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조해진 작가님의 지난 소설들에선 볼 수 없었던 sf라는 장르를 선택해서 좀 놀랍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짧은 소설 시리즈는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는 분량과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조해진 작가님의 소설을 읽어온 독자라면 조금 실망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섬세하고도 깊은 감정선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소설들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툭툭 던져진 순수한 감정들이 드러나는 소설들인 것 같습니다.
x-이경
지구에 x행성이 충돌을해 20퍼센트의 확률로 멸망이 예정된 어느날 이경의 이야기입니다. 담담히 일을 하고 가족들을 만나고 삶을 정리해 나갑니다.. 갑작스런 멸망이란 단어가 그것도 20%의 확률이라니 참 애매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멸망하니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하겠다거나 마음대로 행동하겠다는 마음은 없지만, 이경은 결혼을 의식해서 만나던 남자와 헤어지고 오랜시절 헤어진 현석이란 남자와 다시 만납니다. 아버지로부터 상속 받은 유산을 아버지가 의료사고로 죽게 만든 사람들에게 주려고 합니다. 이런 이경의 선택은 욕심과 거추장스런 허레의식을 벗어던져버리는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스럽고 마음이 가는데로 한 선택입니다. 세계가 멸망하지 않아도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으면 이경에게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세계가 멸망하지 않았다면, 이경은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버지의 유산으로 집을 장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석과 심장을 맞부딪히고 떨리는 감정을 느끼는 대신. 그렇게 살다가 늙어가고 삶이란 다 그런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x-현석
병원에서 시신을 염하는 현석은 종말을 앞두고 담담히 시간을 보내던 중 이경의 방문을 맞습니다. 현석과 이경은 서로를 돌보다가 함께 아파트에서 죽은 사람을 염해주기로 합니다. 무사히 시신을 수습하고 종말을 기다립니다. 마치 아무일도 없는 평범한 일상처럼 평온하게 종말의 시간을 맞이 합니다. 종말이 찾아왔건 그렇지 않건 우리가 해야할 일이란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머물며 작지만 소중한 일상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상자
우연이 이어진 지독한 악연 하지만 그 하나 내가 원한 것은 내가 원한 일을 한 것 은 없었다는 점에서 상황은 더 절망 스러울지도 모릅니다. 우리 삶의 알 수 없는 불안과 불행을 이야기가 하고 있는 소설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카프카의 성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귀향
오래전 자신을 길러준 라라라는 여인의 고향을 찾아갑니다. 그에게 라라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습니다. 부패한 정치와 실의에 빠진 사람들의 나라에서 그는 쓸쓸함과 비애를 느낍니다.
가장 큰 행복
종말이 찾아온 지구에서 살아남아 함께 살아 오던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별 이야기라기보단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종언
종말이 찾아온 세상에서 머리에 이식했던 칩을 제거하고자한 남자가 한아이를 만나는 여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외롭고 고독한 두 사람이 만나 마음을 나누는 과정이 애틋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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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을 맞자. 과학자들은 돔을 밀봉했습니다. 인공장기를 만들어 인류가 거의 영원을 살 수 있는 기술이 개발이 되었지만, 우을증, 자살사고, 공황장애등의 문제점이 생겼습니다. 평생을 살 수 있다는 건 축복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최후의 인간 넬은 사이보그 이외에 누구와도 소통을 할 수 없습니다. 사이보그는 넬의 마음을 이해해서 넬의 뇌 동맥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숨겨줍니다. 인간은 영원을 살게 되었는데. 소설 속에서 사이보그는 곧 죽게 된다는 설정입니다. 평생의 삶을 얻었지만, 영원한 고독을 안게 된 넬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인간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살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