. 사실 수잔도 젊은 시절엔 나와 다를바 없이 중재하고 열심히 했던 전력이 있었다.
실리콘 벨리를 모델로 한 한국형 스타트업의 수평적인 문화라는 허위 의식을 소설은 비판한다. 대기업에서 모셔온 진은 특권의 상징이다. 사장과 진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회사 내에서 그의 지위는 정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수잔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이 회사는 수평적인 문화라는 슬로건을 내건 껍데기만 스타트업이고, 고리타분한 회사와 다를바 없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회사와 진 사장을 비판하며, 일종의 기성 세대가 가진 특권과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이 차별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읽고나면 우리 사회의 민낱을 들킨 듯 부끄러워지는 기분이다.
잉태기는 딸을 사이에 두고, 시기심을 드러내는 할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모두 딸을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진정 딸을 위해 그러는 걸까. 자신에게 결핍된 감정을 딸에게 투사해서 모두 채워주고 싶은 것인가 아리송하기만 하다. 마지막 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이들의 노력과 열정은 딸에게 전해지지 못한 것 같다. 진정한 사랑은 주는 것이 아닌. 타인의 마음을 알고 그 사람의 행복을 비는 것까지 포함되는 일이 아닐가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서 자식에게 애를 쓰는 부모들을 자주 보곤하는데. 때로 그 모습이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성인이 된 아이를 자신들이 생각하는 더 좋은 길로 인도하려는 모습은 자신의 선택권을 뺏고, 성장을 저하하게 해. 결국 자신들이 없으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이버지와 며느리의 갈등 관계가 잘 짜여져 있어서. 흥미롭게 보았다. 그 사이에서 당사자인 딸의 모습은 뭔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 자리를 차지 하지 못하는 희미한 존재로 묘사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메탈은 학창시절 함께 메탈 음악을 하던 세명의 친구가 어른이 된 후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다. 그 모습을 누군가는 성장이라 할테고, 누군가는 변절이라 하고, 누군가는 쇄락이라 부를지 모르겠다. 그 성장의 시간 속에서 친구들은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어느 날 한 친구가 멀리 떠나게 된다. 그제서야. 우림은 메탈을 사랑했던 과거를 정리한다. 그리고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한 시대가 한 세대가 저물어가는 모습을 쓸쓸하게 그린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