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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펑크마녀 Jan 30. 2024

스스로 선택한 비낭만

월말이라 수중에 돈 한 푼 없는데, 며칠 전부터 계속 돈을 쓰고 싶다.

마지막 장을 보려고 남겨두었던 오만 원 남짓은 예상치 못했던 등록면허세로 사라져 버리고 여기저기 통장에 흩뿌려져 있던 한 푼 들을 한 곳으로 모아 겨우 18,000원을 만들어 냈다.

이제 택배를 보내고 나면 남는 돈은 15,000원 남짓.

하지만 이게 아니다, 내가 지금 쓰고 싶은 돈은. 백화점 같은 곳이라 가서 십만 원쯤은 별 쓸모없는 걸 사고 싶은 것이다. 별히 살 것도 없는데 커다랗고 깨끗한 실내를 층층이 거닐며 딱히 필요하지 않은 작고 아름답고, 쓸모에 비해 과분한 가격표를 달고 있는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겨 지갑을 열고 싶은 것.

하지만 15,000원으로는 그러기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지금 냉장고도 텅 비 먹을 거라곤 양배추 한 줌 밖에 없어 당장 오늘 끼니를 해결할 걱정부터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15,000원으로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내일까지-정산금이 내일 입금되므로) 재료와 당장 쌓여있는 쓰레기를 버릴 종량제 봉투를 사야 한다.

이토록 낭만이 사라진 하루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내가 꿈꾸었던 작은 사치와 낭만을 이렇게 기록으로라도 남겨둔다.

내일 정산금이 입금되어도 그걸로 고양이 사료와 영양제, 모래를 살 것이다.

이것이 스스로 선택한 비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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