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진은 9년 전 내가 살았던 원서동 언덕 위의 작은 단칸방. 장난감 같은 싸구려 책상과 의자, 잡지에서 오려 붙인 사진이 장식된 곰팡이 핀 벽지, 노란 장판. 아직 두부도 없던 때. 직장도 없이 매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걷기만 하던 시절.
친구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점점 나아지고는 있네, 뭐든. 이라 말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아주 많이 느린 걸음이긴 하지만 아무튼 나도 조금씩 걸어가고 있고, 그 시간이 9년쯤 쌓이니 조금은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한 경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릴 때는 특정 나이가 되면 ~가 되어 있겠지, ~를 이루었겠지. 꼭 어딘가에 가닿고 무언가를 이루는 것만이 행복이고 그게 인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빠르게 걷다가 느리게 걷다가 멈추었다가 뒤쳐졌다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잰걸음을 걷는 것, 그러다가 끝나는 게 인생인 것 같다.
그사이 각자 좋아하는 걸 줍고 아끼다가 결국 잃어버리고, 그냥 그렇게 어디에도 가닿지 않는 것.
모두들 작은 조약돌처럼 살다 가니, 반짝 빛나는 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먼지 같은 나의 이야기들은 내 스스로가 예뻐해 주며 잘 닦아주어야지.
작은 돌도, 모난 돌도, 잘 모아두면, 행복이라는 모양은 아니더라도 그냥 그대로 나라는 모양이 되어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