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by 풍운

상실은 시간이 지나면 옅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믿음에 기대어 하루를 버텼습니다. 지금 이 고통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금만 더 견디면 무뎌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상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의 상실은 날것 그대로였습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이 조여 왔고,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일상은 계속 흘러가는데, 저만 제자리에 멈춰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아프다는 사실이 분명했고, 잃어버렸다는 감각이 선명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겉모습은 정돈되었습니다. 웃는 날이 늘어났고,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조심스럽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좀 괜찮으신가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거짓은 아니었습니다. 예전처럼 매 순간 무너지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괜찮아졌다는 말과 사라졌다는 말은 다릅니다.

상실은 모양을 바꾸어 남습니다. 처음처럼 날카롭게 찌르지는 않지만, 깊은 곳에서 묵직하게 자리를 차지합니다. 아무 일도 없는 날에도 문득 떠오르고, 예상치 못한 장면 앞에서 갑자기 고개를 듭니다. 길을 걷다가 비슷한 뒷모습을 보면 발걸음이 멈추고, 익숙한 말투를 들으면 심장이 먼저 반응합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용히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상실은 기억과 함께 움직입니다. 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기억은 스스로 떠오릅니다. 함께했던 식탁, 나란히 앉았던 자리, 별 의미 없던 대화의 한 문장까지도 되살아납니다. 그 순간만큼은 과거가 현재가 됩니다. 시간은 흐르지만 감정은 같은 자리에서 맴돕니다.

저는 한때 상실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이겨내야 하고, 넘어서야 하고, 언젠가는 완전히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알게 되었습니다. 상실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상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신 삶의 일부가 됩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삼킬 듯이 커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를 바꿉니다.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이동하고, 전부를 차지하던 감정이 배경처럼 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작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제가 그 감정을 안고 걷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날은 괜찮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고, 이름을 떠올려도 눈물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날은 이유 없이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그 변화무쌍함이 오히려 정상이라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상실은 직선으로 줄어들지 않습니다. 파도처럼 오르내리며, 다른 얼굴로 다가옵니다.

상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절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깊이 사랑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것은 아프지만, 그 시간 자체는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실을 지우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가끔은 조용히 그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밀어내지 않고, 붙잡지도 않은 채로. 그러면 상실은 날카로움 대신 무게로 남습니다. 견딜 수 있는 무게가 됩니다.

상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저를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전히 하루를 살아가고, 새로운 장면을 마주하고, 또 다른 기억을 쌓아갑니다. 상실은 제 삶의 한 부분이 되었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대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상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또 하루를 얹는 법을 배우게 합니다.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감정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며.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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