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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진 Nov 22. 2021

2021년 11월 22일 월요일


11월 첫날 일기를 썼었는데 벌써 11월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오늘은 오랜만에 술도 마시지 않고 책상에(정확히 말하자면 아일랜드 식탁에) 앉았다.

두부가 죽고 매일 술을 마시다 보니 벌 넉 달이 흘렀다.

술 마시고 울면서도 참 많은 일을 했던 시간이었다.

오늘은 아침에 블로그가 물어다 준 9년 전 오늘 사진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사진은 9년 전 내가 살았던 원서동 언덕 위의 작은 단칸방. 장난감 같은 싸구려 책상과 의자, 잡지에서 오려 붙인 사진이 장식된 곰팡이  벽지, 노란 장판. 아직 두부도 없던 때. 직장도 없이 매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걷기만 하던 시절.

친구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점점 나아지고는 있네, 뭐든. 이라 말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아주 많이 느린 걸음이긴 하지만 아무튼 나도 조금씩 걸어가고 있고, 그 시간이 9년쯤 쌓이니 조금은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한 경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릴 때는 특정 나이가 되면 ~가 되어 있겠지, ~를 이루었겠지. 꼭 어딘가에 가닿고 무언가를 이루는 것만이 행복이고 그게 인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빠르게 걷다가 느리게 걷다가 멈추었다가 뒤쳐졌다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잰걸음을 걷는 것, 그러다가 끝나는 게 인생인 것 같다.

그사이 각자 좋아하는 걸 줍고 아끼다가 결국 잃어버리고, 그냥 그렇게 어디에도 가닿지 않는 것.

모두들 작은 조약돌처럼 살다 가니, 반짝 빛나는 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먼지 같은 나의 이야기들은 내 스스로가 예뻐해 주며 잘 닦아주어야지.

작은 돌도, 모난 돌도, 잘 모아두면, 행복이라는 모양은 아니더라도 그냥 그대로 나라는 모양이 되어있도록.


+사진은 9년 전과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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